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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및 특성==
==개요 및 특성==
1975년 한국에서 발생한 신학 해석의 한 갈래. 복음의 민중적 성격을 들어 ‘민중’이라는 용어를 처음 신학해석의 핵심틀로 사용하고, 영적 구원보다는 정치적 구원(민중의 구원)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의 민중사([[출애굽기]]와 [[마가복음]]의 예수운동)와 기존 한국민중사를 신학에 합류시킨 사조이다.
[[1975년]] 한국에서 발생한 신학 해석의 한 갈래. 복음의 민중적 성격을 들어 ‘민중’이라는 용어를 처음 신학해석의 핵심틀로 사용하고, 영적 구원보다는 정치적 구원(민중의 구원)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의 민중사([[출애굽기]]와 [[마가복음]]의 예수운동)와 기존 한국민중사를 신학에 합류시킨 사조이다.


민중신학의 핵심 키워드는 '''"[[민중]] [[예수]]"''' 또는 '''"[[민중]] 속의 [[예수]]"'''라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의 핵심 키워드는 '''"[[민중]] [[예수]]"''' 또는 '''"[[민중]] 속의 [[예수]]"'''라 할 수 있다.

2015년 6월 9일 (화) 11:23 판

틀:종교

개요 및 특성

1975년 한국에서 발생한 신학 해석의 한 갈래. 복음의 민중적 성격을 들어 ‘민중’이라는 용어를 처음 신학해석의 핵심틀로 사용하고, 영적 구원보다는 정치적 구원(민중의 구원)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의 민중사(출애굽기마가복음의 예수운동)와 기존 한국민중사를 신학에 합류시킨 사조이다.

민중신학의 핵심 키워드는 "민중 예수" 또는 "민중 속의 예수"라 할 수 있다.

발생

민중신학은 한국에서 발생한 신학사조이다. 공식적인 용어의 사용은 1979년 한국에서 열린 CCA 신학협의회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그 후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신학인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한국적 상황신학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민중신학은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가 시작된 1960년대에 태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아직 구체적으로 역사와 구원의 주체로서 "민중"이 고려된 것은 아니었지만 개발독재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된 민중의 고난 현실과 그들의 저항에 접한 신학적, 신앙적 반성에서 출발한 까닭이다.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의 충격과 연이어 시작된 유신체제는 구체적으로 민중신학이 발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의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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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