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돔 시하모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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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7일 (월) 03:13 판

King Norodom Sihamoni King of Cambodia-1-1-.jpg

개요

노로담 싸이하무니(នរោត្តម សីហមុនី, 1953년 5월 14일 ~ )는 캄보디아의 국왕, 前 교수, 前 영화 감독, 前 발레 무용수이다. 그는 2004년 10월 14일 아버지인 노로담 싸이하누의 뒤를 이어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해 현재까지 재위 중이다.

생애

1953년 5월 14일에 프놈펜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부친의 애정을 듬뿍 받아왔다고 한다. 1962년 9세 때 아버지에 의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로 가서 고전 무용과 음악 등을 배우며 고등학생때까지 유년기를 대부분 그곳에서 보냈다.[1] 현재까지도 그는 체코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체코를 제 2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체코에서 보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고하였다. 실제로 체코어도 현지인급 수준으로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안다.

1975년, 체코 프라하 예술 아카데미를 수료한 뒤로 22세 때 북한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영화 촬영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1977년에 살롯 사의 구라에 속아넘어가서[2] 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 정권에 의해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왕실 가족들과 함께 프놈펜 왕궁에 유폐되었다. 1979년에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크메르 루주는 무너지고 살롯 사가 도망가자 부모님과 함께 프놈펜 왕궁에서 탈출한다.

198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마리우스 프티파 예술학교와 가브리엘 포레 예술학교에서 고전무용과 교수직을 맡았다. 크메르 무용 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고, 프라하가 그리운지 그곳에 정기적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영화 발레 데바도 감독하고, 1990년에는 크메르 영화사에서 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최고국가평의회, UN의 상주대표의 자리에 오르고, 1993년 11월에는 파리에서 유네스코 대사로 활동하였다.

2004년 10월 7일, 노로돔 시아누크가 건강 문제로 퇴위한 이후 왕실 평의회에서 차기 국왕으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국왕 자리에 올라 허수아비로 지내는 삶이 싫어 노로돔 시아누크가 거주하는 베이징에 머물러서 농성하였다. 그러나 왕실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부모의 뜻에 따라 끝내 그는 10월 20일에 반강제적으로 캄보디아에 돌아왔고, 10월 29일에 8만명의 국민들 앞에서 즉위식을 치뤘다.

이후 남은 일생을 감시인들에 둘러싸여 서류결제와 손님접견으로 보내며 사실상 죄수같은 쓸쓸한 삶을 살고 있다. 왕궁 밖에는 함부로 나갈 수 없고 언론과의 접근도 철저히 차단된다. 게다가 자식도 없는지라 그의 뒤를 이을 왕위 계승자도 없다.

국왕을 빛좋은 개살구로 만들어놓은 현재의 캄보디아는 훈 센 총리의 부패독재에 휘둘리는 실정이다.

각주

  1. 70년대에는 캄보디아 내전이 시작되어 결국 프라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2. 노로돔 시아누크 코스프레를 해서 그에게 돌아오라는 메세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