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솔방울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5월 9일 (토) 12:45 판

개요

고구마는 메꽃과의 쌍떡잎 뿌리 채소로, 온대에서는 일년생이지만 열대에서는 숙근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주로 전분이 많고 단 맛이 나는 혹줄기를 가진 재배용 작물이다. 꽃은 나팔꽃과 유사한 꽃이 핀다. 씨앗으로도 번식하나 영양 뿌리를 얻기 위해 경작할 때에는 씨앗으로 경작하지 않는다.

형태

뿌리

고구마에서 먹는 부분에 해당되는게 뿌리 부분인데, 가는뿌리, 굳은뿌리, 덩이뿌리로 구분되어 있다. 고구마는 뿌리에 영양분이 축적되어 둥그렇게 크기가 커지며 이런 종류의 뿌리를 덩이뿌리라고 부른다. 습한 땅이나 질소질이 많은 토양에서는 가는뿌리와 굳은뿌리가 많고 칼리질 비료가 많은 토양에서는 덩이뿌리가 많다.

생육 초기에는 뿌리가 땅 밑의 비교적 얕은 부분에서 옆으로 퍼지지만 점차 깊이 자라 땅 속 1m 이상의 깊이까지 도달한다. [1]

줄기

즐기는 둥글고 털이 거의 없는 것에서부터 많은 것까지 있으며 잎의 앞 끝은 뿌리와 만나는 줄기 아랫부분에 비해 털이 많고 담색(淡色)이다. 생육습성에 따라 직립형과 포복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직립형은 줄기의 길이가 짧아 60cm 정도인것도 있으며 포복형은 길어서 6m에 달하는 것도 있다.[2]

고구마는 쌍떡잎식물이라 종자가 발아할 때 2매의 떡잎이 나오고 덩이뿌리에서 싹이 나올 때에는 떡잎이 나오지 않고 본엽만이 나온다. 잎의 모양은 둥근 심장형으로부터 단풍잎처럼 잎이 갈라진 것까지 여러 모양이 존재한다. 잎의 색깔은 성숙한 잎의 경우 대체로 녹색이지만 그 정도에 차이가 있으며 어린잎은 녹색에서부터 짙은 자주색까지 품종에 따라 색깔이 다르며 잎맥과 잎자루의 색도 녹색에서 자주색까지 품종에 따라 다르게 존재한다.[3]

꽃 모양은 메꽃이나 나팔꽃과 비슷하다. 꽃 밑부분에는 꽃받침이 5개 존재하며 꽃부리는 담홍색으로 길이가 5cm 정도에 끝이 얕게 5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수술은 5개로 밑부분이 꽃부리에 부착되어 있지만 수술끼리는 분리되어 있고 수술 중 하나는 암술보다 길며 나머지는 암술보다 길이가 약간 짧지만 품종에 따라 길이가 다르다. 암술은 1개가 있으며 길이가 1.5cm 내외이다. 꽃의 내면 기부에는 황색의 꿀샘이 있다.[4]

기원

고구마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멕시코 유카탄반도 지역과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강 하구 지역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적어도 2000년 이상 인간에 의해 이용되었으며 현재 재배되고 있는 재배종이 해당 지역에서 야생되고 있다.[5]

남아메리카에서는 페루의 고구마 잔존물이 기원전 8,000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본다.

전파

남태평양

남태평양에서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이 진출하기 이전부터 고구마를 식량으로 재배해왔다고 한다. 어떻게 전파 되었는지 여러가지 설들이 있지만 페루 항해인들이 뗏목을 타고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로 전파시킨 것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유럽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 다른 여려 작물과 함께 고구마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아시아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필리핀 마닐라와 몰루카 제도로 전파되었고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말레이 군도에 전달되었으며 필리핀 루손섬으로부터 중국 푸젠으로 전파되었다.

1605년경에는 중국 푸젠에서 류큐와 대만으로 전파, 류큐에서부터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으며 1723년에 대마도에 고구마가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다.[6]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최초로 고구마를 본 사람은 1719년 통신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신유한이다. 그가 길가에 위치한 주점에서 고구마를 구워서 파는 것을 본 것이 고구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7]

본격적인 고구마 전래는 이광려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는 고구마의 이점을 알고 조선에 도입되기를 간절히 원하여 두 차례가량 연행사를 수행하는 역관을 통해 직접 종자를 얻으려했지만 실패했고 1762년, 연행사로 북경에 가는 서지수에게 부탁하여 고구마 종자를 얻는데 성공하였지만, 가지고 오는동안 관리를 잘못하여 종자가 죽어버리고 만다.[8] 이후, 이광려는 1764년 강계헌에게 부탁하여 일본을 거쳐 온 고구마 종자를 구한 다음 재배에 성공하였지만 보관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다음해에 종자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9]

그래서 한국의 고구마 전래는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趙曮)이 대마도(對馬島)에서 고구마 종자를 구한 다음, 부산진에 보내어 당시 부산진 참사 이응혁에게 보관하게 한 다음 1764년 봄, 절영도 조도 맞은 편 야산에 재배하게 했다.[10]

한편, 1764년 동래부사로 부임한 강필리는 1765년 고구마 종자를 구하고 또한 종식방(種植方)[11]을 구하여 『감저보(甘藷譜)』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강필리는 고구마 종자를 구하여 탐라(耽羅, 현 제주도)를 비롯한 인근 군현에까지 재배 방법과 함께 나누어 주어 남해안 연안 지역에 고구마 재배를 보급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비변사에까지 보냈다. 1766년 동래부사에서 물러나서는 고구마 종자를 확보하여 한성(漢城, 현 서울)에 실어 보내고 동래에서도 종자를 남겨 심게 하였다.[12] 1813년 김장순과 선종한, 이 두사람이 고구마 보급에 노력을 쏟아 감저신보란 책을 썼으며 1834년 서유구가 전라관찰사로 있을 때 종저보를 지어 호남지방에 고구마 심기를 권장하였다.[13]

어원

고구마는 유희가 1824에 쓴 물명고에 고금아의 형태로 처음 나타난다. 고무마라는 이름의 유래는 일본 쓰시마 지방의 방언에서 고구마를 일컫는 코코이모孝行藷를 차용한 것인데, 이 때, 일본어 이모(藷/芋/薯)가 우리말 ‘마’로 변형되었다.

고구마는 저(藷) 또는 감저(甘藷), 감서(甘薯) 등으로도 불렸는데, 고구마를 들여오고 60년 뒤에 청나라 사람들이 들여온 감자를 ‘북방에서 온 감저’라는 뜻으로 북감저(北甘藷)라고 부르면서 고구마는 한동안 남감저(南甘藷), 단감자 등으로도 불렸다. 현재도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부르고, 감자는 고구마와 구분하여 지실(地實)이라고 부른다. 또, 전라도, 충청도 등 양호(兩湖) 지방에서는 무수감자나 무감자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사츠마이모(サツマイモ) 또는 감저(甘藷)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번서(番薯/蕃薯), 감서(甘薯) 또는 디과(地瓜 dìguā)라고 한다.

특징

고구마는 다른 작물에 비해 수확량이 많고 쓰이는 곳이 넓으며, 보리 등의 뒷그루로 가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저장하기 까다로운 결점도 있다.

재배

고구마는 고온 작물로 자라는 데 알맞은 온도는 30-35℃이다. 땅은 너무 습한 곳이 아니면 그다지 가리지 않으며 산성 땅에서도 비교적 잘 된다. 고구마는 싹을 길러서 심는데, 싹 기르기는 온상에서 한다. 3월 중·하순에 온상을 만들고 온상의 온도가 30-35℃가 되면 씨고구마를 묻는다. 5월 상순에서 중순 즈음에 싹이 30cm로 자라면 20-30cm 간격으로 꽂는다. 이때 순과 잎이 땅 위에 나오도록 심는다. 첫 서리가 내리기 전인 10월 상·중순에 캐는 것이 좋다. 캐낸 것 중에서 저장할 것은 잘 여물고 상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용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대부분이 식용으로 소비되었으나, 최근에는 부식용이나 삶은 고구마, 튀김, 군고구마 등 간식으로 주로 이용된다. 녹말용으로 30% 정도 사용되고 엿·포도당·과자류·식용가공품·의약품·화장품 등 다방면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알코올, 위스키, 소주 등의 원료로서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쌀이 소주를 빚는데 금지되었을 때에 고구마로 주정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소주가 화학주로 오해 받기도 하는데, 고구마로 에탄올을 만들기 때문에 고구마가 한국의 희석식 소주의 주원료이다. 감자와 비슷한 용도로 쓰이지만 고구마는 감자와는 달리 익히지 않고 그냥 먹어도 맛이 좋다. 익히지 않은 고구마는 대부분 익히지 않은 밤과 맛이 비슷하다.

피자에 무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각주

  1. 농촌진흥청, 『고구마 재배』, 2006, pp.46-47
  2. Ibid., pp.48-49
  3. Ibid., p.49
  4. Ibid., pp.49-50
  5. Ibid., p.23
  6. Ibid., pp.23-24
  7. 노성환, 「조선통신사와 고구마의 전래」, 『동북아문화연구』, 제23집,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0, p.539
  8. Ibid., pp.539-541
  9. 염정섭, 「조선 후기 고구마의 도입과 재배법의 정리과정」, 『한국사연구 134』, 한국사연구회, 2006, pp.116-117
  10. 노성환, op.cit., p.542
  11. 種植 : 종식, 씨를 뿌리고 식물을 심는 일 - 네이버 한자사전
  12. 염정섭, op.cit.,pp.117-118
  13. 농촌진흥청, op.cit.,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