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섭

사섭(士燮, 137년 ~ 226년)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의 군웅이다. 자는 위언(威彦).

베트남어로 시 니엡(Sĩ Nhiếp)으로 읽힌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교지태수 이전[편집 | 원본 편집]

137년 교주 창오군(蒼梧郡) 광신현(廣信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원래 예주 노군(魯郡) 문양현(汶陽縣)에서 살았으나, 사섭의 6대조가 왕망의 난을 피해 교주로 내려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시섭의 아버지인 사사(士賜)는 환제 때 일남태수를 지냈다.

젊은 시절 사섭은 낙양으로 올라와 지식인들과 교류했으며, 예주 영천군에서 유도(劉陶)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이때 춘추좌씨전에 주석을 달아 춘추경을 지었는데, 현전하지는 않는다.

교주의 지배자[편집 | 원본 편집]

부친 사사가 죽고 상을 치룬 후에 무재로 천거된 사섭은 무양령(巫陽令)을 지내다 187년 교지태수(交趾太守)로 임명받게 된다. 베트남 역사서 대월사기전서는 이때부터 사섭의 통치가 시작된 것으로 기록했다.

196년, 교주자사 주부가 피살당하면서 교주가 혼란스러워지자 사섭은 조정에 요청해 자신의 형제들을 교주 지역의 태수들로 추천했다. 조정은 시섭의 요청을 수락해 시섭의 동생들인 사일, 사유, 사무를 각각 합포태수, 구진태수, 남해태수로 임명하였다.

주부의 후임으로 교주자사에 임명된 장진(후한)은 도교에 빠졌다가 부장 구경에게 살해당했고, 유표가 교주자사 뇌공과 창오태수 오거를 파견해 교주까지 세력 확대를 시도하자 조정은 사섭을 수문중랑장으로 임명하고 교주 7군을 관할하게 했다.

손권에 신속하다[편집 | 원본 편집]

210년, 손권은 보즐을 교주자사로 임명했다. 이듬해 보즐이 창오태수 오거와 구경을 살해하자 놀란 사섭은 손권에게 신속했다.

건안(196~220) 말년, 사섭은 장남 사흠을 손권에게 볼모로 보냈다. 손권은 사흠을 무창태수로 임명하고, 사섭의 아들들을 중랑장으로 봉했다.

사후[편집 | 원본 편집]

사섭의 3남 사휘가 뒤를 이었으나, 오나라가 사씨 가문을 배제하고 교주를 직할지배로 두려하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하면서 교주에 남아있던 사섭의 여섯 아들은 전부 사망했다.

손권에게 줄모로 보내진 장남 사흠은 면직되어 평민이 되었다가병사했고, 후사가 없어서 시섭의 대는 끊기게 되었다.

이후 남조시대 지괴소설에서 창오왕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등장하며, 베트남 쩐 왕조(1225년 ~ 1400년)로부터 선감가응령무대왕(善感嘉應靈武大王)라는 시호를 받았다.

평가[편집 | 원본 편집]

역임 관직[편집 | 원본 편집]

대중문화 속의 사섭[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 6[편집 | 원본 편집]

  • 삼국지 6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
  • 교지를 본부로 하는 군주로 나온다.
  • 능력치는 평균 70대 정도.
  • 비슷한 능력치의 동생과 아들들이 4명이다.
  • 그러나 바로 이웃에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이민족 남만이 있다.
  • 남만 반대쪽의 도시 남해는 공백지이지만 그 옆에 또 다른 이민족 산월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초반 시나리오에서는 무릉, 영릉, 계양, 장사 등의 도시들이 대부분 공백지이므로 빨리 그 곳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좋다.
  • 통상 시나리오 1에서는 재야 장수로 나오므로 도시 교지를 수색할 필요가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