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견

손견(孫堅)
생몰년도 156년 ~ 192년
문대(文臺)
출생지 양주(揚州) 오군(吳郡) 부춘현(富春縣)
사망지 양양(襄陽)
시호 무열황제(武烈皇帝)
묘호 시조(始祖)
국적 오(吳)

소개[편집 | 원본 편집]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시조.

사실 오나라를 직접적으로 세운 인물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오나라를 세운건 사실상 그의 아들 손책대의 일이고 손견 본인 자체는 한실을 충실하게 섬긴 인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맹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맹장이다. 그러나 하필 원술 같은 군벌과 손을 잡는 바람에 말년엔 군벌의 부장노릇을 하다가 전사한 비운의 인물. 동탁이 천하에 4명만 없으면 천하가 평정되고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 4인 중 하나다, 나머지는 원소, 원술, 유표.

정사에 따르면 아마도 손자의 후손이라는데 진수가 '아마도 그럴껄?'이라는 뉘앙스로 써서 자칭인지 진짜인지는 모른다, 보통 진짜 확실하면 'XX는 XX의 후손이다'라고 쓰는데 손견에 경우엔 이렇게 썼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출생설화[편집 | 원본 편집]

유명한 삼국지 인물 가운데 '출생설화가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배송지가 주석으로 단 오서(吳書)에 손견의 출생설화가 적혀 있다. 오서의 출생설화는 손견이 태어날때 상서로운 징조가 있었다고 적혀있고 유명록[1] 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적혀 있다.

손견의 아버지 손종이 오이농사 짓고 살았는데, 어느 날 3명의 어린아이들이 와서 밥 좀 달라고 구걸을 했다. 손종은 이 어린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밥을 차려줬고 가는 길에 오이까지 박스로 싸서 줬는데, 어린아이들 중 한 놈이 손종에게 대뜸 이렇게 말하기를

"당신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무덤자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세에서 제후에 봉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몇 대 후에 천자가 되시겠습니까?"

손종이 무릎 꿇고 절하며 말하였다.

"몇 대 후에 천자가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중략)

손종은 훗날 손견을 낳았고, 손견은 손권을 낳았으며, 손권은 손량을 낳았고, 손량은 손휴를 낳았고, 손휴는 손화를 낳았고, 손화는 손호를 낳았다. 진이 토벌에 나서자, 손호는 항복하여 귀명후에 봉해졌다.

근데 자세히 보면 저 설화 족보가 좀 이상하게 꼬여있다. 손량, 손휴, 손화 모두 손권의 자식이다. 거기다가 손화는 황태자였긴 한데 손권이 말년에 깽판을 치는 바람에 황제가 되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다. 아무래도 설화 지은 사람이 오나라 족보를 좀 괴상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

초기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7살 어린 시절에 해적들을 혼자서 도망가게 하고 해적 한놈의 머리를 베어서 유명해졌는데 아버지가 말렸으나 손견이 분연히 나서 용맹을 보였다고 한다. 해적들이 이 기세를 보고 '혹시 뒤에 관병이 있는거 아녀?'라고 오해하여 재물을 내팽겨치고 달아났고 이 덕에 17살에 지방 현령이 됐다.

이후 황제를 참칭한 허창이라는 듣보잡을 의용군 천명으로 무찔러 하비성(삼국지 게임할때 보면 있는 서주의 그 하비성 맞다)의 승으로 있었는데 황건적의 난 당시 황건적 토벌 삼대장(황보숭, 주준, 노식) 주준이 표를 올려 손견을 좌군사마로 삼을 것을 청하니, 향리의 젊은 사람들로 하비에 따라와 있던 자들은 모두 손견을 따랐다. 이후 주준 휘하에서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완성에 있는 황건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후 장온이 서량의 반란을 토벌할때 그 휘하에 있었다. 이때 동탁을 봤는데 장온에게 동탁을 죽이라고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동탁연합군에서의 대활약[편집 | 원본 편집]

반동탁토벌군이 결성되자 임지인 장사를 버리고 북진했다. 이때 조인이라는 사람이 왕예를 주살하라는 격문을 뿌려 손견은 형주자사 왕예를 추궁하러 갔는데 왕예는 손견에게 추궁당하다 못해 자살했다. 문제는 왕예는 평소 손견이 무식하고 행동이 가볍다는 이유로 경시했다곤 하나 어찌됐든 손견의 상관이었다는 점이다.(장사는 형주 산하 군) 즉 하극상. 거기다가 손견이 왕예 살해의 명분이라 믿고 있던 중앙 고관의 격문 또한 조인이 날조한 가짜였다. 손견이 문무겸비의 명장 취급을 받긴 하고 삼국지 게임에서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높은 스탯을 받긴 하지만 사실 이런점만 보면 무는 몰라도 문쪽은 좀 애매한 감이 있다. 당장 왕예가 손견을 무시한 것도 무식한 무부로 여긴것 때문이고.

결국 이것 때문인지 원술과 손을 잡게 되는데 원술은 손견을 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손견은 기세가 등등했던지 이번엔 남양태수 장자가 자기한테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잔치에 초대 한 다음 머리를 잘라버렸다. 원술이 비어있는 남양을 꿀꺽한건 덤이다. 원술은 이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손견을 예주자사로 봉했고 이런식으로 자기 상사와 동료태수를 멋대로 죽이고 원술과 손을 잡아서 인지는 몰라도 이때 손견은 남양군 사람들이 모두 무서워서 떠니 못 얻을게 없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때까지만 해도 원술과 손견은 서로 상부상조 하면서 짝짜꿍이 잘 맞는 동업자였던 셈이다.

반동탁연합군에선 가장 활약상이 뛰어났던 장군이었다. 항상 이기기만 한건 아니고 서영한테 대판깨져서 불과 수십명과 함께 도주하다가 지가 쓰던 붉은 두건을 부하인 조무에게 씌워서 도망치기도 했다. 이때 추격하던 동탁의 장수 호진과 화웅을 역습해 화웅의 목을 베는 성과를 올리고 동탁과 여포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라 3번 이상 동탁과 여포를 무찔렀다. 연의에선 이 화웅의 목을 베는게 관우로 설정되어 있는데 화웅의 죽음은 정황상으로 다른점이 많다. 연의에선 화웅은 일군을 이끌고 18로 제후군 전체를 도발하면서 무장들을 무찌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론 호진의 휘하 도독[2] 가운데 하나로 손견이 패하고 그걸 추격하는 과정에서 손견이 역습으로 죽인것이다.

오죽했으면 동탁이 이각을 보내 손견의 자식들을 태수와 자사로 천거해주겠다며 회유했지만 손견은 동탁을 죽이겠다고 욕하면서 내쫒았다. 이때쯤이면 손견과 원술 관계도 상부상조하는 동업자 관계가 아니라 손견측이 좀 우위에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하긴 동탁의 군세를 상대로 연전연승했으니 그 명성이 하늘을 찔러 원술이 감히 상대하기 껄끄러웠을 것이다. 한 예로 원술이 군량을 조달하지 않자 손견이 밤새 말을 달려 원술에게 가서 항의했는데 이때 원술은 손견에게 쩔쩔맸다.

양인성에서는 노양까지는 1백여 리나 떨어져 있었는데, 손견이 밤에 말을 달려 원술을 만나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계획을 설명한 뒤

“출군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위로는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사로운 원한을 위로하고자 함입니다. 손견과 동탁은 골육의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장군이 참소하는 말을 받아들여 도리어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라 했다.

원술이 손견에게 쩔쩔매며, 곧 군량을 조달해 보내주었다. 손견이 둔영으로 돌아왔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이즘되면 되려 원술이 바지사장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원술도 마냥 손견한테 쫄아 있지만은 않았다. 단적으로 손견의 옥새사건의 진짜 이유 역시 손견이 옥새를 발견하자마자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공갈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술이 손견한테 무작정 쫄았다면 손견 무서워서 아내 잡고 협박할 생각을 하진 않았을것이다. 어쨌든 손견은 폐허가 된 낙양을 보고 한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부서진 낙양을 고치는데 힘을 다했다.

말년의 군벌부장[편집 | 원본 편집]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어쨌거나 손견이 반동탁연합군에 참가한답시고 장사를 오랜기간 비웠고 유표가 형주를 평정하면서 손견은 갈때 없는 유랑군 신세가 된다. 애당초 손견은 군벌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조정의 명을 받고 장사태수로 임명되었던 거라서 장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 공은 손견이 다 부렸지만 실제 위치는 원술이 손견 윗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손견의 활약덕에 원술의 위상은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부터 손견은 군대를 노양에 주둔시키고 원술의 명령을 따랐다.

또 이때 원소가 예주자사로 주앙을 임명시켜서 예주를 꿀꺽하는데 손견은 주앙, 주흔, 주우 형제와 싸워서 이를 막아 보려고 했으나 결국 주앙 형제가 예주를 꿀꺽하는걸 막을순 없었다. 사실 이건 결과적으로는 손견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 손견이 멋대로 태수를 참살하고 넘긴 남양에서 원술이 포악하게 굴어 백성들을 수탈하면서 마음대로 세금을 가둬서 주흔이 그것을 싫어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동탁연합군이 각자 군웅할거에 접어들고 본거지도 상실하자 손견은 "사직을 구하자고 일어섰는데 각자 이같이 하니 내가 누구랑 손을 잡아야 하는가?"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원술이랑 손을 잡은게 결과적으로는 실책이었다는 얘기. 결국 그 댓가로 그 역시 이 때부턴 원술 휘하에서 본격적인 부장노릇을 하게 된다. 이 꿀물셔틀질은 손견이 죽은 이후 아들 손책대까지 이어서 계속하게 된다.

이후에 원술은 손견을 시켜(이 대목부터 이미 상호간의 군형이 원술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보인다. 즉 꿀물셔틀) 형주의 유표를 공격하게 하는데 이때 손가의 철천지 원수가 되는 황조와 맞붙게 된다. 처음엔 손견이 황조를 이기는 듯해 보였으나 양양를 포위하고 황조를 추격했는데 황조에게 역습을 당해서 활 맞고 죽었다. 다른 기록으로는 다른 유표의 장수 여공이 바위를 던져서 손견이 머리가 깨졌다는 기록도 있는데 하여간 용맹을 앞세워서 성급하게 공격하려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동탁을 무찌르며 상승장군으로서 천하에 명성을 떨친 강동의 호랑이 손견은 말년에 원술의 꿀물셔틀질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역습당해 패하여 죽었다. 당시 나이 37세.

평가[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의 영향으로 인해 그가 독립적인 세력을 가지고 옥새를 얻어 야심을 품어 천하를 제패하려는 군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손자의 후예라는 식으로 띄워줘서 삼국지 게임 같은데서도 굉장히 문무에 뛰어난 스텟을 지닌 강동 손오의 초대군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유표를 친 것도 연의에선 손견이 본거지로 퇴각하던 도중 유표에게 뒷통수를 맞은 차에 원술이 편지를 보내 꼬신것처럼 묘사해서 마치 손견이 강동에서 이미 기반을 잡은 군벌로서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실제 손견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행적은 독립군벌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황건적의 난에선 주준 휘하로 참여했고 서량에선 장온 휘하로 참전했다. 반동탁연합군에서도 실질적으로는 동업자였지만 명목상으론 원술 휘하에 있었으며 이는 손견이 남양을 원술에게 떠먹여주고 손견의 벼슬을 원술이 올려주는데서도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낙양을 탈환한 것은 분명 손견인데 어느새 그 공을 원술이 먹어치우는 것도 그렇고...그리고 말년에는 실질적으로나 명목상으로나 원술의 꿀물셔틀. 실질적으로 따지면 진짜 군벌로서 강동에 오나라의 기반을 잡은 것은 손견이 아니라 그의 아들 손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사의 그는 독립적인 군벌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 휘하에서 뛰어난 공적을 올린 장수에 가까웠으며 정치적인 능력이나 성품면에선 무예에 비하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성격도 조급한 데다 개차반이었다. 그 성격 때문에 지 수명조차 단축시켰고, 오부인의 친정에서는 손견을 경박하고 교활하다 여겨 손견의 구혼을 거절하려 했었다. 이 성격은 아들들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손권은 최대한 이를 자제하려 했지만 술만 먹으면 여지 없이 드러났으며 나이를 먹어서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것을 증명했다. 비록 배송지는 충렬이라고 인정해줬으나 왕예는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죽이고, 장자도 마음에 안 든다고 죽이고, 중앙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관리 유표(유표가 중앙으로부터 멀어진 시기는 조조헌제를 손에 넣은 때이다.)까지 임의로 쳐들어가고... 이런 손견을 배송지가 충렬이라 한 것은 어쩌면 그만큼 후한 말의 상황이 막장이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군사적인 부분만큼은 반동탁 연합군 내에서 뛰어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한수, 서영, 황조에게는 패하기도 하는 등 패전 기록도 좀 있다.

기록들[편집 | 원본 편집]

손견은 양인에서 호진을 크게 격파하고 도독 화웅 등의 목을 베었다. 이에 동탁은 손견의 용맹과 굳셈을 꺼려하여[3] 이각 등을 사신으로 보내어 손견과 화친을 맺으며 손견의 아들들 중 10살이 넘은 자들을 각자가 원하는 곳의 자사 자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관동의 군대가 여러 차례 패하여 모두 나를 두려워하니, 능히 할 수 있는 게 없소. 오직 손견만이 젊고 외고집인데다, 자못 사람을 잘 등용하지만,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게 되어서는 나를 기피한다는 것을 알게 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나는 옛날에 주진(主神)과 같이 서정(西征)을 나섰는데, 서정은 변장과 한수를 금성(金城)에서 포위했소. 내가 장온에게 말하여, 거느리는 병사들로 주진의 뒤에 주둔케 하려 했는데, 장온이 듣지 않았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내가 이때 그 형세를 상언하였는데, 주진이 필히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았소. 대각(臺閣 :상서)에는 지금 (당시 일의) 본말(本末)이 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일을 아직 보고하지 않았으면서 장온은 또한 나더러 선령(先零)의 모반한 강(羌)족들을 토벌하게 하여, 서방 지역을 일시에 소탕하려 하였소. 나는 모든 그 일이 옳지 않음을 알지만, 그만두게 할 수 없어, 마침내 일을 행하여 별부사마(別部司馬) 유정(劉靖)을 남겨두어 보기 4천명을 거느리고 안정(安定)에 주둔하여 성세(聲勢)로 삼았소. 모반한 강족들이 곧바로 돌아가면서 돌아가는 길을 끊고자 하기에, 내가 조금씩 공격하여 번번이 (길을) 소통시키니, 안정에 병사가 남아있음을 두려워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오랑캐들은 안정에 수만 명이 있다고 말하지만, 유정에 대해서만은 몰랐소. 이 때 또한 소장을 올려 그 상황을 말하니, 손견은 주진을 행군을 따르면서 주진은 1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금성을 지으려 한다고 말하기에, 주진에게 2만 명으로 뒤에 주둔토록 하였소. 변장과 한수의 성중에는 묵을 곳이나 먹을 것이 없기에 응당 밖에서 운반하려 하지만, 주진의 대병(大兵)을 두려워하여 감히 가벼이 손견과 대전하지 못했고, 손견은 병사가 풍족하여 그 운반로를 끊고, 아이들을 써서 강족이 반드시 곡중(谷中)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니, 양주(凉州)는 혹 안정될 수 있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장온은 이미 능히 나를 기용하지 못했고, 주진 또한 손견을 등용하지 못하여, 직접 금성을 공격하고 그 바깥담을 무너뜨려서, 말을 달려 장온에게 얘기하게 하여 나의 승리가 아침저녁에 달려 있다고 하니, 장온이 이 때 또한 스스로 계획이 적중했다 여겼소. 아과(兒果)에게 건너가 규원(葵園)을 끊어버리니, 주진은 군수품을 버리고 달아나고 아과는 내 계책대로 되었소. 대각에서는 이것 때문에 나를 도향후(都鄕侯)에 봉했소. 손견이 좌군사마(佐軍司馬)가 된 것은 이를 보는 바가 남들도 같이 보았듯이, 나도 할 수 있었던 것일 뿐이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유애가 말하길 "손견이 비록 때에 맞춰 계획을 살폈지만, 원래 스스로는 이각이나 곽사만 못합니다. 듣자하니 미양정(美陽亭) 북쪽에 있는데, 보기 1천여 명을 거느리고 적들과 싸웠다가 거의 다 죽고, 인수마저 잃어버렸다 하니, 이것은 그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라 했다. 동탁이 말하길

"손견은 그 때 오합지졸의 무리로 의병을 따라와서 병사는 정예함만 못하지만, 또 전쟁에 있어서는 예리함과 노둔(老鈍)함이 있소. 다만 산동의 대세를 논해 본다면, 끝내 갈 곳이 없을 뿐이오."

라 했다. 유애가

"산동의 어린아이들이 백성들 핍박하고 약탈하여, 노략질과 반역을 저지르나, 그 예봉은 남들만 못하며,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와 강노의 활용도 남들만 못하니, 또한 어찌 오래 끌겠습니까?"

라 했다. 동탁이

"그렇소. 다만 두 원씨와 유표, 손견만 죽이면, 천하는 스스로 복종하여 나를 따를 뿐이오."-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배송지의 평가[편집 | 원본 편집]

신 송지는 손견이 의흥군(義興軍) 중에서 가장 충렬(忠烈)이란 칭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왕조의 신기(神器)를 얻어 숨겨두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남몰래 다른 뜻을 품는 것이니, 어찌 충신이라 하겠는가. 오나라의 사서들은 나라를 화려하게 꾸미고자 하였지만, 손견의 빼어난 덕을 훼손했음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하여 자손에게 전했다면, 가령 육새의 수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기르는 바도 틀렸을 것이고, 손호가 항복했어도 다만 또한 육새를 보내지 않고 전국새를 숨겨두었다고 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천명을 받는 것인데, 어찌 천명이 돌아가는 당(堂)에서 취할 것이며, 만약 (앞서의) 좋은 말만 했다면, 이 옥새는 지금도 아직 손씨 가문에 있을 것이다. 필부가 옥벽을 숨겨도 오히려 죄가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 물건에 있어서랴!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배송지 주석

배송지는 손견은 옥새를 자신이 취하지 않았던 충렬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한황조의 충신인데 후손들이 그걸 손견이 가지고 있다면서 윤색하는 말을 써 손견의 덕을 훼손하였다며 손견 후예들의 행실을 비판하였다.

몇몇 손견팬들은 이순신 장군과 같이 손견이 충무의 시호를 받았다고 주장하나 실제론 배송지의 '손견은 옥새를 함부로 취하지 않았으니 충렬의 칭호를 받아도 좋을거 같다'는 칭찬을 와전시킨 것이다.

각주

  1. 배송지가 단 정사 주석이 아니다.
  2. 후한서, 삼국지 정사 다 뒤져봐도 손견전에 딱 한번 나오고 마는 인물이다. 나본이 연의에서 미친듯이 띄워준 무장 가운데 하나, 손견팬들이 화웅참살을 손견의 가장 큰 공 중 하나로 여기는 건 연의랑 정사랑 인식이 짬뽕되어서 그렇다.
  3. 영웅기, 세설신어, 위략, 오략, 자치통감 이런게 아니라 정사 본문에 정식으로 기록된 부분이다. 손견의 용맹은 여포를 밑에 둔 동탁이 꺼린 용맹인 것이다. 근데 이때 당시에 여포가 팀킬짓을 많이 하긴 했다. 여포에게 기병을 이끌고 호진과 화웅을 보조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지 멋대로 행동하지 않나 여포가 강행군을 주장해 지친 상태로 손견군이랑 붙지를 않나 뜬금없이 휴식중에 손견군이 나타났다면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도망쳤다가 돌아오지를 않나, 이때 여포가 한 짓 보면 똥별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