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Flyingcat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8월 12일 (목) 18:43 판 (새 문서: 분류:미국의 학자 {| class="wikitable" |+ 벤저민 휘소 리 Benjamin Whisoh Lee |- | colspan="2" | |- | 이름 || 벤저민 휘소 리 (이휘소) |- | 출생 || 19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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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휘소 리 Benjamin Whisoh Lee
이름 벤저민 휘소 리 (이휘소)
출생 1935.01.91, 일제강점기 서울
사망 1977.06.16(향년 42세), 미국 일리노이주 케와니
국적 한국(1968년 이전), 미국(1968년 이후)
연구분야 입자물리학, 이론물리학
지도교수 에이브러햄 클라인
제자 강주상

이휘소는 한국계 미국인 물리학자이다.

상세

1952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으나 그 이후 물리학에 흥미를 느껴 문리과대학의 물리학과 로 전과를 시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국 오하이오주의 마이애미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56년에 대학을 졸업한 다음 피츠버그 대학교로 진학하여 1958년에 석사 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진학하여 1961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부터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의 이론물리부장을 맡았다. 1977년에 스티븐 와인버그와 함께 〈Cosmological Lower Bound on Heavy-Neutrino Masses〉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였고 그 해 7월 25일에 출판되었다.[1] 그러나 이휘소 본인은 6월 16일에 교통사고로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출판된것을 볼 수 없었다. 와인버그와의 이러한 인연으로 그는 이휘소 사후 그 부고를 쓰게 되며 이후 40년 가까이 지난 2016년에도 인터뷰 도중 "지금도 그(이휘소)가 그립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2]

기타

  •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공석하의 <핵물리학자 이휘소>에서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에 협력한 것으로 왜곡해서 묘사되었고 유족들이 이에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하여 출판금지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에서는 소설이 실제 인물을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였음은 인정하였으나 이것이 명예를 훼손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명예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고 하여 이를 기각하였다.[3] 물론 핵무기와 군사독재에 전부 반대했던 이휘소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것 같지만.
  1. Lee, Benjamin W., and Steven Weinberg. "Cosmological lower bound on heavy-neutrino masses." Physical Review Letters 39.4 (1977): 165.
  2. 표준모형의 산증인, 스티븐 와인버그 교수 인터뷰
  3. 서울지법 1995. 6. 23., 선고, 94카합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