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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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2"|[[파일:F0017223 4e638df65ea72.jpg|200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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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align:(center) colspan="2"|손견(孫堅)
!text-align:(center) colspan="2"|손견(孫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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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오(吳)
|국적||오(吳)
|}
|}
== 소개 ==
[[오나라]]의 시조
사실 오나라를 직접적으로 세운 인물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오나라를 세운건 사실상 그의 아들 손책대의 일이고 손견 본인 자체는 한실을 충실하게 섬긴 인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맹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맹장이다. 그러나 하필 원술 같은 군벌과 손을 잡는 바람에 말년엔 군벌의 부장노릇을 하다가 전사한 비운의 인물. [[동탁]]이 천하에 4명만 없으면 천하가 평정되고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 4인 중 하나다, 나머지는 [[원소]], [[원술]], [[유표]].
정사에 따르면 아마도 [[손자]]의 후손이라는데 진수가 '아마도 그럴껄?'이라는 뉘앙스로 써서 자칭인지 진짜인지는 모른다, 보통 진짜 확실하면 'XX는 XX의 후손이다'라고 쓰는데 손견에 경우엔 이렇게 썼다.
== 생애 ==
=== 출생설화 ===
유명한 삼국지 인물 가운데 '출생설화가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배송지]]가 주석으로 단 오서(吳書)에 손견의 출생설화가 적혀 있다. 오서의 출생설화는 손견이 태어날때 상서로운 징조가 있었다고 적혀있고 유명록<ref>배송지가 단 정사 주석이 아니다.</ref> 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적혀 있다.
손견의 아버지 [[손종]]이 오이농사 짓고 살았는데, 어느 날 3명의 어린아이들이 와서 밥 좀 달라고 구걸을 했다. 손종은 이 어린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밥을 차려줬고 가는 길에 오이까지 박스로 싸서 줬는데, 어린아이들 중 한 놈이 손종에게 대뜸 이렇게 말하기를
{{인용문2|
"당신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무덤자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세에서 제후에 봉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몇 대 후에 천자가 되시겠습니까?"


'''중국 삼국시대 중 가장 무술이 뛰어난 최강의 장군'''
손종이 무릎 꿇고 절하며 말하였다.


'''한국의 충무공 이순신과 비견되는 위대한 충신'''
"몇 대 후에 천자가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중략)


== 소개 ==
손종은 훗날 손견을 낳았고, 손견은 손권을 낳았으며, 손권은 손량을 낳았고, 손량은 손휴를 낳았고, 손휴는 손화를 낳았고, 손화는 손호를 낳았다. 진이 토벌에 나서자, 손호는 항복하여 귀명후에 봉해졌다.}}
손견은 삼국지 전체에서 가장 무예가 뛰어난 최강의 장수이자 후한의 마지막 슈퍼맨이였다. 하지만 [[나본]](羅本)은 자기가 좋아하는 [[관우]](關羽)를 띄워주기 위해 손견을 거의 잡장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실존인물을 기준으로 한다면 누가 뭐래도 삼국지 전체에서 싸움실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두말할 필요 없이 손견이다. 손견에 비하면 오히려 관우가 잡장이다. [[화웅]](華雄)을 죽여 [[동탁]](董卓)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간 손견에 비해, 관우는 [[악진]](樂進)에게 시종일관 패배했고 [[감녕]](甘寧)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게다가 [[배송지]](裴松之)의 주석에 의하면 손견은 영웅 중의 영웅으로 평가했으며 배송지가 가장 크게 칭찬한 인물 역시 손견이였다.
 
근데 자세히 보면 저 설화 족보가 좀 이상하게 꼬여있다. 손량, 손휴, 손화 모두 손권의 자식이다. 거기다가 손화는 황태자였긴 한데 손권이 말년에 깽판을 치는 바람에 황제가 되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다. 아무래도 설화 지은 사람이 오나라 족보를 좀 괴상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
 
=== 초기 생애 ===
17살 어린 시절에 해적들을 혼자서 도망가게 하고 해적새끼 한놈의 머리를 베어서 유명해졌는데 아버지가 말렸으나 손견이 분연히 나서 용맹을 보였다고 한다. 해적들이 이 기세를 보고 '혹시 뒤에 관병이 있는거 아녀?'라고 오해하여 재물을 내팽겨치고 달아났고 이 덕에 17살에 지방 현령이 됐다.
 
이후 황제를 참칭한 허창이라는 듣보잡을 의용군 천명으로 무찔러 하비성(삼국지 게임할때 보면 있는 서주의 그 하비성 맞다)의 승으로 있었는데 황건적의 난 당시 황건적 토벌 삼대장(황보숭, 주준, 노식) 주준이 표를 올려 손견을 좌군사마로 삼을 것을 청하니, 향리의 젊은 사람들로 하비에 따라와 있던 자들은 모두 손견을 따랐다. 이후 주준 휘하에서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완성에 있는 황건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후 장온이 서량의 반란을 토벌할때 그 휘하에 있었다. 이때 동탁을 봤는데 장온에게 동탁을 죽이라고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반동탁연합군에서의 대활약 ===
반동탁토벌군이 결성되자 임지인 장사를 버리고 북진했다. 이때 조인이라는 사람이 왕예를 주살하라는 격문을 뿌려 손견은 형주자사 왕예를 추궁하러 갔는데 왕예는 손견에게 추궁당하다 못해 자살했다. 문제는 왕예는 평소 손견이 무식하고 행동이 가볍다는 이유로 경시했다곤 하나 어찌됐든 손견의 상관이었다는 점이다.(장사는 형주 산하 군) 즉 하극상. 거기다가 손견이 왕예 살해의 명분이라 믿고 있던 중앙 고관의 격문 또한 조인이 날조한 가짜였다. 손견이 문무겸비의 명장 취급을 받긴 하고 삼국지 게임에서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높은 스탯을 받긴 하지만 사실 이런점만 보면 무는 몰라도 문쪽은 좀 애매한 감이 있다. 당장 왕예가 손견을 무시한것도 무식한 무부로 여긴것 때문이고.
 
결국 이것 때문인지 원술과 손을 잡게 되는데 원술은 손견을 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손견은 기세가 등등했던지 이번엔 남양태수 장자가 자기한테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잔치에 초대 한 다음 머가리를 잘라버렸다. 원술이 비어있는 남양을 꿀꺽한건 덤이다. 원술은 이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손견을 예주자사로 봉했고 이런식으로 자기 상사와 동료태수를 멋대로 죽이고 원술과 손을 잡아서 인지는 몰라도 이때 손견은 남양군 사람들이 모두 무서워서 떠니 못 얻을게 없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때까지만 해도 원술과 손견은 서로 상부상조 하면서 짝짜꿍이 잘 맞는 동업자였던 셈이다.
 
반동탁연합군에선 가장 활약상이 뛰어났던 장군이었다. 항상 이기기만 한건 아니고 서영한테 대판깨져서 불과 수십명과 함께 도주하다가 지가 쓰던 붉은 두건을 부하인 조무에게 씌워서 도망치기도 했다. 이때 추격하던 동탁의 장수 호진과 화웅을 역습해 화웅의 목을 베는 성과를 올리고 동탁과 여포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라 3번 이상 동탁과 여포를 무찔렀다. 연의에선 이 화웅의 목을 베는게 관우로 설정되어 있는데 화웅의 죽음은 정황상으로 다른점이 많다. 연의에선 화웅은 일군을 이끌고 18로 제후군 전체를 도발하면서 무장들을 무찌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론 호진의 휘하 도독<ref>후한서, 삼국지 정사 다 뒤져봐도 손견전에 딱 한번 나오고 마는 인물이다. 나본이 연의에서 미친듯이 띄워준 무장 가운데 하나, 손견팬들이 화웅참살을 손견의 가장 큰 공 중 하나로 여기는건 연의랑 정사랑 인식이 짬뽕되어서 그렇다.</ref> 가운데 하나로 손견이 패하고 그걸 추격하는 과정에서 손견이 역습으로 죽인것이다.
 
오죽했으면 동탁이 이각을 보내 손견의 자식들을 태수와 자사로 천거해주겠다며 회유했지만 손견은 동탁을 죽이겠다고 욕하면서 내쫒았다. 이때쯤이면 손견과 원술 관계도 상부상조하는 동업자 관계가 아니라 손견측이 좀 우위에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하긴 동탁의 군세를 상대로 연전연승했으니 그 명성이 하늘을 찔러 원술이 감히 상대하기 껄끄러웠을 것이다. 한 예로 원술이 군량을 조달하지 않자 손견이 밤새 말을 달려 원술에게 가서 항의했는데 이때 원술은 손견에게 쩔쩔맸다.
 
{{인용문2|
양인성에서는 노양까지는 1백여 리나 떨어져 있었는데, 손견이 밤에 말을 달려 원술을 만나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계획을 설명한 뒤
 
“출군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위로는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사로운 원한을 위로하고자 함입니다. 손견과 동탁은 골육의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장군이 참소하는 말을 받아들여 도리어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라 했다.  
 
[주 : 『강표전』에 실린 손견의 말에 의하면
 
"「큰 공훈이 승리에 달려 있는데 군량이 이어지지 않으니, 이것은 오기(吳起)가 서하(西河)에서 탄식하며 운 까닭이요, 악의(樂毅)가 수성(垂成)에서 한을 남긴 까닭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 어린 시절 ==
라 했다고 한다.]  
손견은 하늘이 내린 천신의 후예이다. 때문에 인간 나부랭이 따위로는 천신의 후예인 손견을 당해낼 수 없음이 지극히 당연했다. 손견은 비록 하급관리 가문에서 태어난 일개 평민에 불과했지만 '''손견은 삼국지 전체에서 유일하게 탄생신화가 있는 인물이다.''' 손견의 아버지인 [[손종]]()은 관리를 때려치고 낙향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살고 있던 어느 날 세 명의 소년이 "죄송하지만 저희들이 배가 존나게 고파서 그러니 밥 좀 적선해주실 수 있나요?"라 물었다. 이에 손종은 이 소년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밥을 배터지게 먹인 뒤 그들이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최대한의 오이를 선물로 주고 배웅해줬다. 그런데 그 소년들 중 하나가 갑자기 손종에게 근엄한 목소리로


{{인용문|"우리들은 신선입니다. 당신의 이런 은혜에 감복하여 당신에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당신 본인이 한나라의 승상이 되는게 좋으십니까, 아니면 당신의 자식들이 천황을 포함한 황족이 되는 것이 좋으십니까?"}}
원술이 손견에게 쩔쩔매며, 곧 군량을 조달해 보내주었다. 손견이 둔영으로 돌아왔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라고 물어봤다. 비록 소년답지 않고 어른스러운 근엄한 목소리이긴 하지만 말 속에 뭔가 있는 것을 직감한 손종은 그 소년들에게 절을 올리고는 이렇게 말하기를
이즘되면 되려 원술이 바지사장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원술도 마냥 손견한테 쫄아 있지만은 않았다. 단적으로 손견의 옥새사건의 진짜 이유 역시 손견이 옥새를 발견하자마자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공갈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술이 손견한테 무작정 쫄았다면 손견 무서워서 아내 잡고 협박할 생각을 하진 않았을것이다. 어쨌든 손견은 폐허가 된 낙양을 보고 한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부서진 낙양을 고치는데 힘을 다했다.


{{인용문|'''"저 따위가 무슨 왕후장상입니까? 그냥 살던대로 살겠습니다."'''}}
=== 말년의 군벌부장 ===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어쨌거나 손견이 반동탁연합군에 참가한답시고 장사를 오랜기간 비웠고 유표가 형주를 평정하면서 손견은 갈때 없는 유랑군 신세가 된다. 애시당초 손견은 군벌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조정의 명을 받고 장사태수로 임명되었던 거라서 장사의 소유권을 주장할수도 없었다. 거기에 공은 손견이 다 부렸지만 실제 위치는 원술이 손견 윗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손견의 활약덕에 원술의 위상은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부터 손견은 군대를 노양에 주둔시키고 원술의 명령을 따랐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소년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판단한 이후 손종에게 묘자리를 알려줬다. 손종은 그 묘자리로 자신의 조상들을 이장시켰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손견이다. 손종은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조조]]()의 의붓할아버지인 [[조등]]()이 천황 폐하를 모시는 천하의 환관, [[유비]]()의 아버지인 [[유홍]]()이 한나라 황실 종친, [[원소]]()의 아버지인 [[원봉]]()이 삼공을 지낸 명문귀족인 것에 비하면 완전히 개털인 인물이였다.
또 이때 원소가 예주자사로 주앙을 임명시켜서 예주를 꿀꺽하는데 손견은 주앙, 주흔, 주우 형제와 싸워서 이를 막아 보려고 했으나 결국 주앙 형제가 예주를 꿀꺽하는걸 막을순 없었다. 사실 이건 결과적으로는 손견에게도 책임이 있는것이 손견이 멋대로 태수를 참살하고 넘긴 남양에서 원술이 포악하게 굴어 백성들을 수탈하면서 마음대로 세금을 가둬서 주흔이 그것을 싫어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동탁연합군이 각자 군웅할거에 접어들고 본거지도 상실하자 손견은 "사직을 구하자고 일어섰는데 각자 이같이 하니 내가 누구랑 손을 잡아야 하는가?"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손견은 어려서부터 매우 몸이 건강했고 이는 자기의 형인 [[손강]]()이 허약한 체질인 것과 반대된다. 손강은 동네 소년배들에게 놀림을 받았을지언정 동생인 손견이 무서워서 대놓고 때리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등의 행동은 절대 하지 못했다. 손견은 자기 집안의 형편상 따로 무술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애초에 손견은 '''천신의 후예였기 때문에 타고난 능력으로 무술을 매우 잘 했다.''' 증거로 손견은 자기 고향 옆에 있는 항구에서 호옥(胡玉)이끄는 도적 잔당을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궤멸시켰다.''' 때 손견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였으며, 이 공로로 손견은 아직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사또가 되었다. 174년에 손견은 강동 최고의 미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오국태와 결혼했다. 그리고 180년에 손견은 구성(區星)과 허창(許昌)이 무릉(武陵)과 장사(長沙)에서 난을 일으킨 것을 알고 이들을 제압하여 조정에 보고했고 조정에서는 그 공으로 장사태수 오정후에 임명했는데 이 때 손견의 나이는 겨우 26살이였다. 손견은 명실공이 한나라의 슈퍼히어로로 대두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원술이랑 손을 잡은게 결과적으로는 실책이었다는 얘기. 결국 댓가로 역시 때부턴 원술 휘하에서 본격적인 부장노릇을 하게 된다. 이 꿀물셔틀질은 손견이 죽은 이후 아들 손책대까지 이어서 계속하게 된다.


== 간신 동탁을 죽여라! ==
이후에 원술은 손견을 '''시켜'''(이 대목부터 이미 상호간의 군형이 원술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보인다. 즉 '''꿀물셔틀''') 형주의 유표를 공격하게 하는데 이때 손가의 철천지 원수가 되는 황조와 맞붙게 된다. 처음엔 손견이 황조를 이기는 듯해 보였으나 양양를 포위하고 황조를 추격했는데 황조에게 역습을 당해서 활 맞고 죽었다. 다른 기록으로는 다른 유표의 장수 여공이 바위를 던져서 손견이 머가리가 깨졌다는 기록도 있는데 하여간 용맹을 앞세워서 성급하게 공격하려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동탁을 무찌르며 상승장군으로서 천하에 명성을 떨친 강동의 호랑이 손견은 말년에 원술의 꿀물셔틀질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역습당해 패하여 죽었다. 당시 나이 37세.


== 평가 ==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의 영향으로 인해 그가 독립적인 세력을 가지고 옥새를 얻어 야심을 품어 천하를 제패하려는 군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손자의 후예라는 식으로 띄워줘서 삼국지 게임 같은데서도 굉장히 문무에 뛰어난 스텟을 지닌 강동 손오의 초대군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유표를 친 것도 연의에선 손견이 본거지로 퇴각하던 도중 유표에게 뒷통수를 맞은 차에 원술이 편지를 보내 꼬신것처럼 묘사해서 마치 손견이 강동에서 이미 기반을 잡은 군벌로서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 낙양의 백성들을 위해서 ==
그러나 실제 손견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행적은 독립군벌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황건적의 난에선 주준 휘하로 참여했고 서량에선 장온 휘하로 참전했다. 반동탁연합군에서도 실질적으로는 동업자였지만 명목상으론 원술 휘하에 있었으며 이는 손견이 남양을 원술에게 떠먹여주고 손견의 벼슬을 원술이 올려주는데서도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낙양을 탈환한것은 분명 손견인데 어느새 그 공을 원술이 먹어치우는 것도 그렇고...그리고 말년에는 실질적으로나 명목상으로나 원술의 꿀물셔틀. 실질적으로 따지면 진짜 군벌로서 강동에 오나라의 기반을 잡은 것은 손견이 아니라 그의 아들 손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손견은 동탁을 무찌르고 낙양에 도착했지만 낙양은 이미 동탁이 불을 질러버려 폐허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미처 동탁을 따라서 장안으로 피난을 가지 못한 낙양의 일부 백성들이 손견을 보자마자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다. 하지만 손견은 자기 때문에 동탁이 낙양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 것으로 알고 죄의식을 가지며 백성들에게


{{인용문|'''"국민 여러분들, 저는 여러분들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한나라 200년 고도인 낙양은 저 때문에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한 마음을 표하며 제가 최대한 힘 닿는데까지 낙양을 복구해드리겠습니다."'''}}
정사의 그는 독립적인 군벌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 휘하에서 뛰어난 공적을 올린 장수에 가까웠으며 정치적인 능력이나 성품면에선 무예에 비하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실에 대한 충의만은 배송지가 인정했듯히 진심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 무용에 대해선 당시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났다. 그가 후에 무열황제의 자리에 오른것은 어디까지나 아들 손권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에 추숭받은 것이지 그가 원해서는 아니었다. 배송지 역시 그런 측면에서 손견만의 충의를 높게 평가했고 후손들의 평가는 그렇게 좋게만 써주지 않았다.


라고 선언하였다.
=== 기록들 ===
{{인용문2|
손견은 양인에서 호진을 크게 격파하고 도독 화웅 등의 목을 베었다. 이에 '''동탁은 손견의 용맹과 굳셈을 꺼려하여'''<ref>영웅기, 세설신어, 위략, 오략, 자치통감 이런게 아니라 '''정사 본문에 정식으로 기록된 부분'''이다. '''손견의 용맹은 무려 여포를 밑에 둔 동탁이 무서워서 벌벌떤 용맹'''인 것이다. 근데 이때 당시에 여포 새끼가 팀킬짓을 존나 많이 하긴 했다.  여포에게 기병을 이끌고 호진과 화웅을 보조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지 멋대로 행동하지 않나 여포가 강행군을 주장해 지친 상태로 손견군이랑 붙지를 않나 뜬금없이 휴식중에 손견군이 나타났다면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도망쳤다가 돌아오지를 않나, 이때 여포가 한 짓 보면 똥별 새끼가 따로 없다.</ref> 이각 등을 사신으로 보내어 손견과 화친을 맺으며 손견의 아들들 중 10살이 넘은 자들을 각자가 원하는 곳의 자사 자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 죽음 ==


{{인용문2|
관동의 군대가 여러 차례 패하여 모두 나를 두려워하니, 능히 할 수 있는 게 없소. 오직 손견만이 젊고 외고집인데다, 자못 사람을 잘 등용하지만,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게 되어서는 나를 기피한다는 것을 알게 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 능력 ==
{{인용문2|
'''싸움! 이거 하나만은 진짜 미치도록 잘한다. 손견을 싸움으로 이기는 건 기습밖에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손견의 별명 강동 맹호는 당대 중국 전토에서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만들 정도였다. 또한 한나라 황실에서도 손견의 전투력이 얼마나 우주괴수인지를 알기에 서량에서 일어난 난리를 수고스럽게 저 멀리 강남 출신의 손견에게 시킬 정도였다.  게다가 손견의 싸움실력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싹이 보였는데 항구에 해적들이 출몰하자 그걸 혼자 가서 소탕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구성과 허창이 반란을 일으키자 싸그리 다 진압한게 손견이다. 손견의 강력함은 중국 전토 전체를 진동하게 했으며 이 때문에 동탁이 전횡을 일삼자 반동탁 연합군의 선봉장이 되어 사실상 동탁군을 상대로 혼자서 싸웠고 이겨서 화웅을 척살하여 동탁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등 승승장구했을 정도였다. 특히 당대 병주라 하는 곳은 싸움꾼들만 집중적으로 배출하는 지역으로 아주 악명이 높았으며 그 병주 최강자가 바로 다름아닌 여포였음에도 불구하고, 손견이 여포의 무예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이요 여포가 손견이 무서워 벌벌 떨었을 정도였다.
나는 옛날에 주진(主神)과 같이 서정(西征)을 나섰는데, 서정은 변장과 한수를 금성(金城)에서 포위했소. 내가 장온에게 말하여, 거느리는 병사들로 주진의 뒤에 주둔케 하려 했는데, 장온이 듣지 않았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손견의 무예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였으며 동서고금을 통털어서도 라이벌은 [[항우]]나 [[조아생 뮈라]] 정도밖에 없다.
{{인용문2|
내가 이때 형세를 상언하였는데, 주진이 필히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았소. 대각(臺閣 :상서)에는 지금 (당시 일의) 본말(本末)이 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 두뇌 면에서의 평가 ===
{{인용문2|
태어나서 단 한번도 글공부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판단력과 정치능력을 발휘했다. 원술이라는 귀족 도련님을 옹립해서 그의 이름을 이용해서 명성을 최대한 빨리 쌓았고 뭐가 한나라 황실에 도움이 되는지 가장 빨리 판단해냈다. 어렸을 때 이미 해적들을 상대로 페이크를 쳐서 진두지휘하는 척해서 동요시킨 뒤 적진에 홀로 뛰어들어 기어이 해적의 목을 베기까지 했다.
일을 아직 보고하지 않았으면서 장온은 또한 나더러 선령(先零)의 모반한 강(羌)족들을 토벌하게 하여, 서방 지역을 일시에 소탕하려 하였소. 나는 모든 그 일이 옳지 않음을 알지만, 그만두게 할 수 없어, 마침내 일을 행하여 별부사마(別部司馬) 유정(劉靖)을 남겨두어 보기 4천명을 거느리고 안정(安定)에 주둔하여 성세(聲勢)로 삼았소. 모반한 강족들이 곧바로 돌아가면서 돌아가는 길을 끊고자 하기에, 내가 조금씩 공격하여 번번이 (길을) 소통시키니, 안정에 병사가 남아있음을 두려워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적어도 글공부만 제대로 했더라면 당대의 기재가 되었을 인물이 손견이였다.
{{인용문2|
오랑캐들은 안정에 수만 명이 있다고 말하지만, 유정에 대해서만은 몰랐소. 이 때 또한 소장을 올려 그 상황을 말하니, 손견은 주진을 행군을 따르면서 주진은 1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금성을 지으려 한다고 말하기에, 주진에게 2만 명으로 뒤에 주둔토록 하였소. 변장과 한수의 성중에는 묵을 곳이나 먹을 것이 없기에 응당 밖에서 운반하려 하지만, 주진의 대병(大兵)을 두려워하여 감히 가벼이 손견과 대전하지 못했고, 손견은 병사가 풍족하여 그 운반로를 끊고, 아이들을 써서 강족이 반드시 곡중(谷中)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니, 양주(凉州)는 혹 안정될 수 있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 무술 면에서의 평가 ===
{{인용문2|
'''한 마디로 최종 보스이다. 동탁과 여포를 공포에 떨게 했던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전설이다.''' 동탁이 누구인가? 괴력을 지닌 천하장사에 명사수로 악명이 높은 위인이였다. 그런 동탁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화웅 정도면 다른 무관들을 아득히 뛰어넘고도 철철 넘치는 무예가 완전히 뛰어난 동탁군의 결전병기였는데 그런 동탁군의 결전병기인 화웅마저 끔살시켜버린게 손견이다.
장온은 이미 능히 나를 기용하지 못했고, 주진 또한 손견을 등용하지 못하여, 직접 금성을 공격하고 그 바깥담을 무너뜨려서, 말을 달려 장온에게 얘기하게 하여 나의 승리가 아침저녁에 달려 있다고 하니, 장온이 이 때 또한 스스로 계획이 적중했다 여겼소. 아과(兒果)에게 건너가 규원(葵園)을 끊어버리니, 주진은 군수품을 버리고 달아나고 아과는 내 계책대로 되었소. 대각에서는 이것 때문에 나를 도향후(都鄕侯)에 봉했소. 손견이 좌군사마(佐軍司馬)가 된 것은 이를 보는 바가 남들도 같이 보았듯이, 나도 할 수 있었던 것일 뿐이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그의 이명은 강동 맹호이다. 이것은 당대에는 강력함의 상징이였고 동탁이 두려워하는 딱 3가지 중 하나가 손견이 포함되었다.


* 원소의 명성
{{인용문2|
* 유표의 병력
유애가 말하길
* 손견의 싸움실력
"손견이 비록 때에 맞춰 계획을 살폈지만, 원래 스스로는 이각이나 곽사만 못합니다. 듣자하니 미양정(美陽亭) 북쪽에 있는데, 보기 1천여 명을 거느리고 적들과 싸웠다가 거의 다 죽고, 인수마저 잃어버렸다 하니, 이것은 그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탁은 손견을 너무나 무서워했기 때문에 손견과의 화친이 결렬되자 낙양에 불을 지르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강수를 두고 말았다. 동탁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오직 손견 한 사람이 무서워서 낙양에 불을 지른 것이다.
라 했다. 동탁이 말하길


게다가 군재 역시 1천명의 병력으로 5만명의 병력을 가진 구성과 허창을 단 2주일만에 무너뜨렸다. 안 그래도 병력들을 자신만만하게 만든 손견인데 뛰어난 전술적 식견까지 겸비한지라 손견을 상대로는 병력이 많은들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정도로 손견은 군신(軍神)에 가까운 인물이다.
"손견은 그 때 오합지졸의 무리로 의병을 따라와서 병사는 정예함만 못하지만, 또 전쟁에 있어서는 예리함과 노둔(老鈍)함이 있소. 다만 산동의 대세를 논해 본다면, 끝내 갈 곳이 없을 뿐이오."


== 인격 ==
라 했다. 유애가
'''강직하고 충직하다. 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영지인 장사성을 뒷치기당할 위험성이 노출되는데도 불구하고 천황인 유협을 동탁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나섰다. 그리고 실제로도 싸이코패스인 유표에게 장사성을 뒷치기당했다. 그리고 그 장사성을 되찾기 위해서 유표를 공략했다가 황조가 몰래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그리고 언제나 솔선수범이다. 전투가 벌어지면 맨 앞에서 싸우는 장수는 늘 손견이였다. 손견은 든든한 오른팔인 한당, 황개 등을 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선봉을 떠넘기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선봉에 선 손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을 과시했고 부하들 사이에서도 "우리에겐 손견이 있다!"라 생각하며 그 어떤 군대보다도 자신감이 충만하게 했다. 하지만 그만큼 적에게 노출이 많았고 이 때문에 하마터면 화웅의 기습으로 죽을 뻔 했는데 조무에게 화웅의 추격을 따돌리도록 조치해서 겨우 살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솔선수범이 손견에게는 오히려 독이였다.''' 이 때문에 손견은 자신의 군영을 직접 점검하다가 황조가 보낸 자객의 독화살이 뒷통수에 박혀 죽게 되었다.
"산동의 어린아이들이 백성들 핍박하고 약탈하여, 노략질과 반역을 저지르나, 그 예봉은 남들만 못하며,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와 강노의 활용도 남들만 못하니, 또한 어찌 오래 끌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다른 인물들 거의 전부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달려온 것과는 달리 '''손견은 오직 한나라 황실에 대한 충성만으로 달려온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생각해도 빈집털이를 당할거 뻔한 반동탁 연합군으로의 원정을 떠났던 것이다.
라 했다. 동탁이


== 처세 ==
"그렇소. 다만 두 원씨와 유표, 손견만 죽이면, 천하는 스스로 복종하여 나를 따를 뿐이오."-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이 부분에서 손견이 좀 많이 아쉽다.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었으면 그만큼 자신을 돌볼줄도 알았어야 하는 거였는데 손견에게 그런게 없었다. 자기가 천황 폐하이건 말건, 자기가 천왕 전하이건 말건 '''전쟁에서 언제나 맨 앞에서 지휘했기 때문에 언제나 적군들의 목표 0순위였다.''' 이것만 조심했으면 손견은 그야말로 더할나위 없는 완벽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견이 계속 살아서 천황을 보좌해야 한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분명 손견은 가장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였는데 제 아무리 천신의 후예라 해도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가 인간의 육체인 이상 그에 걸맞는 처신을 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손견은 그러지 못했고 결국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유표에 의해 제거당하는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반동탁연합군 내에서 그의 용맹과 무용을 통한 업적이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괜히 동탁이 두려워하면서 손견이 죽어야 자신도 안심할수 있다고 한 게 아닌것이다. 정사를 통틀어서 이 정도로 빛나는 군공을 얻고 패배가 적은 장수는 드물었다. 조조조차도 많은 패배를 겪으면서 성장했고 유비는 뭐 일생 내내 도망가는게 일일정도였다, 당연히 유비 휘하 관우, 장비야 말할것도 없고. 여포 역시 무용은 뛰어났으나 군대를 이끄는데는 낙제점을 보이고 손견에게 족족 패하였다.


== 기타 ==
== 배송지의 평가 ==
{{인용문2|
신 송지는 손견이 의흥군(義興軍) 중에서 가장 충렬(忠烈)이란 칭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왕조의 신기(神器)를 얻어 숨겨두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남몰래 다른 뜻을 품는 것이니, 어찌 충신이라 하겠는가. 오나라의 사서들은 나라를 화려하게 꾸미고자 하였지만, 손견의 빼어난 덕을 훼손했음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하여 자손에게 전했다면, 가령 육새의 수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기르는 바도 틀렸을 것이고, 손호가 항복했어도 다만 또한 육새를 보내지 않고 전국새를 숨겨두었다고 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천명을 받는 것인데, 어찌 천명이 돌아가는 당(堂)에서 취할 것이며, 만약 (앞서의) 좋은 말만 했다면, 이 옥새는 지금도 아직 손씨 가문에 있을 것이다. 필부가 옥벽을 숨겨도 오히려 죄가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 물건에 있어서랴!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배송지 주석}}


배송지는 손견은 옥새를 자신이 취하지 않았던 충렬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한황조의 충신인데 후손들이 그걸 손견이 가지고 있다면서 윤색하는 말을 써 손견의 덕을 훼손하였다며 손견 후예들의 행실을 비판하였다.


{{각주}}
몇몇 손견팬들은 [[이순신]] 장군과 같이 손견이 충무의 시호를 받았다고 주장하나 실제론 배송지의 '손견은 옥새를 함부로 취하지 않았으니 충렬의 칭호를 받아도 좋을거 같다'는 칭찬을 와전시킨것이다.
[[분류:삼국지 등장인물]]

2016년 4월 25일 (월) 08:25 판

손견(孫堅)
생몰년도 156년 ~ 192년
문대(文臺)
출생지 양주(揚州) 오군(吳郡) 부춘현(富春縣)
사망지 양양(襄陽)
시호 무열황제(武烈皇帝)
묘호 시조(始祖)
국적 오(吳)

소개

오나라의 시조

사실 오나라를 직접적으로 세운 인물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오나라를 세운건 사실상 그의 아들 손책대의 일이고 손견 본인 자체는 한실을 충실하게 섬긴 인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맹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맹장이다. 그러나 하필 원술 같은 군벌과 손을 잡는 바람에 말년엔 군벌의 부장노릇을 하다가 전사한 비운의 인물. 동탁이 천하에 4명만 없으면 천하가 평정되고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 4인 중 하나다, 나머지는 원소, 원술, 유표.

정사에 따르면 아마도 손자의 후손이라는데 진수가 '아마도 그럴껄?'이라는 뉘앙스로 써서 자칭인지 진짜인지는 모른다, 보통 진짜 확실하면 'XX는 XX의 후손이다'라고 쓰는데 손견에 경우엔 이렇게 썼다.

생애

출생설화

유명한 삼국지 인물 가운데 '출생설화가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배송지가 주석으로 단 오서(吳書)에 손견의 출생설화가 적혀 있다. 오서의 출생설화는 손견이 태어날때 상서로운 징조가 있었다고 적혀있고 유명록[1] 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적혀 있다.

손견의 아버지 손종이 오이농사 짓고 살았는데, 어느 날 3명의 어린아이들이 와서 밥 좀 달라고 구걸을 했다. 손종은 이 어린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밥을 차려줬고 가는 길에 오이까지 박스로 싸서 줬는데, 어린아이들 중 한 놈이 손종에게 대뜸 이렇게 말하기를

"당신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무덤자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세에서 제후에 봉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몇 대 후에 천자가 되시겠습니까?"

손종이 무릎 꿇고 절하며 말하였다.

"몇 대 후에 천자가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중략)

손종은 훗날 손견을 낳았고, 손견은 손권을 낳았으며, 손권은 손량을 낳았고, 손량은 손휴를 낳았고, 손휴는 손화를 낳았고, 손화는 손호를 낳았다. 진이 토벌에 나서자, 손호는 항복하여 귀명후에 봉해졌다.

근데 자세히 보면 저 설화 족보가 좀 이상하게 꼬여있다. 손량, 손휴, 손화 모두 손권의 자식이다. 거기다가 손화는 황태자였긴 한데 손권이 말년에 깽판을 치는 바람에 황제가 되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다. 아무래도 설화 지은 사람이 오나라 족보를 좀 괴상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

초기 생애

17살 어린 시절에 해적들을 혼자서 도망가게 하고 해적새끼 한놈의 머리를 베어서 유명해졌는데 아버지가 말렸으나 손견이 분연히 나서 용맹을 보였다고 한다. 해적들이 이 기세를 보고 '혹시 뒤에 관병이 있는거 아녀?'라고 오해하여 재물을 내팽겨치고 달아났고 이 덕에 17살에 지방 현령이 됐다.

이후 황제를 참칭한 허창이라는 듣보잡을 의용군 천명으로 무찔러 하비성(삼국지 게임할때 보면 있는 서주의 그 하비성 맞다)의 승으로 있었는데 황건적의 난 당시 황건적 토벌 삼대장(황보숭, 주준, 노식) 주준이 표를 올려 손견을 좌군사마로 삼을 것을 청하니, 향리의 젊은 사람들로 하비에 따라와 있던 자들은 모두 손견을 따랐다. 이후 주준 휘하에서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완성에 있는 황건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후 장온이 서량의 반란을 토벌할때 그 휘하에 있었다. 이때 동탁을 봤는데 장온에게 동탁을 죽이라고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동탁연합군에서의 대활약

반동탁토벌군이 결성되자 임지인 장사를 버리고 북진했다. 이때 조인이라는 사람이 왕예를 주살하라는 격문을 뿌려 손견은 형주자사 왕예를 추궁하러 갔는데 왕예는 손견에게 추궁당하다 못해 자살했다. 문제는 왕예는 평소 손견이 무식하고 행동이 가볍다는 이유로 경시했다곤 하나 어찌됐든 손견의 상관이었다는 점이다.(장사는 형주 산하 군) 즉 하극상. 거기다가 손견이 왕예 살해의 명분이라 믿고 있던 중앙 고관의 격문 또한 조인이 날조한 가짜였다. 손견이 문무겸비의 명장 취급을 받긴 하고 삼국지 게임에서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높은 스탯을 받긴 하지만 사실 이런점만 보면 무는 몰라도 문쪽은 좀 애매한 감이 있다. 당장 왕예가 손견을 무시한것도 무식한 무부로 여긴것 때문이고.

결국 이것 때문인지 원술과 손을 잡게 되는데 원술은 손견을 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손견은 기세가 등등했던지 이번엔 남양태수 장자가 자기한테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잔치에 초대 한 다음 머가리를 잘라버렸다. 원술이 비어있는 남양을 꿀꺽한건 덤이다. 원술은 이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손견을 예주자사로 봉했고 이런식으로 자기 상사와 동료태수를 멋대로 죽이고 원술과 손을 잡아서 인지는 몰라도 이때 손견은 남양군 사람들이 모두 무서워서 떠니 못 얻을게 없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때까지만 해도 원술과 손견은 서로 상부상조 하면서 짝짜꿍이 잘 맞는 동업자였던 셈이다.

반동탁연합군에선 가장 활약상이 뛰어났던 장군이었다. 항상 이기기만 한건 아니고 서영한테 대판깨져서 불과 수십명과 함께 도주하다가 지가 쓰던 붉은 두건을 부하인 조무에게 씌워서 도망치기도 했다. 이때 추격하던 동탁의 장수 호진과 화웅을 역습해 화웅의 목을 베는 성과를 올리고 동탁과 여포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라 3번 이상 동탁과 여포를 무찔렀다. 연의에선 이 화웅의 목을 베는게 관우로 설정되어 있는데 화웅의 죽음은 정황상으로 다른점이 많다. 연의에선 화웅은 일군을 이끌고 18로 제후군 전체를 도발하면서 무장들을 무찌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론 호진의 휘하 도독[2] 가운데 하나로 손견이 패하고 그걸 추격하는 과정에서 손견이 역습으로 죽인것이다.

오죽했으면 동탁이 이각을 보내 손견의 자식들을 태수와 자사로 천거해주겠다며 회유했지만 손견은 동탁을 죽이겠다고 욕하면서 내쫒았다. 이때쯤이면 손견과 원술 관계도 상부상조하는 동업자 관계가 아니라 손견측이 좀 우위에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하긴 동탁의 군세를 상대로 연전연승했으니 그 명성이 하늘을 찔러 원술이 감히 상대하기 껄끄러웠을 것이다. 한 예로 원술이 군량을 조달하지 않자 손견이 밤새 말을 달려 원술에게 가서 항의했는데 이때 원술은 손견에게 쩔쩔맸다.

양인성에서는 노양까지는 1백여 리나 떨어져 있었는데, 손견이 밤에 말을 달려 원술을 만나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계획을 설명한 뒤

“출군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위로는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사로운 원한을 위로하고자 함입니다. 손견과 동탁은 골육의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장군이 참소하는 말을 받아들여 도리어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라 했다.

[주 : 『강표전』에 실린 손견의 말에 의하면

"「큰 공훈이 승리에 달려 있는데 군량이 이어지지 않으니, 이것은 오기(吳起)가 서하(西河)에서 탄식하며 운 까닭이요, 악의(樂毅)가 수성(垂成)에서 한을 남긴 까닭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라 했다고 한다.」]

원술이 손견에게 쩔쩔매며, 곧 군량을 조달해 보내주었다. 손견이 둔영으로 돌아왔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이즘되면 되려 원술이 바지사장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원술도 마냥 손견한테 쫄아 있지만은 않았다. 단적으로 손견의 옥새사건의 진짜 이유 역시 손견이 옥새를 발견하자마자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공갈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술이 손견한테 무작정 쫄았다면 손견 무서워서 아내 잡고 협박할 생각을 하진 않았을것이다. 어쨌든 손견은 폐허가 된 낙양을 보고 한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부서진 낙양을 고치는데 힘을 다했다.

말년의 군벌부장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어쨌거나 손견이 반동탁연합군에 참가한답시고 장사를 오랜기간 비웠고 유표가 형주를 평정하면서 손견은 갈때 없는 유랑군 신세가 된다. 애시당초 손견은 군벌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조정의 명을 받고 장사태수로 임명되었던 거라서 장사의 소유권을 주장할수도 없었다. 거기에 공은 손견이 다 부렸지만 실제 위치는 원술이 손견 윗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손견의 활약덕에 원술의 위상은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부터 손견은 군대를 노양에 주둔시키고 원술의 명령을 따랐다.

또 이때 원소가 예주자사로 주앙을 임명시켜서 예주를 꿀꺽하는데 손견은 주앙, 주흔, 주우 형제와 싸워서 이를 막아 보려고 했으나 결국 주앙 형제가 예주를 꿀꺽하는걸 막을순 없었다. 사실 이건 결과적으로는 손견에게도 책임이 있는것이 손견이 멋대로 태수를 참살하고 넘긴 남양에서 원술이 포악하게 굴어 백성들을 수탈하면서 마음대로 세금을 가둬서 주흔이 그것을 싫어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동탁연합군이 각자 군웅할거에 접어들고 본거지도 상실하자 손견은 "사직을 구하자고 일어섰는데 각자 이같이 하니 내가 누구랑 손을 잡아야 하는가?"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원술이랑 손을 잡은게 결과적으로는 실책이었다는 얘기. 결국 그 댓가로 그 역시 이 때부턴 원술 휘하에서 본격적인 부장노릇을 하게 된다. 이 꿀물셔틀질은 손견이 죽은 이후 아들 손책대까지 이어서 계속하게 된다.

이후에 원술은 손견을 시켜(이 대목부터 이미 상호간의 군형이 원술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보인다. 즉 꿀물셔틀) 형주의 유표를 공격하게 하는데 이때 손가의 철천지 원수가 되는 황조와 맞붙게 된다. 처음엔 손견이 황조를 이기는 듯해 보였으나 양양를 포위하고 황조를 추격했는데 황조에게 역습을 당해서 활 맞고 죽었다. 다른 기록으로는 다른 유표의 장수 여공이 바위를 던져서 손견이 머가리가 깨졌다는 기록도 있는데 하여간 용맹을 앞세워서 성급하게 공격하려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동탁을 무찌르며 상승장군으로서 천하에 명성을 떨친 강동의 호랑이 손견은 말년에 원술의 꿀물셔틀질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역습당해 패하여 죽었다. 당시 나이 37세.

평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의 영향으로 인해 그가 독립적인 세력을 가지고 옥새를 얻어 야심을 품어 천하를 제패하려는 군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손자의 후예라는 식으로 띄워줘서 삼국지 게임 같은데서도 굉장히 문무에 뛰어난 스텟을 지닌 강동 손오의 초대군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유표를 친 것도 연의에선 손견이 본거지로 퇴각하던 도중 유표에게 뒷통수를 맞은 차에 원술이 편지를 보내 꼬신것처럼 묘사해서 마치 손견이 강동에서 이미 기반을 잡은 군벌로서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실제 손견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행적은 독립군벌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황건적의 난에선 주준 휘하로 참여했고 서량에선 장온 휘하로 참전했다. 반동탁연합군에서도 실질적으로는 동업자였지만 명목상으론 원술 휘하에 있었으며 이는 손견이 남양을 원술에게 떠먹여주고 손견의 벼슬을 원술이 올려주는데서도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낙양을 탈환한것은 분명 손견인데 어느새 그 공을 원술이 먹어치우는 것도 그렇고...그리고 말년에는 실질적으로나 명목상으로나 원술의 꿀물셔틀. 실질적으로 따지면 진짜 군벌로서 강동에 오나라의 기반을 잡은 것은 손견이 아니라 그의 아들 손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사의 그는 독립적인 군벌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 휘하에서 뛰어난 공적을 올린 장수에 가까웠으며 정치적인 능력이나 성품면에선 무예에 비하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실에 대한 충의만은 배송지가 인정했듯히 진심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 무용에 대해선 당시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났다. 그가 후에 무열황제의 자리에 오른것은 어디까지나 아들 손권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에 추숭받은 것이지 그가 원해서는 아니었다. 배송지 역시 그런 측면에서 손견만의 충의를 높게 평가했고 후손들의 평가는 그렇게 좋게만 써주지 않았다.

기록들

손견은 양인에서 호진을 크게 격파하고 도독 화웅 등의 목을 베었다. 이에 동탁은 손견의 용맹과 굳셈을 꺼려하여[3] 이각 등을 사신으로 보내어 손견과 화친을 맺으며 손견의 아들들 중 10살이 넘은 자들을 각자가 원하는 곳의 자사 자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관동의 군대가 여러 차례 패하여 모두 나를 두려워하니, 능히 할 수 있는 게 없소. 오직 손견만이 젊고 외고집인데다, 자못 사람을 잘 등용하지만,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게 되어서는 나를 기피한다는 것을 알게 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나는 옛날에 주진(主神)과 같이 서정(西征)을 나섰는데, 서정은 변장과 한수를 금성(金城)에서 포위했소. 내가 장온에게 말하여, 거느리는 병사들로 주진의 뒤에 주둔케 하려 했는데, 장온이 듣지 않았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내가 이때 그 형세를 상언하였는데, 주진이 필히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았소. 대각(臺閣 :상서)에는 지금 (당시 일의) 본말(本末)이 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일을 아직 보고하지 않았으면서 장온은 또한 나더러 선령(先零)의 모반한 강(羌)족들을 토벌하게 하여, 서방 지역을 일시에 소탕하려 하였소. 나는 모든 그 일이 옳지 않음을 알지만, 그만두게 할 수 없어, 마침내 일을 행하여 별부사마(別部司馬) 유정(劉靖)을 남겨두어 보기 4천명을 거느리고 안정(安定)에 주둔하여 성세(聲勢)로 삼았소. 모반한 강족들이 곧바로 돌아가면서 돌아가는 길을 끊고자 하기에, 내가 조금씩 공격하여 번번이 (길을) 소통시키니, 안정에 병사가 남아있음을 두려워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오랑캐들은 안정에 수만 명이 있다고 말하지만, 유정에 대해서만은 몰랐소. 이 때 또한 소장을 올려 그 상황을 말하니, 손견은 주진을 행군을 따르면서 주진은 1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금성을 지으려 한다고 말하기에, 주진에게 2만 명으로 뒤에 주둔토록 하였소. 변장과 한수의 성중에는 묵을 곳이나 먹을 것이 없기에 응당 밖에서 운반하려 하지만, 주진의 대병(大兵)을 두려워하여 감히 가벼이 손견과 대전하지 못했고, 손견은 병사가 풍족하여 그 운반로를 끊고, 아이들을 써서 강족이 반드시 곡중(谷中)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니, 양주(凉州)는 혹 안정될 수 있었소.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장온은 이미 능히 나를 기용하지 못했고, 주진 또한 손견을 등용하지 못하여, 직접 금성을 공격하고 그 바깥담을 무너뜨려서, 말을 달려 장온에게 얘기하게 하여 나의 승리가 아침저녁에 달려 있다고 하니, 장온이 이 때 또한 스스로 계획이 적중했다 여겼소. 아과(兒果)에게 건너가 규원(葵園)을 끊어버리니, 주진은 군수품을 버리고 달아나고 아과는 내 계책대로 되었소. 대각에서는 이것 때문에 나를 도향후(都鄕侯)에 봉했소. 손견이 좌군사마(佐軍司馬)가 된 것은 이를 보는 바가 남들도 같이 보았듯이, 나도 할 수 있었던 것일 뿐이오.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유애가 말하길 "손견이 비록 때에 맞춰 계획을 살폈지만, 원래 스스로는 이각이나 곽사만 못합니다. 듣자하니 미양정(美陽亭) 북쪽에 있는데, 보기 1천여 명을 거느리고 적들과 싸웠다가 거의 다 죽고, 인수마저 잃어버렸다 하니, 이것은 그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라 했다. 동탁이 말하길

"손견은 그 때 오합지졸의 무리로 의병을 따라와서 병사는 정예함만 못하지만, 또 전쟁에 있어서는 예리함과 노둔(老鈍)함이 있소. 다만 산동의 대세를 논해 본다면, 끝내 갈 곳이 없을 뿐이오."

라 했다. 유애가

"산동의 어린아이들이 백성들 핍박하고 약탈하여, 노략질과 반역을 저지르나, 그 예봉은 남들만 못하며,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와 강노의 활용도 남들만 못하니, 또한 어찌 오래 끌겠습니까?"

라 했다. 동탁이

"그렇소. 다만 두 원씨와 유표, 손견만 죽이면, 천하는 스스로 복종하여 나를 따를 뿐이오."-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손견전

반동탁연합군 내에서 그의 용맹과 무용을 통한 업적이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괜히 동탁이 두려워하면서 손견이 죽어야 자신도 안심할수 있다고 한 게 아닌것이다. 정사를 통틀어서 이 정도로 빛나는 군공을 얻고 패배가 적은 장수는 드물었다. 조조조차도 많은 패배를 겪으면서 성장했고 유비는 뭐 일생 내내 도망가는게 일일정도였다, 당연히 유비 휘하 관우, 장비야 말할것도 없고. 여포 역시 무용은 뛰어났으나 군대를 이끄는데는 낙제점을 보이고 손견에게 족족 패하였다.

배송지의 평가

신 송지는 손견이 의흥군(義興軍) 중에서 가장 충렬(忠烈)이란 칭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왕조의 신기(神器)를 얻어 숨겨두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남몰래 다른 뜻을 품는 것이니, 어찌 충신이라 하겠는가. 오나라의 사서들은 나라를 화려하게 꾸미고자 하였지만, 손견의 빼어난 덕을 훼손했음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하여 자손에게 전했다면, 가령 육새의 수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기르는 바도 틀렸을 것이고, 손호가 항복했어도 다만 또한 육새를 보내지 않고 전국새를 숨겨두었다고 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천명을 받는 것인데, 어찌 천명이 돌아가는 당(堂)에서 취할 것이며, 만약 (앞서의) 좋은 말만 했다면, 이 옥새는 지금도 아직 손씨 가문에 있을 것이다. 필부가 옥벽을 숨겨도 오히려 죄가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 물건에 있어서랴!

-정사 오서 손파로토역전 중 배송지 주석

배송지는 손견은 옥새를 자신이 취하지 않았던 충렬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한황조의 충신인데 후손들이 그걸 손견이 가지고 있다면서 윤색하는 말을 써 손견의 덕을 훼손하였다며 손견 후예들의 행실을 비판하였다.

몇몇 손견팬들은 이순신 장군과 같이 손견이 충무의 시호를 받았다고 주장하나 실제론 배송지의 '손견은 옥새를 함부로 취하지 않았으니 충렬의 칭호를 받아도 좋을거 같다'는 칭찬을 와전시킨것이다.

  1. 배송지가 단 정사 주석이 아니다.
  2. 후한서, 삼국지 정사 다 뒤져봐도 손견전에 딱 한번 나오고 마는 인물이다. 나본이 연의에서 미친듯이 띄워준 무장 가운데 하나, 손견팬들이 화웅참살을 손견의 가장 큰 공 중 하나로 여기는건 연의랑 정사랑 인식이 짬뽕되어서 그렇다.
  3. 영웅기, 세설신어, 위략, 오략, 자치통감 이런게 아니라 정사 본문에 정식으로 기록된 부분이다. 손견의 용맹은 무려 여포를 밑에 둔 동탁이 무서워서 벌벌떤 용맹인 것이다. 근데 이때 당시에 여포 새끼가 팀킬짓을 존나 많이 하긴 했다. 여포에게 기병을 이끌고 호진과 화웅을 보조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지 멋대로 행동하지 않나 여포가 강행군을 주장해 지친 상태로 손견군이랑 붙지를 않나 뜬금없이 휴식중에 손견군이 나타났다면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도망쳤다가 돌아오지를 않나, 이때 여포가 한 짓 보면 똥별 새끼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