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의사(醫師)는 인간과 손상, 이상을 진단 및 연구하고 치료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의료인.

현대의 의사[편집 | 원본 편집]

직접 치료를 하는 의사는 정말 크게 나눠서 내과 의사, 외과 의사, 치과 의사, 정신과 의사, 한의과 의사라는 5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내과는 환자에게 약을 먹이거나 생활지도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진단 및 치료를 하는 사람이고,[1] 외과의사는 아픈 부위를 직접 만지거나 째봐서 병을 확인하고 치료하는 사람,[2] 치과의사는 충치나 구강건강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이고[3] 정신과 의사는 앞의 3가지 직종의 의사가 진단하지 못하는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이고[4], 한의과의사는 고대부터 전해내려온 한방의학을 현대적으로 이용해 치료하는 사람이다.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의사라고 하면 병을 치료하는 사람인데, 사실 으로 보장된 의사의 권한으로 판단하자면 의사는 ‘치료하는 사람’보다는 ‘진단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치료 권한만 보겠다면 침구사, 물리치료사, 심리상담사, 치기공사 등등 의사 말고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치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의료기사들이 꽤 있지만, 국내법에서는 진단 권한은 의사(나 한의사) 말고는 그 누구도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국내에서 물리치료사가 독립해서 개원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는 여러 진료과목의 병원을 두루 돌아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을텐데, 개인병원 규모의 내과나 이비인후과 등등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나 의사가 진단과 치료를 모두 수행하지만,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로서 규모가 조금만 커지면 실제 치료는 물리치료사들이 다 하고 의사는 물리치료사를 지휘하는 일 정도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종합병원을 가도 스케일 큰 치료가 아니고서야 이름있는 의사들은 진단만 하지 실제 치료는 인턴이 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군대 시절 군의관들을 봐도, 군의관은 진단만 하고 실제 치료는 의무병이 한다.

사실 의사가 직접 치료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는, 그 치료가 잘못되면 환자가 될 수 있는 경우에서다. 약물 처방이야 처방이 잘못되면 환자가 좆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자명하니까 (애초에 ‘처방 잘못하면 환자가 좆될 수 있는 약’이 전문의약품의 정의) 의사가 직접 처방하는 것이고, 각종 수술 역시도 잘못되면 환자가 좆될 수 있는 게 너무 자명하니까 (그리고 실제로 수술이 잘못되어서 환자가 좆되는 사례가 이따금씩 있으니까) 의사가 집전하는 것이다. 물리치료의 경우 제대로 적용되면 실제 치료효과는 현저하지만, 물리치료가 잘못된다고 해서 환자가 좆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사가 아니라 물리치료사가 집전하는 것. 치기공사 등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IMS를 포함한 침술도 작용 기전으로 보면 물리치료랑 많이 비슷하지만, 침을 놓다가 신경을 잘못 건드린다던지 하면 환자가 좆되는 경우가 실제 있기 때문에[5] 저런 치료는 의사가 집전하는 것.)

서구권에서는 물리치료사의 양성 과정도 (의대와 같은) 6년제로 빡세게 하는 대신에 물리치료사에게 진단 권한을 부여하기도 한다고 알려졌는데, 사실과는 다르다. 이들은 물리치료사가 아니라 정골의사로써, 정골의학은 과거 대체의학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로써는 그냥 현대의학에 동화된 상태(…)이며 따라서 이들 역시 다른 의사들과 학위 이름만 다를 뿐, 엄연한 의사이다. 우리나라의 한의사-의사 관계와는 다르다!

전근대의 의사[편집 | 원본 편집]

그런데, 의사는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하는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처럼 사회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도 (정약용이나 정조 대왕처럼) 유학자가 의사를 겸하는 경우가 아닌 한, 대부분의 의원은 중인이었고, 인도 카스트의 경우 역시 의사 직종은 낮은 카스트에 속한다. 노예 문서에 언급된 로마도 그렇고. 아마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질병, 시체와 같은 ‘더러운 것’에 상습적으로 노출되기 쉬워 그런 대우를 받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중인이면 양반 바로 다음이라, 이게 낮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실제로 전근대 윤리 (특히 종교 윤리)에서 상당히 보편적으로 들어가 있는 개념이 (문자 그대로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의미의 더럽다가 아닌,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의미로서의) 더럽다 개념인데, 어느 사회에서 천민의 직종으로 일컬어지는 직업을 보면 그 사회의 윤리에서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질병, 죽음, 피, 습한 것, (땀 뻘뻘 흘리면서 진이 빠질 때까지 하는) 육체노동, (출산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섹스 등등은 상당히 많은 사회에서 이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더러움’에 자주 결부되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사란 직종은 이런 ‘추상적인 의미로 더러운’ 것들에 상당히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다.

그나마 현대에 의사가 존경받는 고부가가치 직업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현대의학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마저 어느 정도는 넘어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앞에서 예거한 것들이 주는 ‘보편적인 더러움’의 이미지를 사람을 살려내는 고귀한 직업의 이미지가 덮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전근대 시절 의술의 효과는 현대의학만큼 극적이지도 않으면서 저런 ‘더러운’ 것들에는 현대 의사들보다 훨씬 더 자주 노출된다는 점 때문에 ‘더러움’의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당장 현대에 민간요법이라고 통용되는 것만 봐도 일반인이 보기에도 치료 효과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처방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전근대 시절 의사가 천민 직종이었던 시절에는 현대의 민간요법보다 몇 배는 더 무지막지한 처방들이 민간요법도 아니고 ‘제대로 된’ 의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단하게, 불로장생의 영약이랍시고 일국의 황제수은을 넣고 빚은 환약을 애지중지하며 먹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시절이니 전근대에는 의사에게서 생명을 살려낸다 라는 이미지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의사라는 직업을 ‘사람 살린답시고 웬 병신같은 짓거리나 시켜대는 이상한 놈들’이라고 느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절, 어느 도시 사람들은 의사가 방문한 마을에는 예외없이 흑사병 환자가 들끓는 것을 보고, 의사들이 흑사병을 퍼트리는 것으로 생각해서 의사들을 모조리 죽였다. 하지만 의사를 죽인다고 흑사병이 물러갈 리는 없었고, 그 도시는 결국 자기 명줄을 스스로 끊은 꼴밖에는 되지 못했다.
— 실제 논리학 서적의 논리적 오류 파트에서 자주 인용되는 어느 러시아 민담

이 민담이 인용되는 이유 자체는 ‘원인 오판의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서지만, 이 민담에서 ‘그 도시 사람들이 의사들을 학살한 이유’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고, 저 민담은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러시아 쪽 민중들 사이에서 실제로 구전되던 민담임을 생각해 보면, 전근대 시절 의사들이 대략 어떤 이미지였는지를 느껴보는 데 도움은 될 것이다.

각주

  1. 히포크라테스가 “식품이 약이 되게 하고, 약이 식품이 되게 하는 것이 건강관리의 궁극적인 이상향”이라는 말을 남겼다는데, 그 말에 해당하는 이상향이 바로 내과에서 지망하는 이상향이다. 일본에선 가벼운 정신병을 다루는 진료과목을 ‘심료내과’라고 따로 운용하는데 그게 바로 이 때문으로, 다루는 대상이 신체의 만성질환이냐 정신질환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하는 일은 일반내과와 심료내과 양쪽의 의사 모두 약물 투여하고 환자의 생활태도를 지도하는 등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비 정신질환자들과 다른 특수한 care가 필요한 상태에 있지 않은 정신병자들(crude하게 말하면, 제 발로 병원에 걸어와서 치료를 받을 깜냥이 있고 환각경험이나 돌발/위험행동이 없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이 심료내과다.
  2. 참고로 한방치료 중 한약을 제외한 것, 그러니까 침이나 뜸 등등은 현대의학의 기준에서 보면 외과로 분류된다. IMS라고 해서 현대의학에도 침술이 있는데 이 기법은 신경외과에서 쓰는 기법이고, 침이나 뜸 등등으로 치료하는 적응증이 거의 근육통이나 신경통 그런 것들인데 이런 것들은 현대의학에선 신경외과나 정형외과 등등에서 보는 병들이다. 한의학에 수술이란 개념이 없었고 그 때문에 일반인들은 한의학이 외과에서는 빈약하다고 생각하지만, 한의학의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인 침과 뜸이 이미 외과 시술인 것.
  3. 다른 진료과목은 의대에서 일괄적으로 교육한 뒤 레지던트 단계에서 전문 진료과목을 받는 방식으로 분화되는데, 치대는 아예 학부과정에서부터 분화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다른 진료과목과 치과의 연관성은, 심지어 다른 진료과목과 정신과의 연관성보다 적은 것이다.
  4. 이렇게 설명하면 뭔가 무책임해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 이거다. 만성 통증이나 소화불량 같은 걸로 병원을 가도, 다른 진료과목의 의사들이 몇 달을 치료를 해봐서 차도가 안 보이면 정신과로 가라고 권유한다. (“저 놈은 정신병자라서 없는 병을 만들어서 빼애액거리는 거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정서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몸이 아파지는 걸로 표현될 수가 있기 때문.) 물론 기분장애자폐성 장애, 성격장애 등등 처음부터 다른 진료과목에서 보는 병이 아니어서 정신과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힐링이 필요한 경우’라면 사실 정신과 의사한테 보는 것보다는 심리상담사에게 보는 것이 맞다. 기분장애로 정신과에 내원하는 경우라면 수면 패턴에 현저한 변화가 생기거나 이미 다 알고 있던 skill이 전혀 생각이 안 나거나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가 ‘의식을 거치지 않고 행동으로 줄줄 새나오는’ 상태가 되었을 때 가는 것이 보통이다. (‘정신병자들은 자기가 정신병자인 걸 모른다’라는 일반인들의 편견이 이에서 기인한다. 실제로는, 정신병자들은 자신의 증상에 관련된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맞지만, - 통제할 수 있다면 정신병이라고 안 부른다.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느끼면서도, 아니면 증상에 관련된 그런 행동 때문에 스스로도 상처를 받으면서마저도 스스로 통제를 할 수가 없기에 정신병인 것. 이는 정신병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 자신의 이상행동에 대한 자각이나 자신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주관적인 자각은, 극도로 심한 정신병이 아닌 이상 다들 하고 있다.)
  5. 한의학에서도 역사적으로 이따금씩 보고되는 사례다. (신가귀라고, 침을 잘못 놓아서 을 과다출혈로 죽게 한 어의가 실제로 있다.) 또 IMS에서는, IMS 시술이 잘못되어 CRPS를 얻게 된 사례실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