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파르트 1

레오파트르 1
레오파르트1.jpg
차량 정보
정원 4명 (전차장, 탄약수, 조종수, 포수)
제원
엔진 10기통 수랭식디젤 MB 838 CaM-500
최고출력 830마력
변속기 ZF4 HP250 자동변속기
주무장 L7A3 105mm 강선포 (55~60발)
보조무장 7.62mm 대공기관총 1정, 7.62mm 공축기관총 1정 (5,500발)
전장 9543mm
전폭 3370mm
전고 2764mm
무게 42.2t

레오파르트 1(Leopard 1)은 독일주력전차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연방방위군이 채용한 최초의 자체개발 전차이다. 초기 채용명칭은 레오파르트(Leopard)였으나, 레오파르트 2가 배치됨에 따라 1을 붙여 레오파르트 1로 개칭되었다. 연방방위군은 레오파르트 A4까지는 1을 붙이지 않았으며 A5에 와서야 1이 명명되었다. 1965년부터 총 4,700여 대 이상이 생산되었으며[1] 1965년부터 1976년까지 2,000대 이상의 레오파르트 1이 연방방위군에 배치되었다.[2]

개발[편집 | 원본 편집]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연합국에 의해 독일연방공화국독일민주공화국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소련미국의 동맹은 금세 깨졌고 얼마 있지 않아 냉전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서독은 순식간에 냉전의 최전선이 되버리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서독의 재무장은 불가피해 보였고 1955년 독일 연방방위군이 창설되었다.누가 전차성애자들 아니랄까봐 연방방위군은 창설되자마자 전차부대를 꾸릴 준비를 했다. 당장 전차가 필요했던 연방방위군은 1956년 M47 패튼 전차를 대당 50만 마르크에 1,120대 도입하였다. 그와 동시에 신형전차개발구상을 시작했다. 서독은 자국의 방위산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자 했으며 해외도입은 비용과 시간의 낭비가 심하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 컨셉은 IS-3와 유사한 형태의 30톤급 전차였으나 그냥 이랬으면 좋겠다 수준의 스케치였고 본격적인 개발구상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연방방위군은 M47의 운용 경험과 훈련 경험을 통해 "만족할 만한 전차는 아니지만 기초전술훈련 및 사격훈련 정도에 쓸만한 전차"라는 평가를 내리고 "승무원에 대한 배려가 떨어지고 포탑설계가 부족하다."는 악평을 내렸다. 끝에는 "이거 T-54보다 안 좋은데?"란 결론을 내려버렸다. 다만 T-54가 M47에 비해 우위를 가진다는 평가는 연방방위군이 중부유럽에선 빠른 기동성과 낮은전고, 높은 연비의 전차가 가장 적절한 전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용 전차 3,000대를 목표로 하던 연방방위군은 언제까지나 자국산 신형전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만은 없었고 M48 패튼센츄리온 Mk.7 사이에 경합을 벌여 M48을 채택하여 도입하게 되었다. M48도 신형 90mm 포의 1,500m 사거리 명중율은 뛰어나나 나머지 부분은 M47과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렇게 독자적인 신형전차 개발을 진행 중이던 서독은 유럽의 신안보질서 속에서 프랑스와의 군사협력을 추진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1957년 6월 "유럽 표준전차(Europäischen Standard-Panzer)"사업을 프랑스와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유럽 표준전차사업은 이후 이탈리아가 참여하기도 하는 등 정말 유럽표준전차가 탄생하는 꿈과 희망이 넘치는 사업이 될… 뻔했으나 양측은 1960년까지도 포탑링 직경부터 포까지 합의된게 하나도 없었으며 공동시험 및 평가에 관한 합의도 1963년까지 질질 끌며 합의되지 못했다. 결국 자기가 못탈 크기의 전차를 만드는 것에 빡친 샤를 드 골 대통령이 프랑스의 핵 개발을 우선시 하며 유럽 표준 전차 사업을 파토내버렸다. 그렇게 프랑스는 AMX 30을 서독은 레오파르트 1을 만들게 되었다.

목표[편집 | 원본 편집]

1957년 7월 25일 제시된 레오파르트의 초기 개발 목표는 30톤 수준의 중량과 톤당 30마력이상의 출력, 105mm 수준의 무장, 전방위에서 20mm 기관포탄의 방어, 화학전 및 방사능 오염지대에서 작전가능하고 기존 미제 전차보다 많은 양의 휴행탄수를 요구했다. [3]

이 중 많은 부분이 지켜지지 못했는데, 30톤급 전차에서 톤당 30마력을 내려면 단순계산으로 900마력급 엔진이 필요했으나 레오파르트에 채용된 엔진은 830마력인데다가 레오파르트의 중량은 40톤이었으므로(...) 중량은 물론 톤당 마력비도 지키지 못했다. 다만 40톤급 차체에 톤당 마력비를 30으로 맞추려면 1,200마력급이어야 했는데 이는 기존 기술을 활용하는 레오파르트의 콘셉트에 맞지 않았다. 휴행탄수는 60발로 기존 64발에 비해 감소했으나 탄약이 105mm로 커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요구조건을 지켰다. 다만 M60에 비해선 3발 적다.

과정[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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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과 관련된 이야기들[편집 | 원본 편집]

  • 레오파르트는 최고속력이 65km/h 정도였지만, 실제로는 연방방위군 규정속도인 50km/h 이상으로 주행하지 않았다.
  • 레오파르트는 연방방위군 규정에 의해 번호판을 도색하고 다니기도 했다. 독일연방공화국 차량번호판 규정에 따르면 연방방위군 차량은 알파벳 Y를 부여받았다. 그렇기에 레오파르트 중에선 Y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칠하고 다니기도 했다. Y-681 392 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는 연방방위군 레오파르트

물론 도로에서 50km/h 이상으로 주행하면 교통경찰이 딱지를 떼거나 하지는 않았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무장[편집 | 원본 편집]

주포는 NATO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은 로얄 오드넌스 L7을 도입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정작 기존 L7은 레오파르트의 작은 포탑 내에서 레오파르트의 최저각인 -9도로 내렸을 경우 폐쇄기가 포탑천장에 부딪히는 참사가(...) 발생했고 이 때문에 폐쇄기 크기를 줄인 후 L7A3라는 제식명을 부여하였다. 서방표준을 사용한 만큼 탄또한 당시 유럽권의 표준이나 마찬가지던 HESH탄을 주력으로 하고 APDS를 보조로 운용하였다. HESH의 경우 미국의 M393A2를 면허생산한 DM 512를, APDS의 경우 영국의 L28A1을 면허생산한 DM 13을 운용하였다. 그러나 이후 파편방지 라이너가 장착되고 HESH에 대한 대응능력이 강화되자 HEAT로 교체되었고 APDS또한 APFSDS로 교체되었다. 기관총의 경우 독일 연방방위군은 연방방위군 제식기관총인 MG3을 장착하였고 네덜란드나 벨기에군 등은 FN MAG를 장착해 운용하였다.

장갑[편집 | 원본 편집]

레오파르트 1의 장갑은 영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핵전쟁의 우려와 성형작약탄의 개발과 배치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 연방방위군은 분단된 서독이라는 매우 짧은 종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기동방어 같은 걸 했다간 국토를 다 내주고 프랑스로 갈 기세(...) 였으며 국토를 버리고 구국의 결단으로 기동방어를 수행하려고 해도 기동방어시 연방방위군 병력을 보존하려면 예비군마저 기계화를 해야할 처지였다. 그러므로 연방방위군의 선택지는 서독 역내에서 최대한 적을 지연시키는 방법 뿐 이었다. 그래서 연방방위군은 낮은 차고로 발각될 확률을 줄이고 탄약 탑재량은 많아야 하며 기동성도 좋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당시 기술력으론 여기에 충분한 방어력까지 제공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장갑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갔다. 또 보병이 보유한 대전차로켓이나 대전차미사일은 관통력은 높지만 탄속이 느렸으므로 기동성이 좋아야 생존확률이 높아진다는 점도 있다.

20mm 전방위 방어란 요구조건 또한 당시 서독이 운용하던 APC인 HS 30이 20mm 기관포를 운용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APC한테 털리지 말 것(...)을 요구한 것 이었다. 그러나 정작 1965년에는 BMP-1가 나와 서방에 일대 충격을 줬으며 76mm 활강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76mm 활강포는 무반동총용 탄약을 썼고 이 물건은 느린탄속과 측풍에 취약해 셔틀콕이란 소리를 듣던 물건이라는 점 이었다.

지금이야 성형작약탄은 기술의 발젼으로 쉽게 막을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성형작약탄을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못막으면 피하면 되잖아?라는 결론을 내려 장갑을 얇게 만들었다.

그리고 핵전쟁이 100% 일어나는 냉전 시대에서 전차 대대가 한번에 날아가지 않을려면 계속해서 작전술 차원의 기동을 해야 했고, 그 결과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갑을 희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형작약탄은 고사하고, 장갑차에 장착된 기관포에도 탈탈 털리는 결과가 나오고(...) 시간이 지나며 성형작약탄을 방어할 기술이 생겨나자 레오파르트 A3 부터 공간장갑 등의 장갑 쪽에서 점차 개량을 가하기 시작한다.

원형 및 개량형[편집 | 원본 편집]

레오파르트[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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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르트 A1[편집 | 원본 편집]

독일 연방방위군 레오파르트 A1

4차 인도분의 마지막 전차를 인도받은 독일 연방방위군은 운용경험을 통해 성능이 개선된 전차를 요구하였다. 이에 응하여 개량된 전차가 레오파르트 A1이다. 레오파르트 A1은 케딜락-게이지(Cadillac-Gage)의 주포안정화장치를 장착하여 기동간사격이 가능해졌으며 무한궤도를 보호하기 위해 성형작약탄에 대응하는 사이드스커트를 설치하였다. 또 주포냉각을 위한 서멀슬리브를 달고 궤도가 더블핀 방식 D640A 궤도로 변경되었다. 이 D640A 궤도는 고무패드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동계작전을 위해 X자형상의 돌기가 붙어 있는 금속제 궤도가 따로 제작되었다. 이 동계용 궤도는 차체 전면에 장착해 두었다. 스노켈을 도입함으로서 도하능력도 개선되어 기존의 2.25m였던 도하가능깊이는 4m까지 늘어났다. 이 같은 개량으로 인해 레오파르트 A1은 중량이 41.5t으로 증가되었다.

  • A1A1: 1974~1979년 사이에 그때까지 연방방위군에 배치된 1~4차인도분의 레오파르트1에 대해 블룸&포스(Blohm&Voss)가 개발한 증가장갑을 부착하는 개량이 행해졌다. 이 증가장갑은 포탑을 둘러싸는 포탑장갑과 포방패장갑으로 구분 가능하다. 포탑장갑의 경우 강판을 포탑에 볼트로 체결한 형태이며, 포방패는 포방패 주변을 고무로 방수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연방방위군은 이를 A1A1으로 명명했다. 이 개량으로 인해 중량이 42.4t으로 증가했다.
  • A1A2: 야간전을 서치라이트에 의지하던 A1A1에 PZB 200[4] 패시브형 광증폭식 조준/탐색장치를 장착했다. PZB 200은 주포 오른편에 장착되었으며 이에 따라 주포 위에 장착하던 서치라이트도 주포 왼편으로 옮겨졌다.
  • A1A3: 기존의 SEM25/35 무전기를 대체하여 SEM80/90 디지털무전기를 장착했다.
  • A1A4: PZB 200과 SEM80/90을 모두 장착한 형식이다.

레오파르트 A2[편집 | 원본 편집]

독일 연방방위군은 5차 인도분 중 1972년 4월부터 1973년 5월까지 생산된 232대의 전차를 레오파르트 A2라고 명명하였다. 이들 전차는 독일연방육군 II군단의 M48A2 전차를 대체하였으며 대부분이 제6기갑척탄병사단에 배치되었다. 레오파르트 A2는 기존 A1형과 구분하기 어려우나 포탑장갑이 이전 세대에 비해 약간 두꺼워졌으며 화생방 방호능력이 향상되었다. 단, 레오파르트 A2는 블룸&포스의 포탑증가장갑을 장착하지 않는다.

  • A2A1: PZB 200 패시브형 광증폭식 조준/탐색장치를 장착하여 야간전 능력이 향상되었다.
  • A2A2: SEM25/35 무전기를 대체하여 SEM80/90 디지털무전기를 장착했다.
  • A2A3: PZB 200과 SEM80/90을 모두 장착한 형식이다.

레오파르트 A3[편집 | 원본 편집]

5차 인도분 중 후기 생산분인 110대의 전차가 레오파르트 A3로 생산되었다. 레오파르트 A3의 가장 큰 특징은 포탑이 기존의 주물식 포탑에서 용접식 포탑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이 용접식 포탑은 두 강판 사이에 수지제 파편방지라이너를 삽입하여 공간장갑 형태를 띠었으며 SHS 강재가 사용되었다.[5]또 포방패에 쐐기형장갑이 적용되고 TRP 2A 전차장용 독립 관측장비가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중량은 42.2t이 되었다. 이 전차들은 주로 제10기갑사단과 제12기갑사단에 배치되었다. 이후 덴마크군이 120대의 A3를 도입했다.

  • A3A1: PZB 200 패시브형 광증폭식 조준/탐색장치를 장착하여 야간전 능력이 향상되었다.
  • A3A2: SEM25/35 무전기를 대체하여 SEM80/90 디지털무전기를 장착했다.
  • A3A3: PZB 200과 SEM80/90을 모두 장착한 형식이다.

레오파르트 A4[편집 | 원본 편집]

6차 인도분으로서 1974년 8월에서 1976년 3월까지 250대가 생산되었다. 레오파르트 A3를 개량한 전차로 신형 컴퓨터화 사격통제장치인 EMES 12A1 조준체계, 전차장용 독립식 야간탐색장비인 PERI R12를 도입하였다. 이 같은 신형장비의 도입으로 인하여 적재탄수가 55발로 감소했다.

  • A4A1: SEM25/35 무전기를 대체하여 SEM80/90 디지털무전기를 장착했다.

레오파르트 1A5[편집 | 원본 편집]

레오파르트1은 원래 T-55T-62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나, 1980년에 이르자 독일연방공화국의 주적인 소련은 T-64B, T-72B, T-72M1을 일선에 배치하고 있었으며 독일 연방방위군의 마지막 레오파르트가 생산된 해인 1976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T-80B는 중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같은 위협에 대응하여 1980년부터 시작된 레오파르트1에 대한 개량연구는 더 나은 야간전 성능과 기동간사격 능력을 요구하였고, 동시에 신형소련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신형 포탄에 대한 소요도 제기되었다. 1983년, 경합 끝에 AEG-텔레풍켄의 EMES 17과 칼 차이스의 EMES 12A4를 제치고 크루프-아틀라스 일렉트로닉(KAE, Krupp Atlas Electronik)의 EMES 18이 레오파르트 1A5에 탑재될 화력통제장치로 선정되었고 베크만이 주계약자로 선정되었다. 연방방위군은 원래 1,225대의 레오파르트 A1A1을 1A5로 개량할 계획이었으나, 도중에 1대가 화재로 전소되며 최종적으로 1,224대의 레오파르트 A1A1만이 1A5로 개량되었다. 레오파르트 1A5는 1987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하였으며 독일외 개량까지 총 1,339대가 개량되었다.

레오파르트 1A5의 화력통제장치로 선정된 EMES 18은 레오파르트 2의 EMES 15와 주요부품을 공유하며 레오파르트 1A5의 포탑오른편 상부에 장치되었다. 이 화력통제장치는 칼 차이스제 열영상체계를 탑재하여 궂은 날이나 야간전 능력을 향상시켰다. EMES 18의 탑재로 인해 기존의 TEM 2A 스트레오방식 조준경은 제거되었다. 또 포구감지기가 추가되고 기존의 케딜락-게이지 시스템의 포탑구동체계를 SRK 유압서보통제식 체계로 교체하였다. 마지막으로 렉산(Lexan)볼트 고정식 증가장갑이 장착되고 포탑이 대형화되었으며, 105mm 강선포용 APFSDS탄인 DM23과 DM33이 도입되었다. 현재 운용되는 레오파르트는 대부분이 1A5형이다.

  • 1A5A1: SEM25/35 무전기를 대체하여 SEM80/90 디지털무전기를 장착했다.

레오파르트 1A6[편집 | 원본 편집]

1986년 독일연방기술도입국(BwB, Bundesamtes für Wehrtechnik und Beschaffung)[6]의 대전차차량(Panzerabwehrkampfwagen)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전차90'(Panzerkampfwagen 90')연구에 따라 두 대의 실험차량인 VT-2와 VT-5가 제작되었다. 둘 모두 방어력 향상과 44구경장 120mm 활강포 탑재가 주 목적이었으며 VT-2는 포탑상부에 적외선방출감소용 장갑재를 달았고 VT-5는 전차장용 PERI를 달았다. 이러한 추가적인 개량에 따라 VT-2와 VT-5의 중량은 각각 4.6톤과 3.5톤 증가했다. 그러나 예산문제로 이 계획은 취소되었다.

독일 외 개량형[편집 | 원본 편집]

  • 레오파르트 AS1: 레오파르트 1A3를 개량하여 SABCA社의 AVLS 사격통제장치를 장착하였다. 호주군을 위한 모델이다.
  • 레오파르트 1BE: 기관총이 FN MAG라는 점을 제외하면 차이가 없었지만 1974년에 SABCA社의 AVLS 사격통제장치와 주포안정장치를 장착하였다. 벨기에군을 위한 모델이다.
  • 레오파르트 1A5BE: 레오파르트 1BE를 레오파르트 1A5에 준하는 사양으로 개량하였다.
  • 레오파르트 C1: 레오파르트 1A3에 레이저거리측정기를 장착하였다. 이후 장갑이 증가되었다. 캐나다군을 위한 모델이다.
  • 레오파르트 C1 MEXAS: 레오파르트 C1에 MEXAS[7] 아플리케 장갑을 설치하였다. 1999년 코소보 KFOR에 투입되었다.
캐나다군 레오파르트 C2 증가장갑 모델, 2006년 아프가니스탄
  • 레오파르트 C2: 레오파르트 C1을 개량한 모델. 독일에서 1A5형 포탑 123개를 수입하여 기존 레오파르트 C1차체에 얹었다. EMES 18 사격통제장치, 열영상조준경이 탑재되었다.
  • 레오파르트 C2 MEXAS: 레오파르트 C2에 MEXAS[7]아플리케 장갑을 설치하였다.
  • 레오파르트 1DK: 레오파르트 1A3의 덴마크 수출형. 이후 1A5에 준하는 사양으로 개량되었으나 1A3의 용접포탑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 레오파르트 1V: 레오파르트 1A1A4에 EMES 12A3 AFSL-2 사격통제장치를 장착하였다. 그리스군을 위한 모델이다.
  • 레오파르트 1T: Aselsan의 볼칸 사격통제장치를 장착한 모델. 터키군 자체개량형이다.

파생 차량[편집 | 원본 편집]

게파르트 대공전차 (Flugabwehrkanonenpanzer Gepard)
한국에서는 게파트라고도 표기한다.
레오파르트 막스맨 (Leopard Marksman)
레오파르트 1의 차체에 영국막스맨 대공체계를 탑재한 모델. 실제 도입된 적은 없다.
베르게판처 2 (Bergepanzer 2)
레오파르트 1의 차체로 만든 구난전차이다. 캐나다 수출명은 타우루스 ARV.
다흐스 (Dachs)
레오파르트 1의 차체로 만든 공병전차이다. 캐나다 수출명은 배저(Badger) AEV.
비데르 (Bider)
한국에서는 비더라고도 표기한다. 레오파르트 1의 차체로 만든 교량전차이다. 캐나다 수출명은 비버.
히포 BARV (Hippo BARV)
레오파르트 1의 차체로 만든 해안구난전차.

각주

  1. 크라우스마파이베크만 사(社) 레오파르트 1A5 소개 영문 웹페이지[1]
  2. 연방방위군 육군 웹사이트 [2]
  3. 당시 M48의 휴행탄수는 90mm 기준으로 64발이었다.
  4. Panzer-Biel und Beobachtungsgeraet 200의 약자. 1980년부터 연방방위군에서 운용되기 시작했으며, 텔레풍켄(Telefunken)에서 제작하였다.
  5. Justin Kelly(2008), Armor Basics[3]
  6. 現 BAAINBw(Bundesamt für Ausrüstung, Informationstechnik und Nutzung der Bundeswehr)
  7. 7.0 7.1 독일 IDB Deisenroth Engineering에서 제작한 모듈형 증가장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