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이 나가수

Kdga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20일 (일) 13:47 판


[목차]

개요

일본계 미국인 피겨스케이터. 1993년 4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영어 이름은 ‘미라이 에일린 나가수(Mirai Aileen Nagasu)’이고, 일본식으로는 ‘나가스 미라이(長洲未來)’이다. ‘미라이’는 일본어로 ‘미래’라는 뜻이다.

혈통과 국적

양친은 모두 일본인이고,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민하여 정착했다. 초밥집을 운영하며,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미라이는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히 미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으며(속지주의), 양친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 국적(속인주의)도 가지게 되었다. 즉 이중국적이었다. 미국은 복수국적을 허용하지만, 일본은 1985년 이후 출생자의 복수국적을 22세까지만 허용한다.

미라이는 그동안 국제대회에 항상 미국 선수로서 출전했고, 2015년(22세)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택했다. 다만 일본적인 면모도 많이 보이고 있다. 일본 방송에도 종종 출연했고, 영어보다는 다소 서투른 듯하지만 일본어도 곧잘 한다. (다만 읽고 쓰는 것, 특히 한자는 서툴다고 한다.) 집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며 일본 요리를 먹는다고. 일본 배경의 영화 <게이샤의 추억> OST를 배경음악으로 경기를 선보인 적도 있고, 기모노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피겨복도 입었다. 일본 기업 파나소닉으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했다.

피겨스케이팅 입문

5살부터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 이전에는 골프를 배우고 있었으나, 날씨가 나빴던 어느 날에 골프장 대신 아이스링크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피겨스케이팅을 접했다고.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였고, 동갑내기(1993년생)인 캐롤라인 장(중국계 미국인), 1살 위(1992년생)인 레이첼 플랫 등의 선수들과 함께 주목을 받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미라이는 곧장 아이스링크로 달려가 피겨스케이팅을 연습했고, 연습이 끝나면 부모가 운영하는 초밥집 한켠에서 학교 공부와 숙제를 하곤 했다. 부모 또한 무남독녀인 미라이를 열심히 뒷바라지했고, 특히 어머니 나가스 이쿠코(長洲育子)가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동계올림픽 출전

미국 국내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만 16세의 나이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대회 직전에는 다소 철없고 방정맞은 발언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첫 올림픽 출전인 밴쿠버에서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종합 4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밴쿠버 직후에 열린 대회에서는 김연아 등을 제치고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튿날 프리스케이팅을 망쳐, 종합 순위에서는 7위에 머물렀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에는 성공했다. 단체전에서 트리플악셀을 성공했는데, 이토 미도리아사다 마오에 이어 3번째 성공 사례이며, 미국인으로서는 최초의 기록이다. 하지만 개인전에서는 부진했다. 이를 두고 “평창의 교통 혼잡과 선수촌의 시설 부실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어 구설수에 올랐고, 이에 대한 비판 의견들이 나오자 곧 사과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로 현역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