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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현재의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일부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잉벌노현이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곡양현으로 바뀌었으며, 고려시기에는 금주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금천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잠시 동안 인근의 양천현 및 과천현과 병합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1795년 정조 시기에는 시흥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지금의 광명시 지역은 시흥현 남면, 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으로 시흥군 남면과 서면이 시흥군 서면으로 통합되었다.
현재의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일부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잉벌노현이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곡양현으로 바뀌었으며, 고려시기에는 금주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금천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잠시 동안 인근의 양천현 및 과천현과 병합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1795년 정조 시기에는 시흥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지금의 광명시 지역은 시흥현 남면, 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으로 시흥군 남면과 서면이 시흥군 서면으로 통합되었다.


현대적인 광명시의 역사는 광명시 북부이자 현재에도 핵심지역을 차지하는 철산리, 광명리, 하안리 일대가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된 후 광명리 일대가 서울 개봉동과 같이 1960년대 후반부터 주택지구로 개발되면서 시작되었다. 한편 철산리는 구로동의 주거수요 포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주도로 구로공단 근로자를 위한 대단위 주택지구로의 조성이 계획되었고, 아예 광명 지역의 서울특별시 편입까지 고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 팽창 억제 정책에 따라 광명 지역의 서울 편입이 무산되었고, 이는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이어졌다.
현대적인 광명시의 역사는 광명시 북부이자 현재에도 핵심지역을 차지하는 철산리, 광명리, 하안리 일대가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된 후 광명리 일대가 서울 개봉동과 같이 1960년대 후반부터 주택지구로 개발되면서 시작되었다. 한편 철산리는 구로동의 주거수요 포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주도로 구로공단 근로자를 위한 대단위 주택지구로의 조성이 계획되었고, 아예 광명 지역의 서울특별시 편입까지 고려되기도 했다. 1974년에는 서면 철산리, 광명리가 시흥군 광명출장소가 되었고, 1979년에는 시흥군 서면이 소하읍으로 승격하였다. 하지만 서울 팽창 억제 정책에 따라 광명 지역의 서울 편입이 무산되었고, 이는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이어졌다.


시 승격 이후에는 철산동, 하안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30만명대에 진입하였다. 1995년에 목감천쪽 서울시 경계조정이 이루어졌고 철산3동의 일부가 서울 금천구에 편입되었다. 2010년경에 소하동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시 승격 이후에는 철산동, 하안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1983년에 시흥군 소래읍 옥길리 일부가 광명시에 편입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30만명대에 진입하였다. 1995년에 목감천쪽 서울시 경계조정이 이루어졌고 철산3동의 일부가 서울 금천구에 편입되었다. 2010년경에 소하동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 산하 행정구역  ==
== 산하 행정구역  ==

2015년 4월 25일 (토) 04:35 판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한 . 서울특별시의 위성도시로, 서울특별시의 금천구, 구로구와 경기도의 안양시, 부천시, 시흥시와 접한다. 2015년 현재 인구는 약 35만명이다.

역사

현재의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일부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잉벌노현이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곡양현으로 바뀌었으며, 고려시기에는 금주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금천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잠시 동안 인근의 양천현 및 과천현과 병합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1795년 정조 시기에는 시흥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지금의 광명시 지역은 시흥현 남면, 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으로 시흥군 남면과 서면이 시흥군 서면으로 통합되었다.

현대적인 광명시의 역사는 광명시 북부이자 현재에도 핵심지역을 차지하는 철산리, 광명리, 하안리 일대가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된 후 광명리 일대가 서울 개봉동과 같이 1960년대 후반부터 주택지구로 개발되면서 시작되었다. 한편 철산리는 구로동의 주거수요 포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주도로 구로공단 근로자를 위한 대단위 주택지구로의 조성이 계획되었고, 아예 광명 지역의 서울특별시 편입까지 고려되기도 했다. 1974년에는 서면 철산리, 광명리가 시흥군 광명출장소가 되었고, 1979년에는 시흥군 서면이 소하읍으로 승격하였다. 하지만 서울 팽창 억제 정책에 따라 광명 지역의 서울 편입이 무산되었고, 이는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이어졌다.

시 승격 이후에는 철산동, 하안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1983년에 시흥군 소래읍 옥길리 일부가 광명시에 편입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30만명대에 진입하였다. 1995년에 목감천쪽 서울시 경계조정이 이루어졌고 철산3동의 일부가 서울 금천구에 편입되었다. 2010년경에 소하동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산하 행정구역

철산동 광명동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노온사동 가학동 옥길동

참고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