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KUNG-FU GENERATION

왼쪽부터 이지치 키요시(Dr.), 고토 마사후미(Vo&G), 야마다 타카히로(B&Vo), 키타 켄스케(G&Vo)

ASIAN KUNG-FU GENERATION(아시안 쿵후 제너레이션)은 일본음악 밴드다. 약칭은 AKFG, AKG 또는 아지캉(アジカン).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평범한 녀석들이 음악을 해도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널리 퍼뜨린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 고토 마사후미, ROCKIN' ON JAPAN과의 인터뷰 中

결성 20주년, 데뷔 13년을 맞이한 일본 요코하마 출신의 락 밴드. 대학 경음악부에서 시작하여 메이저 데뷔와 큰 성공을 이루어 낸 밴드이다. 소속사는 소니 엔터테인먼트 산하의 큔 뮤직(Ki/oon Music). 밴드 이름이 길기 때문에 보통 아지캉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영문으로는 AKFG 혹은 AKG어느 음향기기회사와는 관계 없다 국내에서의 표기는 아시안 쿵푸 제네레이션. 밴드의 특이한 이름은 밴드의 멤버들 모두가 좋아하는 일본의 그런지 락밴드 thee michelle gun elephant처럼 영단어 세 개를 이용하여 밴드의 이름을 짓자고 한데서 유래했다. 밴드이름의 "KUNG-FU"는 고토가 쿵푸를 좋아해서 붙인 것. 쿵푸를 한다던가 그런건 아니고 보컬 고토 마사후미의 목표가 음악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름이 특이하다면 좀 더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결성과 데뷔[편집 | 원본 편집]

1996년 요코하마의 간토가쿠인대학(関東学院大学)의 경음악부에서 결성. 대학 입학 당시 고토가 본래 가려고 했던 서클이 아닌 다른 서클에 우연히 가게 됐고, 그 서클 내에서 유일한 UK 록팬인 키타와 친해지게 되어 의기투합해서 밴드를 만들기로 한 것이 밴드의 시작. 당시 고토는 밴드를 만들자는 약속을 까먹고 있었는데 야간대학에 재학 중이던 고토를 주간대학에 다니던 키타가 캠퍼스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고토 뒤에서 "고토군"이라고 말을 걸며 스토커처럼 쫓아 다녔다고 한다.

이후 서클에서 혼자 있던 야마다에게 "좋아하는 밴드가 누구냐"고 묻자 야마다가 "비틀즈"라고 답한 것으로 밴드에 가입하게 되고 같은 서클 내의 다른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이지치가 합류하여 결성. 처음 시작 당시에는 5인 밴드였으며 결성 당시에는 영어가사로만 작사를 했고, 그 곡들을 위주로 요코하마와 교내에서 공연을 했었다.

대학 졸업 후 각자 직장인 생활을 하면서 밴드를 계속 하던 중 어정쩡한 생활[1]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면서 모두가 직장을 관두고, 본격적으로 밴드 생활에 뛰어들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고토는 '노래로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서 모든 가사를 영어로만 작성했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변하게 되고, 처음으로 일본어로 작사한 곡이 EP 崩壊アンプリファー(붕괴 앰플리퍼)에 수록된 粉雪(가랑눈).

그 후 요코하마에서 도쿄의 시모키타자와로 이동해 그 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인디에서 발매한 EP 崩壊アンプリファー(붕괴 앰플리퍼)가 큰 호응을 받았고, 큔 레코드(現 큔 뮤직)를 통해 메이져 데뷔에 나서게 된다.

데뷔 이후[편집 | 원본 편집]

2003년 데뷔 이후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메이져 2집인 「ソルファ」(솔파)는 2004년 11월 2주 연속 오리콘 1위를 차지, 총 70만장에 가까운 앨범을 팔면서 대성공을 이룬 것을 시작으로 2008년 발매한 4집 「ワールド ワールド ワールド」(World World World)와 2012년 발매한 베스트 앨범 「BEST HIT AKG」도 오리콘 1위에 오르는 등 메이져에서도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NANO-MUGEN FESIVAL[2]이라는 이름의 밴드 페스티벌을 2003년부터 꾸준히 개최했으며, 2005년부터는 참여한 밴드들의 노래들을 담아 컴플레이션 앨범을 내기 시작했다.[3]

콘서트와 라이브 또한 매년 꾸준하게 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꾸준하게 영상작품집(映像作品集)이란 이름으로 라이브 DVD를 발매하고 있다. 매년 라이브를 담는 것은 아니고, PV들을 모아 영상작품집이란 이름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밴드의 음악은 주로 UK록과 파워 팝, 락에서 영향을 받았다.[4] 밥 딜런에게서 모티브를 따와 노래를 만든 적[5]이 있고, 오아시스 같은 경우 노래의 기타 솔로를 통째로 따서 쓴 적도 있다. [6]

강렬한 기타음과 UK팝 같은 멜로디가 특징이며, 근래에는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들을 이용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밴드 멤버들 또한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며, 다양한 노래를 많이 듣고 접할 것을 권유한다. 가사 또한 표현 방식이 철학적이면서 깊이가 있고, 메세지가 있어서 듣는 이에게 가사를 곱씹어 보게 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보컬 고토 마사후미의 목소리. 메인보컬이라고 하나 음역대가 그렇게 높지 않으며, 초창기에는 라이브가 정말 영 좋지 못했다(...). 메이져 데뷔 10년이 넘고 역량이 쌓이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라이브 초반과 중, 후반의 목소리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시원하게 내지를때는 내지르고케시테-리라이토시테-같은, 사람들이 고토 목소리에 익숙해지면서 그냥 인정(?)받게 됐다. 거기에 본인도 인정하는, 나쁜 발음도 있다.(...)

앨범 일러스트가 특이하단 평을 받는데, 일러스트레이터 나카무라 유스케(中村佑介)[7]에게 일임하고 있다.[8] 인디 시절 고토가 우연히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 엽서를 보고 반해서 '이 사람에게 일러스트를 맡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친해지게 되면서 일러스트를 맡기게 됐다고 한다. 일러스트를 맡기게 된 이유는 독특한 일러스트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엘르가든과 the HIATUS의 보컬을 맡고 있는 호소미 타케시, 스트레이테너의 호리에 아츠시와 상당히 친하다. 스트레이터너는 인디 시절부터 같이 공연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서로 서로 친하다보니 근황을 서로 서로 알리는 등 언급 빈도가 꽤 높다. 2013년 10주년 라이브에서 찬조 출연하여 호소미 타케시는 遥か彼方(아득한 저편)를, 호리에 아츠시는 無限グライダー(무한 글라이더)를 불렀는데 호리에 아츠시의 노래는 원곡을 초월했다(...)는 평을 받기도. Weezer의 前 베이시스트인 맷 샤프와도 인연이 있어 본인이 주최하는 나노무겐 페스티벌에 불러서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같이 Weezer의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했다. 또한 맷 샤프가 속한 the rentals의 노래인 Hello Hello를 리메이크하여 부르기도 했다.

이외에도 Chatmonchy, the chef cooks me, BEAT CRUSADERS, Dr.Downer, SPECIAL OTHERS 등과 친한 관계. the chef cooks me는 고토 마사후미가 운영하는 레이블 소속이며, 키보드/보컬 담당의 시모료 같은 경우 라이브에서 키보드 세션으로 같이 참여하기도 한다.

나루토와 강철의 연금술사 등 많은 애니메이션 타이업에 참여하여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꽤 있어서 많은 나라에서 그들의 앨범이 정식발매 됐다. 유투브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라이브 영상이 올라오기도 하며 15년에는 유럽과 남미투어를 떠나기도 했었다. 애니메이션 타이업이 꽤 많아서 애니메 밴드라는 평도 종종 받는데, 고토의 경우 이를 은근히 신경쓰는 듯 하다. 트위터에 리라이트 말고 다른 곡도 들어달라고 쓰기도 했었으니...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곡이 전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애증의 관계(?)로 볼 수 있을 듯. 10주년 기념으로 나온 책에서도 "아지캉의 곡 중 한 곡을 추천한다면?"이란 질문에 혼자서 "리라이트 이외의 곡"이라고 답변할 정도.

멤버[편집 | 원본 편집]

고토 마사후미(後藤正文, Vo./G.)[편집 | 원본 편집]

1976년 12월 2일 생. 시즈오카 현 출신.

보컬과 리듬기타를 맡고 있다. 별명은 곳치, 곳상. 아지캉의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기에 아지캉 곡의 대부분은 그의 메세지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물론 멤버들과의 의견을 주고 받지만.) 패션과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많아서 헤어스타일이 자주 바뀐다. 16년 현재는 위와 같이 덥수룩한 모습이지만, 이마를 시원스럽게 드러낸 꽁지머리 그리고 자갈치머리 등의 모습이 보통이다. 2007년 동갑의 회사원과 결혼. 중학교때는 야구부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스모를 상당히 좋아해서 혼자 스모 경기를 보러가기도 하고 스모의 변화에 대해 비평하기도 하는 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도 자의식이 상당히 강하다고 할 정도로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때문에 밴드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았었다고 한다.[9] 타 멤버들이나 본인의 인터뷰를 보면 어떻게 계속 밴드가 지속됐는가 싶을정도.

멤버들 중 대외활동이 가장 활발한 멤버이다. 2009년에는 인디 레이블 Only In Dreams[10]을 만들었고,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많은 반성과 사회참여의 필요성을 외치며 THE FUTURE TIMES라는 신문을 만들고, 직접 홍보활동도 하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본인의 홈페이지를 통해 일기를 갱신하고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펼치곤 한다. 그 예시로 2004년 당시 소니의 CCCD 정책[11]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던 것이나 평화헌법의 수호의 필요성이나 원자력, 원전에 대한 글을 쓴 것 등. 앨범이 나오면 트위터나 다이어리에 앨범의 해설과 곡에 대한 Q&A를 진행하기도 한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로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그전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지진 이후 행동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2012년부터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주도하는 NO NUKES 페스티벌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NO NUKES 2013의 경우 아지캉 단독 공연이었다... 2015년 9월에는 일본의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SEALDs에서 일반인/비참가 학생들에게 배포중인 홍보물에 학생들의 반전운동을 지지하는 메세지를 남기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Gotch라는 이름으로 솔로활동을 하고 있다. 이쪽은 락보다는 브릿팝쪽 성향이 강하며 아지캉으로 하지 않는 음악을 한다고 한다. 2016년 현재 정규앨범 2장이 발매됐으며, 2집 Good New Times의 경우 전곡이 영어가사로 작사됐다. Dr.Downer, the chef cooks me의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다.

키타 켄스케(喜多建介, G)[편집 | 원본 편집]

1977년 1월 24일 생, 가나가와현 출신. 메인기타와 백보컬을 맡고 있다. 별명은 켄쨩. 아지캉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얼굴을 비치고 활동하는 사람은 고토 마사후미지만 엄연히 리더는 키타이기에 대표 코멘트는 키타가 한다. 나이에 비해 상당한 동안이고, 얼굴이 잘 생긴 편이라 인기가 많다. 한신 타이거즈의 팬으로 우에모토 히로키를 가장 좋아한다고 10주년 라이브에서 밝혀졌다.

아지캉 멤버 전원(심지어 본인도!)이 인정하는 지각쟁이. 당연히(?) 리허설에 늦는 건은 예사요, 비행기까지 놓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지캉 멤버들에 의하면 성격이 상당히 까탈스러운 편이었다고 한다. 고토와의 말다툼도 심했으며, 심지어는 무대 위에서도 싸우기도 했다. 자기 연주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앨범 녹음 중 돌아가거나 투어 도중 나오지 않는 일도 있었다고.(...)의외로 민폐 현재는 나이가 먹고 밴드 생활을 오래 해오면서 까탈스러운 면이 많이 줄어든 듯.

노래할 때는 상당히 얇은 고음을 내서 주로 코러스를 맡지만, 보컬을 맡은 노래가 몇 곡 있다.[12]


야마다 타카히로(山田貴洋, B)[편집 | 원본 편집]

1977년 8월 19일생, 시즈오카현 출신. 베이스와 백보컬[13]을 맡고 있다. 별명은 야마쨩.

밴드 결성때부터 20년이 지난 현재시점까지 변한 것이 없다고 멤버 모두(심지어 본인도)가 인정. 사진도 언제나 같은 옷차림[14]에 같은 무표정,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찍는다. 이는 멤버들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때문에 무덤덤한 사람 같다는 평을 자주 받는다. 실제로도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기에 밴드 내에서 야마다가 적극적으로 감정이나 의사표현을 개진하면 멤버들이 놀라곤 한다고. 고토에 의하면 아지캉의 음악에 대한 객관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고토와 함께 작곡한 곡들이 많으며, 2012년과 2014년 카타히나 리나의 앨범 프로듀싱을 담당하기도 했다. 보컬로이드에 관심이 있는 듯하며, 본인이 작곡하는 곡에 보컬로이드를 사용해보겠다고 말하기도.

2015년 여름 아나운서와 결혼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16년 초에 자식이 태어났다.

이지치 키요시(伊地知潔, Dr.)[편집 | 원본 편집]

1977년 9월 25일생, 가나가와현 출신. 드럼을 맡고 있다. 피아노(月光)와 노이즈 기타(ラストシーン)를 연주한 적도 있다. 별명은 한류스타 이지천[15]키요시, 키요뽕. 주로 키요시라고 부른다. 다른 멤버들(고토와 키타는 경제학, 야마다는 문학 전공)과 달리 공학부 출신이며 의외로(?) 기독교 신자이며, 메탈을 좋아한다.

본래는 다른 밴드(캐러럴맨)에서 드럼을 치다가 아지캉의 드러머가 탈퇴하면서 아지캉에 합류, 한때 캐러럴맨과 아지캉을 병행했지만 아지캉을 선택, 지금까지 멤버로 남아있다.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최초 결성멤버가 아니라 그런지, 정규 3집 팬클럽 녹음 전까지 약간 겉도는 멤버였다고 스스로 밝혔다. [16] WONDER FUTURE 투어 당시 고토의 발언에 의하면 다른 멤버들보다 2년 정도 늦게 들어온 듯. 또한, 밴드에 처음 들어올 당시에는 상당히 가벼운 성격[17]이었지만 아지캉 생활을 하면서 상당히 변했다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상당히 소극적이지만 밴드는 하고 싶었기에 드럼을 택하였고, 그 때문에 트위터에서 우연히 만난 옛 지인이 놀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뮤즈의 콘서트에 뮤즈의 보컬 매튜 벨라미의 스타일과 유사한 옷을 입고 가는 등 똘끼를 발산하기도...

PHONO TONES라는 인스트루멘털 밴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Dr.Downer의 베이스, 이노마타 요우스케와 이지치가 같이 술을 먹다가 이런 밴드가 하고 싶다며 의기투합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요리에도 재능이 있는지, 후지 패브릭의 가나자와 다이스케와 「Session In The Kitchen」이란 제목의 요리코너를 잡지에서 게재하는 중. 디자인쪽에도 관심이 있는지, 밴드 굿즈 디자인에도 참여한다고 한다.[18]

내한[편집 | 원본 편집]

2007년 7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때 최초로 한국에 방문하여 공연을 가졌다. 아지캉 최초의 해외 라이브였음에도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노래를 떼창하고 호응하는 것에 충격과 감동을 먹었다고 한다. 이 때의 일화로는 밴드 넬과 만나 같이 술을 마신적이 있는데, 보컬 김종완이 자신들의 CD를 줘서 넬에 대해 알게 됐는데 후에 김종완은 자기가 CD를 줬는지 모르고 있었다 한다.[19]

그리고 그 해 12월, 단독으로 홍대의 고스트시어터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후 2009년과 2011년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에 참가하였으며, 이 때 알게 된 밴드 THE KOXX를 NANO-MUGEN CIRCUIT 2011에 초청하였고 컴플레이션 앨범에도 밴드의 노래(Over And Over)가 수록됐다. 이를 계기로 아지캉이 운영하는 레이블인 Only In Dreams를 통해 칵스의 앨범 ENTER가 일본에 발매됐다.

2013년 12월 17일, 유니클로 악스(現 YES24 라이브홀)에서 단독 내한공연을 가졌다. 게스트로는 밴드 넬과 스트레이테너가 나왔으며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평일+대학생 기말고사 기간 디버프...) 열정만은 뜨거웠던 라이브였다.

디스코그래피[편집 | 원본 편집]

바깥 고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당시 영업을 하던 야마다는 외근 후 바로 퇴근하겠다고 보고하고선 리허설에 참가, 키타 같은 경우 아픈 척하면서 조퇴하여 리허설 참가를 한다던가...
  2. 가장 작은 단위인 나노와 (고토가 말하는)가장 큰 단위 무한을 이용해 만든 이름. 최소부터 최대까지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3. 2006년, 2015년 제외. 이 때는 밴드 멤버들이 투어에 큰 비중을 두었기에 개최하지 않았다.
  4. 영향을 받은 밴드/가수로는 Oasis, Thee Michelle Gun Elephant, Number Girl, Weezer, Oasis 등.
  5. ランドマーク의 アネモネが咲く春に(아네모네가 피는 봄에). Blowin' in the Wind을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6. 1집 君繋ファイブエム의 E. 오아시스의 Live Forever 의 일부분을 차용했다.
  7. 주로 검은 머리를 한 소녀와 동물, 밝은 색상의 배경 등을 이용하여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의 표지와 애니메이션의 원화 디자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표지와 히가시야마 도쿠야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의 표지등을 담당했다.
  8. 싱글 Easter와 Right Now, 정규앨범 Wonder Future에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가 들어가지 않아 이런 저런 추측들이 오갔으나, 고토가 앨범 일러스트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앨범의 의도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후 나카무라 유스케가 직접 그린 Wonder Future 일러스트가 트위터로 올라왔으며, 2016년 발매된 싱글 Re:Re:부터 다시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를 사용했다. 트리뷰트 앨범 AKG TRIBUTE에도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가 사용되지 않았다. 소라닌의 작가 아사오 이니오가 앨범 커버를담당했다.
  9. 2집 솔파와 3집 팬클럽 사이가 가장 심한 시기였다고 한다. 2집 솔파의 대성공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팬클럽이 (솔파에 비해) 실적이 나지 않으면서 실망감이 더해졌었다고... 이후 4집 「월드 월드 월드」에서 하고 싶은 대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만들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
  10. Weezer의 데뷔앨범 Blue의 마지막 트랙명에서 이름을 따왔다.
  11. Copy Control CD, 복사방지 CD. 음원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한 시도였지만 재생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2005년 폐기됐다.
  12. 거짓말과 원더랜드(싱글 블루트레인과 B-Side 앨범 Feedback File에 수록), 시 사이드 슬리핑(싱글 Easter에 수록) , 타임 트라벨러(싱글 Re:Re:에 수록), 팔경(싱글 Blood Circulator에 수록). 네 곡 다 본인이 작곡에 참여한 곡이다.
  13. 키타가 고음부분 코러스라면, 야마다는 중·저음 담당 코러스를 맡는다.
  14. 위에 입고 있는 스타일. 체크무늬 셔츠+청바지 조합.
  15. 고토가 자기 마음대로 붙인 별명이다.
  16. 솔파때까지만 해도 키타가 멤버들한테 막 갈구곤 했는데 이지치에게만 별 말 안하고, 드럼패턴도 스스로 만들었는데 팬클럽 만들 당시에는 고토가 드럼패턴과 연주에 대해 갈구고 혹독하게 굴었다고 한다.
  17. 고토 曰 "테니스 동아리에 있을 법한 말랑말랑한 이미지의 녀석"
  18. 본래는 고토가 전담해서 했지만 밴드의 규모와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지치와 스태프에게 넘겼다고.
  19. 참고로 이 해 펜타포트에서 김종완은 만취한 상태로 라이브를 하여 전설이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