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남

洪吉南.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1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0년 4월 10일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수성동에서 출생했다. 함북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4학년생인 전달준, 이홍우 등의 설득을 받아들여 박응남, 이용운, 안석종, 박남순, 최청용, 강초근 등과 함께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는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이들은 1930년 1월 24일 이홍우의 하숙집인 경성군 오촌면 수성동 우동준의 집에서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고, 오후 10시경부터 이용운의 하숙집인 오촌면 승암동 유정근의 집에 집결했다.

1930년 1월 25일 오후 3시경 안석종이 조각한 파형 목판을 백지에 찍어 각자의 이름을 적고, 태극기 약 700매를 제작하였다. 이어서 "노예교육 타파", "광주학생 사건으로 구금된 학생을 석방하라", "학원독립 경찰은 간섭해선 안 된다" 등 크게 쓴 선도 깃발 8개를 제작하여 오후 12시 40분경 250명의 동교생들과 함께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출발하여 거리를 행진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30년 3월 6일 1심에서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30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1]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홍길남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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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