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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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啓業. 이명은 하대호(河大浩).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5년 11월 9일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조일동에서 출생했다. 1943년 일본 홋카이도 무로란시(空蘭市) 소재 일본제철(日本製鐵) 윤서(輪西)제철소에 강제 동원되어 노동자로 일하던 중, 노동 착취를 혹독하게 당하면서 사는 고통이 죽는 것보다 심하다고 여기고 1943년 2월 20일부터 숙소 화장실 벽에 "조선독립만세", "이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 때문에 고생하는가", "조선군인을 많이 만들라", "반도 청년 만세" 등의 낙서를 적었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1943년 3월 20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그는 5월 6일 삿포로(札幌) 소재 대통구치지소(大通拘置支所)에 송치되었다.

일본 형사들은 소년이 휘갈긴 글이라고 보기에는 정연하다는 이유로 배후를 대라며 매질과 물고문 등 심한 고문을 가했다. 하계업은 끝까지 혼자 한 일이라며 부인하였고, 10월 6일 석방되었다. 그후 한국에 귀환한 그는 1951년 서분덕 씨와 결혼하였고, 틈이 날 때마다 일본 외교관, 무로란 경찰서, 검사국 등에 편지를 보내 수감 기록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답만 받았다. 이에 그는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아내와 함께 일본에 가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90년 4월 23일 경남 창원에서 사망했다.

사후[편집 | 원본 편집]

서분덕 씨는 남편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를 희망하여 국가보훈처를 찾아갔지만, 자료 미비를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러다 2010년 12월 전직 경찰이던 최규식 행정사를 만나 서류를 정리하는 요령을 익혔고, 그와 함께 남편의 고향인 김해를 찾아가 증인을 확보했다. 특히 하계업이 형무소에서 나올 때 부축했던 안상근의 아들인 안원호 씨가 하계업의 행적에 대해 증언하는 '사실확인서'를 작성한 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하계업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4일 하계업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헀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