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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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인물들의 역을 맡으면서 얻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들의 역을 맡으려면 자료를 열독해야 합니다. 자료를 열독하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는 저에게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됩니다. 원래 평범한 저를 이런 인물들이 훌륭한 인물로 높여놓았지요. 또 제가 다른 사람들의 어깨위에 섰으니까 제가 커보이는 것이였지요. 바로 그런 도리입니다.

탕궈창(간체: 唐国强, 정체: 唐國強, 병음: Táng Guóqiáng, 한자음: 당국강, 1952년 5월 4일 ~ )은 중국배우 겸 서예가이다. 그는 제갈량, 마오쩌둥 등 중국사의 굵직한 인물들을 열연하여 진도명과 더불어 중국의 국민배우로 칭송받고 있다.

소개[편집 | 원본 편집]

1952년 5월 4일 중국 산둥 성 옌타이 시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청도제39중학교를 졸업한 뒤, 청도시신극단에 입단하였다. 이후 1975년에 《남해풍운》이라는 영화에 출연해 자오융성 역을 맡음으로서 자신의 배우 경력을 시작하였다.

젊고 생기 있는 멋진 군인 역을 휼륭히 소화해낸 그는 《공작 공주》에서 따이족 왕자 역을 맡아 시청자들을 감동시켰으며, 《공작 공주》는 제1회 마닐라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가 상영함으로서 커리어 상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주인공을 맡은 故 타카쿠라 켄의 카리스마에 많은 중국인 관객들이 매료되었고, 오히려 자신이 '얼굴만 잘생기고 연기는 못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듣게되었다. 이후 그는 캐스팅마다 감독들이 꺼려해 불발되어 하락세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는 좌절 또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라 여겼다. 한 때는 배우를 접고 다른 길을 모색하려 했지만, 영화 소화의 감독 셰진의 격려를 듣고 자신의 경력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한다. 결국 《높은산 아래의 화환》에 출연하는데 성공하였고, 수개월간의 노력으로 영화 대학 입시에도 성공하였다.

1990년, CCTV 촬영으로 완성된 84부작 《삼국지》의 제갈량으로 크게 성공하여 중국 전역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혼신을 다한 열연으로 지혜와 사상으로 무장한 늠름한 제갈량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노력하였고, 결국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탕궈창만의 간지폭풍 제갈량이 3년간의 노력 끝에 TV 화면에 등장하였다.

그 후, 탕궈창의 이전의 외면받던 경력은 정반대로 뒤집혀 많은 감독들이 그에게 캐스팅 제의를 보냈다. 순식간에 텅 빈 스케쥴이 꽉꽉 채워졌고, 제갈량 역의 뒤를 이어 《대당가비》의 당 현종, 《대당정사》의 당 태종, 《큰발 마황후》의 주원장 역으로 중국의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여러 번 증명시켰다.

그의 샤프하면서도 멋들어진 외모는 그야말로 황제의 풍채에 걸맞았으며, 그가 맡은 중국사의 명군들은 업적도 업적이지만 탕궈창의 후덜덜한 열연으로 더더욱 간지를 더해 중국의 시청자들은 물론이거와 한국의 중화권 사극 팬들에게도 커다란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가 인생 최대의 도전을 맞이한다. 바로 《장정》에서의 마오쩌둥 역을 소화해나는 것인데, 당시 팬들은 그가 마오쩌둥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많은 자료들을 찾아 열독하고 마오쩌둥의 영상 자료 참관수업도 진행했고 마오쩌둥역을 맡았던 배우들을 찾아 배우기도 하는 등의 노력으로 그는 마오쩌둥 전문 배우로 자리잡게 된다. 결국 그는 중국정부영화상인 화표상까지 수상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