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이병근

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이병근 (李柄根 / Lee Byung-Keun)
  • 출생일: 1973년 4월 28일
  •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 국적: 대한민국
  • 신체: 175cm, 63kg
  • 포지션: 풀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 선수: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6) - 대구 FC (2006~2007) - FC 오버노일란트(2007~2008) - 서울 유나이티드 (2008~2009)
  • 스태프: 매남 (2009~2012/스카우트) - 매남 (2011~2012/코치) - 수원 삼성 블루윙즈(2013~2016/수석코치)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7~2018/코치)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8~ / 감독대행)
  • A매치: 38경기 0골

선수 경력[원본 편집]

1996년 수원 삼성이 창단할 때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데뷔 시즌 30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낙점받았고, 98-99시즌 K리그 2연패, 99시즌 전관왕 달성 등 수원의 전성기에 큰 역할을 한 수비수이다. 2003년까지는 매 시즌마다 부상만 없으면 30경기 이상 출전해 주었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비라인에서는 최고의 조커로서 활약해 주었다. 또한 팀에 대한 충성심도 매우 높아서 수원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끈 레전드급 수비수. 또한 수원과 함께 10년동안 수많은 기록을 써 나간 그는 수원의 전설이다. 수원에서만 300경기 이상을 출장하며  김진우와 함께 최다 출장 공동 3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1 

차범근 감독 부임 첫 해 주장 완장을 차고 좋은 경기를 보여 주기도 했으나 , 2005 시즌 세대 교체를 시작한 차범근의 구상에서 제외되면서 은퇴의 기로에 몰렸다. 결국 2006 시즌 종료 후에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은퇴 권유까지 받게 되고 그걸 거절한 이후부터 출전기회를 완전히 잃어서 4경기 출장에 그치게 된다. 이에 좀 더 많은 경기 출장을 원한 이병근은 대구 FC로 자유계약으로 이적하게 된다. 수원에서 309경기 출장, 7골 14도움을 기록. 대구 FC에서는 나이 때문에 많이 뛰진 못한다. 1년간 13경기 3골을 기록한 후 독일 리그로 이적했다. K3리그 소속 팀인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한 시즌을 더 뛰며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마감하였다.

지도자 경력[원본 편집]

조광래 감독의 부임과 함께, 매남의 스카우트를 거쳐 2011 시즌 코치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시즌 종료 후, 김판곤의 홍콩 리그 이적으로 수석 코치로 승격했다. 상당히 빠른 진급 속도(?)를 자랑하는 중. 이후 2012시즌을 앞두고 새로 수원의 감독이 된 서정원의 부름으로 경남을 떠났다.

2017 시즌부터는 수원 삼성의 코치진 개편 및 수석코치제 폐지로 인하여 다른 코치들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역할을 나누게 되었다.

2018년 8월 28일 서정원 감독이 사퇴함에 따라 감독대행 직을 맡게 되었다. 다음날인 8월 29일에 열린 AFC 챔피언스 리그 8강 매북 원정이 데뷔전이었는데, 악재 속에서도 3:0 완승을 거두면서 감독대행 첫 경기를 완승으로 마무리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주로 소화하는 포지션은 좌측 풀백과 중앙 수비수였고, 전술상 필요시 우측 풀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가서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또한 90년대 후반 공격력이 좋은 좌측 풀백 신홍기의 백업으로서 경기 후반에 '잠그기'를 시전할 때나 강팀을 만나서 측면 수비를 단단히 해줘야 할 때 팀에서는 이병근의 존재가 매우 유용했다. 

중앙 수비수로 설 때에는 수비 위치 선정 능력과 정확한 태클로 공을 빼내는 능력이 좋았으나 작은 키 때문에 공중 볼에 약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윙백이 본 포지션인 선수답지 않게 발이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되었다.

투지 넘치고 적극적인 오버래핑이 인상적이었던 선수로, 활발한 움직임과 과감한 돌파에 비해 크로스의 성공률이 낮아서 안습이었다는 평이 있다. 여기에 경기 외적으로도 적극적인 생활 태도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프로 의식과 팀을 위해 헌신하는 이병근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있다. 2004시즌 초반, 포항과의 경기에서 이병근은 정신을 잃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전반 종료 직전 포항 박원재와 서로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터라, 들것에 실려나오는 이병근의 눈은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충돌 과정에서 박원재의 몸이 덮치면서 이병근은 우측 쇄골 인대까지 파열됐다. 앰뷸런스로 다급히 이동시키는 중에 얼굴이 사색이 된 이병근이 눈을 떴다. 졸도 후 기억을 잃은 이병근은

내가 왜 여기에 있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곳(그라운드)이다. 경기에 바로 나가야겠다. 빨리 운동장으로 보내달라.

  • 고 외치며 눈물을 쏟았다. 이병근은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됐다. 병원 측은 “경미한 뇌진탕 증세가 있으며, 파열된 쇄골 인대가 회복되려면 2개월 이상이 소요된다”고 진단했다. 이외에도 부상 회복 때문에 팀 닥터가 안된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운동하러 나가겠다 떼를 쓴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언제나 강했다고 한다.
  • 라커룸에서는 팀의 주장이자 최고참 급으로서 필요할 때 팀의 고참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한 선수로 알려져 있어 수원 팬들에게는 레전드로 인정받는 선수.

  • 춤을 굉장히 잘 춘다 카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