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검

용천검(龍泉劍)은 중국한국 설화에 나오는 명검이자, 중국 룽취안시에서 생산되는 도검의 브랜드다. 본래는 용연검(龍淵劍)이라고 불렸지만 중국 당나라 시대에 고조 이연인 『연』(淵)을 피해서 용천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전설[편집 | 원본 편집]

구야자가 벼린 세 자루의 명검 중 하나.

남북조시대에 진(晉)나라의 뇌환이 풍성의 땅 속에서 태아검과 함께 파냈다는 고사가 전해지는데, 이 때문에 태아검과 용천검을 묶어서 풍성검(豊城劍) 또는 풍검(豊劍)이라고도 부른다.

룽취안시의 도검[편집 | 원본 편집]

중국 저장성(절강성)에 위치한 룽취안시(용천시)에서는 용천보검이라는 브랜드로 도검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룽취안시 일대는 예로부터 제검(製劍)의 명지였다. 그 역사는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룽취안시 주변은 오나라월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지역이었다. 오월지역은 물과 숲이 풍성한 지역이라서 오와 월 모두 긴 병장기보다는 휴대가 편한 검을 선호했고, 자연히 두 나라는 제검 기술과 검술이 크게 발달했다. 월나라 군대에 검술을 가르쳤다는 월녀의 일화에서도 이런 사정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오월지역에서도 용천(과거에는 용연)은 명검의 본고장으로서 유명하다. 가장 큰 이유는 용천 일대에 질 좋은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 밖에도 물과 땔감을 구하기 쉬운 입지 조건을 타고난 등 그야말로 창칼을 생산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용천의 검은 옛날부터 보검의 대명사로 꼽혔으며, · 시기의 조정 귀족들은 용천보검을 패용하기도 했다.

한국의 용천검[편집 | 원본 편집]

용천보검의 명성은 한반도까지 퍼져서 한국의 설화에서도 용천검을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 민요 《용천검》은 제목부터 용천검을 언급하고 있고, 임경업최제우의 설화에서도 용천검이 등장한다. 임경업은 용천검과 추련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전하는데, 추련도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소재한 임충민공 충렬사에 문화재로서 남아있으나 (임경업의) 용천검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대중문화 속의 용천검[편집 | 원본 편집]

참고 자료[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