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Egon Schiele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유족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 사망하고 어머니는 남매에게 지독히도 무관심했다.

그는 어릴 때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빈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 했는데 거기서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젊은 실레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그림을 사주고, 자신의 그림과 교환하기도 하고, 모델을 주선해주기도 하였으며, 후원을 해줄만한 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분리파를 금지하는 그 당시 보수적인 학풍 때문에 불만을 갖아 학교를 중퇴하고 Neukunstgruppe(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하였다. 그는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 하고 수많은 개인전을 열어 유명세를 타게 된다.

1911년, 실레는 17세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전 모델인 발레리 노이질(Valrerie Neuzil)을 만나서 그림을 그렸는데[1] 그녀는 미성년자 였기 때문에 그는 유괴 혐의로 체포 당했다. 재판을 위해 21일간 유치소에 보이고 교도소에서 3일 투옥 했는데 투옥 생활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한 작품 3점을 그렸다.[2] 그 후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그녀와는 다시 만나지 않게 되었고 <죽음과 소녀>를 그렸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년 징집을 피하려다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는 1917년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임신 한 후 <가족>이라는 작품을 그렇지만 그 당시 유행 하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자녀를 보지 못하고 임신 중의 아내와 함께 사망했다.

평가[편집 | 원본 편집]

에곤 쉴레는 1918년 10월 31일, 28세의 나이로 요절 했지만 약 300여 점의 유화와 2000여 점이 넘는 데생과 수채화를 남겼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처음에는 혈육을 나눈 동생 게르티 쉴레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2. 재판 하는 도중 판사가 그림 한점을 불태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