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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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小雲.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6년 12월 30일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리(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27년 봄 부산제2상업학교에 재학하던 중, 동교생인 김규직(金圭直)·양정욱(梁正彧)·윤태윤(尹兌潤)·윤병수(尹炳洙) 등 10여 명과 함께 민족정신의 함양과 항일투쟁을 목표로 비밀리에 독서회(讀書會)를 결성하였다. 1927년 가을, 학생 중심의 독서회 활동으로는 항일투쟁운동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김규직의 집에서 독서회원들과 함께 독서회를 해소하고 흑조회(黑潮會)를 조직하는 한편, 조직 강화와 동지 규합, 적극적인 항일투쟁 전개 등을 목표로 사회 인사와 학생들의 연대를 강화시켜 나갔다. 또한 독서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매월 정기회합을 갖고 비밀리에 월간지 '흑조(黑潮)'를 매월 발행하여 동교 학우들에게 비밀리에 배포하는 등 동지 규합과 민족정신 고취에 힘을 기울였다.

928년 6월 18일 부산 제2상업학교 일본인 교사의 반민족적인 교육을 계기로 흑조회 간부들과 함께 일본인 교사의 배척과 한국어 잡지와 신문의 구입 등을 조건으로 동래보고의 동맹휴교를 단행하는 등 반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8년 11월 29일 일본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에 다녀오던 양정욱이 귀국연락선에서 일경에 의해 붙잡혀 조직의 전모가 노출되었다. 이에 동래경찰서 사법주임 노덕술(盧德述)이 수사를 직접 담당하여 어소운, 유진흥, 김규진, 양정식, 윤호권, 윤태운 등을 대거 체포하여 고문을 가했고, 이로 인해 김규진과 유진흥이 사망했다.[1] 그 후 재판에 회부된 어소운은 1929년 9월 24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77년 10월 28일 부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어소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2017년 5월 6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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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