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준

한 때 세계 1, 2위를 다투던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인 아이리버의 창업자이다.
영남대학교 응용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대에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주로 수출 업무를 맡다가 퇴사 후 1999년에 아이리버(구 레인콤)를 창립한다. 아이리버는 창업 후 MP3플레이어 분야에서 불과 5년 만에 국내에서는 독보적 1위, 세계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1세대 벤처기업 중의 신화적 존재로 주목받았다.[1] 이 영향으로 200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벤처 기업가이자 신흥 갑부[2] 중 하나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 애플이 아이팟으로 공세를 확장시켜갈 때 아이리버가 가장 강력한 맞수로 부각되어 '한국의 스티브 잡스'[3]라는 호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아이리버가 애플에게 무너지면서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져 재산이 줄었으며 회사 내 권력다툼 심화, 각종 신제품의 흥행 및 출시 실패, 내부 인사의 충돌로 인한 업무 효율 저하, 계속된 실적 부진 등 여러 가지 회사 내외의 복합적인 이유로 2008년 아이리버에서 발을 빼고 민트패스라는 회사를 창립, 민트패드라는 기기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민트패스 역시 민트패드의 판매량 저조, 양덕준 사장의 뇌출혈 등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겹쳐 2010년 8월 부도가 난다. 민트패스가 2009년 상반기부터 자금난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1년 넘게 운영이 됐던 이유는 양덕준 사장이 보유하고 있던 아이리버 주식을 시나브로 팔아서 회사 운영자금으로 댔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0년 이후의 행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9년 4월에 발생한 뇌출혈에 대한 요양 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가[편집 | 원본 편집]

CEO로써 그의 과거 측근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돈에 연연하지 않고 청렴하다. 회사를 많이 걱정하고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겨 신뢰를 두텁게 쌓았으며 스티브 잡스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창의성을 지니고 있지만 인사 관리 능력[4]은 매우 부족하다.' 정도인 듯.

참고한 자료[편집 | 원본 편집]

  • 이기형, 거인과 싸우는 법

각주

  1. 한 때 코원과 삼성이 서로가 MP3업계 '2등'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있기도 했다.
  2. 2004년에 양덕준 사장의 주식 평가액은 1469억원으로, 재계 순위에서 포털 기업 다음의 이재용 대표보다 한 단계 더 높았다.[1]
  3. 회사 내부 갈등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아이리버 몰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를 제공했기는 했지만, 창의력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아이리버의 전성기 시절 제품인 '프리즘', '크래프트', '클릭스' 시리즈,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작품인 G10, 민트패드, 그리고 현재 아이리버를 먹여살리고 있는 AK시리즈 등, 굵직굵직한 제품의 컨셉은 모두 양덕준 사장이 형성했다.
  4. 아이리버가 어려워진 요인 중 하나로 내부 인원 간 분열이 심해서 그랬다는 평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