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버스

창원시 최대 시내버스 운수업체였던 버스 회사.

리즈 시절[편집 | 원본 편집]

휴전 이후 마산여객주식회사가 설립되어 1961년 기준 총 11대로 시내버스 운행을 하였다. 이후 시외버스 운수업체인 백영(白映)여객주식회사에 운영권을 이양하였고, 1966년 6월 황대연을 대표로 한 시민버스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그 운영권을 다시 이양받아, 이후 20여대로 버스를 증차하여 마산시 시내버스의 운영권을 독점하였다. 이후 여러 경쟁사가 등장하였으나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어느덧 차량 대수가 100대를 넘으며 마창진 버스 회사중 가장 큰 규모가 되는 데...

기울어지는 달[편집 | 원본 편집]

영원한 리즈는 없는 것. 시내버스 운영의 고질적인 문제인 적자가 쌓이고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마산시에서도 여러번 손을 썼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노조 측에서는 마산시 곳곳에 회사 대표의 비리를 고발하는 글을 붙혔으나 반응은 시원찮았다.

결국 눈덩이로 불어나는 적자와 빚을 감당할 수 없게된 마산시와 회사는 분할 매각[1]을 추진했고, 천년미소로 잘 알려진 금아버스그룹이 인수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와중에 노조가 반발하여 하루동안 시민버스 소속 차량의 운행이 중단되었고, 마창 지역의 대중교통은 충격과 공포 상태로 몰렸다. 특히 마산시 지선노선은 준공영제 운영중이었기 때문에 일부 노선의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는 데, 학생들의 주요 노선인 254번도 운행을 중단하였고, 이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분리매각된 부분이 마인버스로 떨어져 나가고 이전의 위력은 잃게 된다. 이걸로 모든 게 해결되는 듯 싶었으나...

몰락[편집 | 원본 편집]

2010년 3월 16일, 시민버스는 부도 처리되고, 이에 반발한 노조는 다음날부터 무기한 운행 거부에 돌입한다. 노사간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노조측에서 사측의 공금횡령 혐의를 제기하면서 사태는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게 된다. 결국 노동부 창원지청은 임금 24억여원의 체불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시민버스의 대표에 대해 2010년 4월 29일자로 영장이 신청되고, 다음날인 4월 30일에 전격 구속하였다. 이후 회생절차가 개시되었으나, 빚과 적자가 엄청나다는 이유로 무산되고,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뒷 이야기[편집 | 원본 편집]

시민버스의 부도로 인해 주인을 잃은 시내버스 영업 면허 50개는, 통합 창원시 행정부의 후속 조치에 따라 심사를 거쳐서 대운교통에 배부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논쟁의 불씨를 가져왔다. 특히 구. 마산시 업체들과 시민버스 노조측이 크게 반발했다. 주요 이유는

  • 신규업체가 아닌 기존업체에 면허가 배부되었다
  • 관련 설명회때 대운교통의 대표 지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 의창구, 성산구에 차고지를 둔 업체들에게 가산점을 주었다. 이건 겉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보인다. 창원을 연고지로 한 업체가 창원시 내에서 운행하는 것이니. 하지만, 정확히 하면 구.창원을 연고지로 하는 업체가 통합창원시내에서 운행하는 것이고, 특히 시민버스는 구.마산시를 연고지로 하는 업체였기 때문에 마산 지역 지선 노선을 대거 운행중이었다. 이런 노선에 창원 지역의 차량을 투입하면 시간과 기름만 버릴 뿐이다.
  • 대운교통은 면허비 25억원을 지급할 수 있는 재정이 아니다

각주

  1. 회사의 절반을 넘기기로 했다. 차량도 절반, 직원도 절반, 빚도 절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