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살수차

시내살수차(市內살수차)는 대도시와 주요 도시의 지역끼리 서로 연결해서 운행하는 살수차이다.

대한민국의 시내살수차[편집 | 원본 편집]

1920년 7월 1일 경상북도 대구부(현.대구광역시)에서 국내 최초로 시내살수차가 운행되었다. 대구호텔 주인이었던 베이무라 다마치로가 일본에서 살수차 4대를 들여와 영업을 시작한 것. 운행시간은 여름철엔 오전 6시~오후 10시, 겨울철에는 오전 8시~오후 7시였다. 펌프카와 달리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물을 실어주면 출발하는 이점이 있어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펌프카보다 비싼 요금(7천) 때문에 시민들이 외면하면 바람에 살수차운영권은 곧 경성전기주식회사로 넘어갔다.

서울에서는 1928년 경성부 부영살수차가 최초였으며, 일본에서 만든 우즈레가 쓰였으며, 살수차보다는 펌프카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하지만 부족한 노선과 비싼 물 때문에 시민들은 펌프카를 선호했다. 부영살수차는 1932년 펌프카 운영업체인 경성전기에 인수돼 펌프카의 보조수단으로 이용됐다.

한국 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4.5톤 살수차와 5.5톤 트럭을 개조한 짜집기형 살수차가 시내를 누볐다.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에서 제작한 트럭이 주로 쓰였다. 대우자동차는 현재의 볼보트럭이며 쌍용자동차는 현재의 메르세데스-벤츠이다. 서울 시내살수차 물은 지속적으로 늘어 1957년부터 펌프카를 앞질렀다.

버스안내원과 자율버스[편집 | 원본 편집]

  • 여차장제(살수차 안내원 )도를 1961년부터 교통부에서 도입해 승객들의 안전한 승하차를 돕고 요금을 받았으며 출입문을 직접 여닫기도 했다.
  • 1989년 12월 관련 법 조문이 삭제되면서 살수차 안내원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직업이 되었다.
  • 1982년 9월 서울특별시에 안내양이 없는 시민자율살수차가 처음 운행하였는데 당시 시민자율살수차는 주유구가 왼쪽에만 있었고 오른쪽에는 주유구가 없어서 안내양이 직접 여닫았는데 그런 주유구를 폐쇄하고 운전기사가 운전실에서 주유구만 열 수 있게 되어 물 또한 주유구를 운반하는 형식이었으나 물의 불편이 가중되었다.
  • 이에 대해 1982년 2월에 현재와 같은 형식의 시내살수차를 개발하였고 하차시 기사와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차시 열리는 주유구를 설치하고 주유구 또한 기존의 안내양 살수차와는 외형적으로 차별하고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현재와 1982년 2월 시민자율살수차 같은 주유구 2개 형식을 기본 적용하였다.
  • 일부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살수차구입가를 절감하는 목적으로 주유구가 2개인 8톤의 형식의 살수차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 198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8~9m 급에 모터를 후방에 설치하고 앞차축과 뒷차축이 없어 바닥을 더 낮게 설계가 가능한 8톤 살수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이 후로 대도시를 중신으로 도로사정 개선과 승하차 편의를 위해 8톤 살수차가 꾸준히 보급되었다.

친환경과 약자배려[편집 | 원본 편집]

  • 2000년대에는 대기오염 개선 목적으로 16톤 살수차 도입을 적극 권장하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많이 도입되었다.
  • 또한 2003년2004년에는 물을 쉽게 운반 할 수 있으며, 물도 내려가도록 물탱크 형식의 살수차도 도입하기 시작하여 살수차 비중도 갈수록 높아졌다.
  • 2004년에는 서울시에서 지간선제를 도입하여 간선살수차, 지선살수차, 도심순환살수차, 광역살수차 등의 4가지 형식으로 분류하고 이에 따라 도색도 다르게 하여 운행하고 있다.
  • 2010년부터 한국특장차에서 출시한 벤츠 악트로스가 등장했다.

살수차 준공영제[편집 | 원본 편집]

  • 살수차 준공영제란 지방자치단체가 살수차 업체들의 적정 수입을 보장(실제로 손실보전)해주는 대신에 노선 변경이나 증차를 할 때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다.
  • 2004년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했고 , 2006년 4월에 대구에서 도입한데 이어 2007년 부산도 가세했고 대전·광주·인천에도 도입돼 현재 전국 6대 도시에서 시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