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모집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대학입학의 모집시기중 하나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1조에서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및 추가모집으로 나누어 시행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이 때 정시모집 시기 이전에 아무때나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모집이라고 한다. 물론 법적으로 아무때나 시행할 수 있다로 되어 있지만 한 가지 전제조건이 대학 마음대로 시기를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들의 협의체(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 해당 시기를 정해서 그 정해진 시기를 따르게 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특수대학이나 폴리텍, 사이버대학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임의로 정해둔 시기에 모집을 할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은 일반대학(교육대와 산업대를 포함)이나 전문대학의 경우 수시모집에 합격할 경우 이후 모집을 하는 정시모집이나 추가모집에는 원서 자체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변천사[편집 | 원본 편집]

본래 수시모집이 처음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이 당시에는 기껏해야 1개 모집단위당 1~2명을 뽑는 게 전부였으며, 대체로 특별전형이나 학교장 추천의 형태로 시행되었으며, 전체 입시에서 그 영향력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수시모집이 점차 대세가 되기 시작한 것은 수시모집의 시기가 1학기와 2학기로 분할되면서 수시의 영향력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물론 수시 1학기 모집은 대세라고 하기에는 전체 선발인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안쪽이었지만, 문제는 1학기 수능 이전에 합격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리가.... 결국 교실 붕괴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어서 수시1학기는 2006년에 주요대학들을 중심으로 폐지단계에 들어가서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고 수시2학기가 별다른 변화가 없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일단 원서접수 시기 자체를 초기에는 제한을 두지 않아서(그냥 수시 전체 기간을 9월부터 12월 초까지로 잡아놓기만 했었다) 대학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수시의 차수를 나누어서 시행을 하였었으며[1] 등록자 결원이 발생할 경우 충원합격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어떤 대학은 충원합격 발표를 하고 학생들을 납치하는 등의 혼란이 생겼었던 것. 결국 수시모집의 충원합격에 대해서는 2012학년도 입시부터 공식적으로 허용을 하였었으나, 수시 충원합격자의 정시모집추가모집 지원 불가능 기준은 2012학년도 입시에서는 미등록인 경우에는 불합격으로 처리하였지만 바로 다음해인 2013학년도 입시 부터는 그냥 합격자 명단에 들어가기만 하면 정시모집추가모집에 지원이 불가능하게 바뀌었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수시2차모집의 경우는 2014학년도부터 완전히 폐지되어, 이때부터는 수시모집의 원서접수 기간이 9월의 정해진 기간 중에 4일 이상을 받도록 바뀌게 되었다.

수시 원서접수 6회 제한[편집 | 원본 편집]

수시모집에서 또 다른 주요 변경사항 중 하나는 2013학년도부터는 일반 4년제대학(산업대와 전문대 제외)의 수시모집에 지원할 경우에는 원서접수를 총 6개까지 할 수 있도록 바뀐 점이다. 그 전에는 원서질을 하는데 제한이 없어서 사실상 10개 이상 원서질을 하는 것도 가능하였으며, 2012학년도 수시에서 원서질을 가장 많이 한 학생은 142개의 원서를 지원하기도 하였었다. 이러면 저소득층 전형에 지원한 것이 아니라면 원서비만....ㄷㄷㄷ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 6회지원 제한조치에 대해서 딱히 불만은 없었는데(대다수의 수험생들은 평균 원서 내는 개수가 3~5개 사이였다) 가장 불만을 많이 가졌던 집단이 하나 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 어떤 집단이었냐 하면 바로 재외국민전형에 지원하는 대상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는데, 재외국민전형[2]도 수시모집기간에 모집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서 수시 6회 제한에 꼼짝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만으로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당시 현실을 보면 이들은 배치표를 보고 자신들이 갈만한 학교에 원서를 다 집어넣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으며 실제 재외국민의 원서지원 숫자는 일반학생들의 평균인 4~5회를 아득히 뛰어넘어, 최소 10회 내지는 15회 정도의 원서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6회 지원 제한이라는 숫자 자체도 이들 집단이 평균을 왜곡시켜버리는 바람에 발생한 결과물인 셈이다. 카더라에 의하면 당시 대교협 전화가 불이 난 것은 애교고, 관계자들이 평생 들을 욕의 대부분을 다 들은 것 같았다고 한다...

각주

  1. 대체로 수시1차를 9월, 수시2차를 11월 수능 다음날부터 모집하긴 했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수시3차나 수시4차까지 가는 대학도 있었다
  2. 재외국민전형에 지원자격이 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