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순 (1885년)

徐秉舜(또는 徐秉淳).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5년 1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19년 4월 1일 갈전면 아우내 장날을 기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유관순, 홍일선(洪鎰善), 김교선, 한동규(韓東奎), 이순구(李旬求), 조인원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3천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일본 헌병대는 그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천안에서 소집된 일본 헌병대와 수비대까지 가세하여 총칼로 시위대를 공격했다. 그 결과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등 19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때 서병순도 총상을 입은 채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9일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청에서 징역 1년, 벌금 20원, 노역장 유치 20일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했지만 1919년 6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었다.[2] 옥중에서 총상 후유증으로 인해 인사불성이 되자 가출옥하였으나, 1920년 8월 11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서병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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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