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루치/발루치의 과거

신을 찾는 남자[편집 | 원본 편집]

발루치는 대대로 연금술을 연구하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여동생, 로췌는 근육에 힘이 빠지는 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와 오빠의 옷자락을 붙잡고 다니는 게 고작이었고, 발루치는 그런 여동생을 위해 많은 일을 대신 해주곤 했다.

11세가 되던 해, 발루치는 가업인 연금술을 배우기를 포기하려 했다. 의사가 되어 여동생의 병을 치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히 대스승 쉬타카두르를 만나 대화를 나눈 후, 다시 마음을 바꿔 연금술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수 년 후, 그는 쉬타카두르의 제자가 되었다.

비록 의술을 배우기를 포기했지만, 발루치가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병은 차도가 없었고, 로췌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병은 인력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렇게 발루치는 신을 원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쉬타카두르가 저택에 찾아왔다.

신이 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스승님. 물론 전지전능한 종류의 신을 칭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등대 같은 존재의 신을 말하는 거죠.

스승님은 운명을 계산하는 법을 아시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좀더 나은 세상으로요. 스승님의 기원, 능력... 일반인들이 스승님을 알게 된다면, 신이라는 단어 외에는 칭할 다른 이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금술사나 연단술사들만이 아닌 모든 인간을 이끌어주는 존재가 되시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 이 세상에 몸뚱이를 가진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사람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춰줄 등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좋지 않습니까?
글쎄? 그럼 네가 말하는 신은 무조건 옳은 말만 하고, 옳은 방항만을 제시해야 하겠군. 그렇지? 네가 말하는 신이 만일 옳은 것, 진정한 것, 의미가 있는 말만 해야 한다면, 벙어리로 있어야 할 거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니까. 언어란 건 완전한 의미를 전달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의사전달 수단이란다. 그 외에도 눈, 귀, 몸뚱이를 가진 신은 똑같은 방식으로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오히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힘을 잃게 되겠지.

등대와 같은 존재의 가르침이라면, 선현이 남긴 책과 글들만으로 충분하겠지. 세상을 바꾸거나 신을 세우는 거창한 일을 할 필요는 없어. 불완전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위해 남긴 글들이며, 오랜 세월 걸러져 온 것이니까.

무언가를 듣고 깨닫기 위해선 가르침을 주는 자보다 가르침을 얻으려는 쪽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말도 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그저 언어의 나열일 뿐이야. 양치기가 자신의 양떼를 먹일 들판을 찾듯이, 길이란 건 찾으려는 자만이 찾을 수 있고 찾은 자만이 의미를 가진다.. 네가 길을 찾을 준비가 된다면 신이 아닌 아이들의 말에서도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것이건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상징을 해석하는 힘을 기르는 건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다.
스승님은 강한 분이니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으시겠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 가끔 제 소원을 이뤄줄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바라는 건 이젠 기적으로밖에 이룰 수 없으니까요.

처음에는 웃으면서 노력하면 길이 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은 사라져가고, 지금은 그저 손을 잡아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거짓말밖에 할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신이 이런 벌을 주는 건지 원망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이젠 기적을 바라는 자신을 한심해하면서도 두 손을 잡고 신이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스승님, 저희를 위해 신이 되어 주실 순 없는 겁니까? 신이 되셔서... 저희에게.... 기적을 내려주실 순 없겠습니까?
발루치, 네 동생에 대한 걱정은 알고 있다. 나도 최대한 도움을 주겠지만, 섭리를 깨는 물건을 사용할 순 없다.

섭리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균형과 같다. 인간이 함부로 건드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몰라. 네가 그걸 바라는 걸지는 모르지만 나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긴 지식을 알려주는 스승이 되어줄 순 있겠지.

사람들은 자주 신을 거론하지. 행운이나 불행, 우연. 쉽게 신의 뜻이란 단어를 써가며,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에 끼워 맞추려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신의 뜻과는 관련이 없다. 그저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원인과 결과가 있을 뿐이지. 그렇기에 우리는 운명을 계산하는 법을 배우는 거다. 신의 기적이란 한 마디 말보단, 인간으로서 그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고 섭리를 이해하고 길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 선지자나 기적 따윈 없고 모든 게 신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건,
신이 없다는 말과 같은 건가요?
아니. 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신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믿음을 팔고 기적을 대가로 바랄 순 없다는 것이다.

지금 네게 신이 어떤 존재인지 대답해줄 순 없다. 그 대답은 우리의 죽음 너머에 있으니까. 확실한 것은 현실에서 신이 누군가를 미워해서 벌을 내리고, 사랑해서 행운을 내리는 일 따윈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찍히기 전까진 삶은 오롯이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감히 제멋대로 신의 모습이나 기적을 만들고 그곳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발루치는 쉬타카두르의 말을 받아들일 수도, 누이동생이 죽어가는 현실을 견딜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깨진 심장, 부서진 마음[편집 | 원본 편집]

발루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로췌가 크게 다쳤다는 것이다. 다행히 상처는 완치됐지만, 다칠 때의 충격으로 그녀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동생의 죽음을 원치 않았던 발루치는, LC를 그녀의 몸에 심어 호문쿨루스로 되살렸다. 부모님은 그를 크게 꾸짖었다. 발루치와 동생은 가문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부모님께 버림받았다.[1] 또한 로췌는 LC의 힘에 의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끊임없이 겪다가, 이를 견디다 못해 발루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했다. 동생을 위해 금기까지 거스르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구해냈다고 여겼던 동생은 자신 때문에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발루치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심장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깨져 버렸다.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면서...

뒤틀린 사랑[편집 | 원본 편집]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는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00년에 한번 태어날 천재. 쉬타카두르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 발루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모나지 않은 성품은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했다. 발루치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는 내심 그런 자신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여인을 만났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그녀는 발루치보다 더 완벽했고, 결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아쉬타. 발루치는 호기심에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그녀는 다른 이의 접근을 거절했다. 발루치는 점점 그녀가 신경 쓰였다.

발루치는 연금술을 배우면서 ‘사람마다 가슴에 담긴 감정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발루치가 살펴본 자신의 마음은 흙탕물이 담긴 유리잔과 같았다. 가만히 두면 진흙이 가라앉아 맑은 물 밑으로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아쉬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유리잔이 흔들려, 바닥의 진흙이 피어올라 유리잔을 가득 채웠다. 아쉬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막힌 듯 답답한데도,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이윽고 발루치는 아쉬타를 떠올릴 때마다, 그녀와 자신을 비교할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비틀리고 추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루치는 자신이 더 뒤틀리기 전에 스스로를 기만하기로 했다. ‘나는 아쉬타를 사랑한다.’고...

각주

  1. 사실 발루치의 부모님들은 쉬타카두르를 찾아간 것이었다. 발루치의 죄를 자신들이 대신 받으려 했던 것이다. 발루치는 이를 쉬타카두르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으나, 이 때는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 문서의 전체 혹은 일부는 발루치 문서의 408408판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