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수

朴學洙.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7년 5월 5일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봉일천리에서 출생했다. 1930년 3월 경성 어의동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했고, 1932년 3월 경성공립직업학교를 졸업했따. 이후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7년 파주군 조리면 방호단, 경방단의 경보반장을 역임했으나, 1938년 3월 경기도 순사배명교습 중 서약 위반으로 징계 면직되었다. 1940년 3월 31일 조리면 죽원리에 있는 기독교 장로회 예배당에서 일본대학 예과 학생 이송현(李松賢)과 농민 송병기(宋秉基)에게 지원병이 되어 훈련소에 입소하면 엄중한 훈련을 받고 바로 중국 전선에 출동하게 되며, 일단 출정하면 필시 전사할 것이며 이는 지원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으로서도 불행이라고 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1940년 초 체포되었고, 1940년 4월 11일 파주경찰서장은 경성지방법원에 <조선 특별지원병 훈련소 생도 모집에 대한조언비어죄 검거에 관한 건>을 보고했다.[1] 1940년 6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금고 6개월을 선고받았다. 석방 후 3년 만에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를 독살하려 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재구속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다 1945년 8월 13일에 풀려났지만, 한달만인 1945년 9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박학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2006년 11월 17일 박학수의 후손인 박화솔 씨에게 대통령표창을 전수했다.[2] 2009년 10월 27일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