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근 (1874년)

朴致根.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4년생이며,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상서면 봉오리에 소재한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구장 이창선(李昌善)을 비롯한 박용구(朴容九),김광필(金光弼)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추진할 것을 논의하면서 거사일을 장날인 28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각자 분담하여 봉오리, 다목리(多木里),파포리(巴浦里)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3월 28일 이른 아침, 박치근은 이창선을 비롯한 주민 30여 명과 함께 봉오리와 파포리 부근 산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동면 면사무소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이 행진을 시작으로 상서면 만세운동은 약 2,000명이 참여할 만큼 확산되었으나, 일본 시위대의 급습으로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사람이 부상당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태형 90도를 받았다.[1]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치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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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