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신

朴昌信.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5년 11월 15일 평안북도 창성군 동창면 대유리에서 출생했고, 1919년 무렵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기로리에 거주했다. 1919년 3월 충남 천안군에서 금광회사에 재직하던 중 안은, 한근수 등 동료 수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후 1919년 3월 28일 오전 6시 30분경 갱구에서 갱부의 교대시간에 갱부들을 선동하여 약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들은 입장시장을 향해 행진한 뒤 양대리까지 전진하였으나 헌병의 저지로 해산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했지만 1919년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2] 이에 불복하여 상고했으나 1919년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ref>독립운동관련 판결문,?ref>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박창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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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