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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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五鳳.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4년 4월 7일 전라남도 광주부 금남동 5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3년 광주일보 및 광주 소재 죽구인쇄소(竹口印刷所)에 고용되어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 집행위원과 광주청년회(光州靑年會) 및 인쇄공조합원(印刷工組合員)을 역임했다. 그러던 1929년 11월 초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장재성, 장석천, 나승규(羅承奎) 등과 회합을 갖고 한국인 학생들이 일제 경찰에 붙잡힌 것에 항거하여 재봉기할 것을 결의했다.

이후 그는 격문을 인쇄하여 살포하고 동년 12월 2차 광주학생시위를 단행케 하였으며, 이 운동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 일경에게 붙잡혔다. 이후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다.[1] 이에 불복해 공소하였으나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2] 출옥 후 광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9년 4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오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 공훈록[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