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진 (1874년)

朴錫震.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4년 4월 29일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초 서울 천도교 본사의 연락을 받고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해 3월 10일 리원군 리원읍 장날에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였으며, 김준태(金濬泰) 등과 함께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을 설치하여 군내 각 지방에 독립선언서를 살포했다. 또한 3월 20일에 다시 시위를 벌이려 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6월 2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1] 이에 불복하여 고등법원에 상고하면서, 상고취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는 불온의 언론과 난폭한 행동은 하지 않았고 민족자결의 취지로서 인(仁), 의(義), 성(誠)의 3자에 따라 정의인도를 행한 것이니 1, 2심의 판결을 불복하여 상고한다. 고등법원에서 무죄의 판결이 있을 것을 구한다.

그러나 1919년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2] 이후 리원군에서 포교 활동에 전념하다가 1927년 2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박석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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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