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 (1906년)

朴東熙. 이명은 박기훈(朴琪熏).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6년 3월 13일 전라남도 나주군 나주면 남문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9년 전남 나주청년동맹(羅州靑年同盟) 지부장 겸 신간회(新幹會) 나주지회원(羅州支會員)를 역임했다. 이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여 많은 학생들이 검거되자, 그는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우선 신간회 회원 박공근 등과 함께 나주농업보습학교(羅州農業補習學校) 및 나주보통학교(羅州普通學校) 학생들을 동원하여 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같은 해 11월 27일 나주장날 거사하기로 합의하였다.

박동근 등은 같은 해 11월 26일 밤, '대중(大衆)이여! 학생제군(學生諸君)이여! 아느냐! 우리들이 여하(如何)한 탄압(彈壓)과 폭압(暴壓)을 받고 있는가를'이라고 쓴 선전문 약 2,000부를 인쇄한 후 학생들로 하여금 다음 날 새벽에 일반인들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거사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도록 하였다. 이윽고 거사 당일인 11월 27일 정오경, 나주 장터에는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박동희의 주도로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한편 시내 전역을 돌며 행진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박동희는 1930년 3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1] 이후 나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1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박동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 공훈록[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