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위

리셴위
李賢玉
인물 정보
다른이름 이현옥, 리현옥
출생 1965년 3월 26일 (59세)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국적 중국(조선족)
학력 베이징대학 무선전자물리학과 학사
베이징대학 대학원 무선전자물리학과 석사
직업 중국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 소장
정당 중국공산당
신체 155~160cm
가족 남편, 1남
활동기간 1990년 중국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 통신병과 입대
2015년 소장 진급
소속사 중국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
중국공정원

중국의 군인. 중국군의 정보시스템 현대화에 기여하여, 이 공로로 조선족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장군(소장)이 되었다. 중국군에는 500여명의 장성이 있지만 여성 장성은 10여명에 불과하며, 그중에서도 소수민족인 리셴위는 매우 희귀한 인재이다.

출생과 성장[편집 | 원본 편집]

리셴위는 1965년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목단강시(牧丹江市)의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엔지니어, 어머니는 회계사였다.

리셴위는 어려서부터 명석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꼬마 대학생’으로 불렸다. 학창 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는 1982년 흑룡강성 대학입시에서 이과 수석을 차지했고, 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베이징대학 무선전자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이렇게 그녀는 굉장한 우등생이었지만,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에 와보니 수재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녀는 “대학에 와서야 비로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베이징대학에서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학부를 졸업한 그녀는 동 대학원에 수석으로 진학했고, 1990년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제2포병부대 입대[편집 | 원본 편집]

베이징대학 대학원생인 리셴위의 앞에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진로들이 놓여있었다. 일명 ‘중국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중관촌(中關村)에서 일하고 있던 선배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받았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친척들은 해외에 유학하거나 취업할 것을 권했다.

그러던 중 리셴위는 지도교수를 따라 중국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의 간부를 만났는데, 그는 리셴위에게 “당신처럼 젊고 우수한 인재가 우리 부대에서 일하면 훨씬 더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러 진로들을 고민하던 리셴위는 결국 ‘군대’를 선택했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2포병부대에 입대했다. 그녀는 통신병으로 시작하여 군에서 차례차례 경력을 쌓아갔다.

중국군 정보시스템 현대화에 기여[편집 | 원본 편집]

리셴위가 군에 입대한 이듬해인 1991년에 걸프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 전쟁에서는 ‘정보기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군의 정보화 수준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었다. 1992년부터 제2포병부대는 작전지휘자동화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 연구에 리셴위도 참가하여 활약했다.

마침내 1995년, 리셴위와 동료들은 미사일 발사훈련장의 모든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또한 리셴위는 6년여의 연구 끝에 제2포병부대의 지휘ㆍ정보 체계를 일체화한 시스템인 ‘중국검망(中國劍網)’을 완성시켜 포상을 받았고, 중국 정부로부터 ‘우수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되어 연구 보조금을 받고 있다.

한편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도 ‘정보화’의 중요성은 재차 확인되었다. 이에 제2포병부대는 리셴위에게 기동지휘시스템의 연구개발 임무를 맡겼고, 그녀가 2006년 완성한 시스템은 군사훈련에서 우수한 성과를 냈다. 이 시스템은 국가과학기술진보 2등상을 받았다.

장성 진급[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중국군 장성 승진 인사에서, 대교(大校)[1]였던 리셴위는 소장으로 승진했다. 중국군에 10여명밖에 없는 ‘여장군’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다만 실제 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없는 기술장교이다.) 또한 그녀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2]에도 조선족 대표로 참가하고 있다.

각주

  1. 대령과 준장 사이 계급
  2. 중국의 국회. 주류민족인 한족뿐 아니라 소수민족 대표들도 참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