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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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鎭.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4년 9월 15일 경상북도 영천군 진혈면 수도동(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살 때부터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이후에는 농사에 종사했다. 그러던 중 안동청년동맹 와룡지부와 신간회 안동지회에 가입하였다. 이후 1931년 7월 '안동콤그룹'에 가입하였는데 안동콤그룹은 안동지역 청년운동과 궤멸된 안동지역의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목적으로 1931년 3월 안동의 좌익운동의 총지도기관으로 조선을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시키고 조선에서 사회주의 사회실현을 목적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였다.

안동콤그룹은 내부에 적색노조·부녀부·임하그룹·예안노농행동대·영주적농재건투쟁위원회·영주 적색농민조합·봉화 적농재건위원회를 기본으로 하는 하부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안동콤그룹의 영주적농재건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그후 1932년 안상윤·김명진(金命鎭)과 함께 궤멸위기에 처한 영주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위해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적색부 위원을 맡았다. 그는 독서회 활동, 러시아혁명기념일 및 메이데이기념일투쟁 등을 전개하다가 1932년 12월 적색농민조합(赤色農民組合)을 창립하였다. 그는 적색농민조합에서 정기적으로 농민강좌를 개최하는 한편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1934년 7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2년 1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김종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