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생년 미상)

김원식(金元植, 생년 미상~1908년 6월 26일)은 대한민국독립운동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출생년도와 출생지, 의병장으로 활동하기 이전 행적 등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그는 강원도 춘천 이북의 화천ㆍ양구ㆍ평강ㆍ김화ㆍ금성ㆍ회양ㆍ인제 등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화승총과 서양총으로 무장한 20여 명의 소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1908년 초여름에 강원도 북부에서 일제에 자진 투항하는 인사들이 속출하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강원도 북부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활용하여 주로 야간과 새벽에 기습전을 펼쳤다.

또한 그는 충청도 제천에서 거병하여 금강산까지 북상한 이강년과 합세하여 연합 군사 활동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의 부대는 수시로 이곳저곳에서 출몰하여 일본군 수비대에 피해를 입혔다. 이로 말미암아 김원식은 일본 제국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당시 김원식의 부대는 인근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고, 헌병주재소를 파괴하고, 전신선을 절단하고, 세금을 탈취하고, 일제의 군수물자를 빼앗고, 친일 관리와 부호를 처단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지배에 강력히 저항하였다.

1908년 6월 6일에 김원식 의병으로 추정되는 20여 명의 의병부대가 화승총과 서양총으로 무장하고 금강산 이북의 흡곡현에 돌입하였다. 이때 의병들은 주재소를 파괴하고, 일제의 공사 문서를 소각하고, 일어학교를 불태우고, 관리의복을 탈취하고, 한국인 순검 3인을 납치하여 다음날 회양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의병들은 도중에 친일순사 김응국ㆍ이응섭 2인을 총살하였다. 또한 의병들은 6월 10일 양구군 상동면에 나타나 일진회원 1명을 체포하여 산중에서 처형하고, 담배 행상을 가장한 한국인 밀정 1인을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그러나 1908년 6월 26일 강원도 금성군(현재 김화군) 과반리에서 일본군 금성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원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