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 (1876년)

김명준(金明俊 또는 金命俊, 1876년~1922년 3월)은 대한민국독립운동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6년생이며, 평안북도 강계군 공서면 회룡동 출신이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강계군 천도교 교훈을 맡았다. 1919년 3월 강계, 자성, 후창 3군과 중국 임강현의 천도 교무를 통할하는 천도교 대교구장인 이정화로부터 박인호의 독립운동비 모금 지시를 받들라는 지령을 받고, 강계대교구실 공선원 이병두와 자성 교구실 교구장 양재학과 함께 교도들로부터 독립운동비를 모금하는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후 열흘간 강계군 각지를 돌며 천도교 신자 허봉화, 김세훈, 김영순, 이득순, 조윤학, 인찬언 등에게 박인호의 뜻을 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0년 4월 30일 고등법원은 본건 관할재판소를 평양지방법원으로 지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1]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 1922년 4월 15일자 기사에 따르면, 김명준은 석방 후 1922년 3월 대한광복군총영의 천마별영 대원으로 가담한 뒤 평북 희천, 삭주, 구성 일대의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다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김명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