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1893년)

金明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3년 1월 20일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21년경 조병채, 윤상기, 이치국, 백남식, 윤태병 등이 찾아와서 조선 각지의 부자들로 하여금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받은 뒤 김좌진에게 보낼 계획을 설명하자, 노재철, 유기종, 이완백, 이창호, 김백순, 이상설 등과 함께 찬성했다. 이후 자신의 집에서 김영진의 지도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정부군정서인 및 재무서인 등을 조작하고, 이를 활용하여 자금 모집에 관한 문서, 수통을 작성하고 인장을 찍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기소되었고,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미결구류일수 10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 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1] 출옥 후 보령에서 여생을 보내다 1972년 1월 3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김명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