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함별황자총통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귀함별황자총통(龜艦別黃字銃筒)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장착된 별황자총통으로 알고 국보 제274호로 지정되었다가 이후 모조품임이 밝혀져 국보 해제가 된 가짜 문화재다. 별황자총통 발굴조작사건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사건의 전말[편집 | 원본 편집]

1992년 8월해군 이충무공해저유물발굴조사단이 칠천량 해전이 있었던 해역[1]에서 별황자총통을 인양하였다고 보고를 하게 된다. 해당 총통에는 "龜艦別黃字銃筒"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서 거북선의 실존을 밝히는 유물이라고 하여 인양된지 불과 3일만인 지난 1992년 8월21일 문화재위원회 제2분과 심의에서 국보지정을 의결하였으며, 같은해 9월4일 국보로 공식 지정된다.

여기까지만 봐서는 해군 스스로가 충무공의 유물을 발굴하고, 거북선의 존재를 밝히는 매우 뛰어난 성과로 볼 수 있겠으나, 실상은 당시 진급을 노리던 한 해군 황모 대령이 골동품상 신모씨에게서 모조품을 만들어 구매한 뒤 인양 두달 전인 6월에 해당 해역에 빠뜨려놓고 재인양을 한 것이다. 현대에 만든 모조품을 조선시대에 만든 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약품처리까지 하였었다고. 이것이 발각된 것은 검찰쪽에서 다른 사건으로 골동품상 신모씨를 붙잡아 조사하던 중 이 총통의 조작 가능성을 알아채고 수사를 한 결과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된 것.

실제로 총통에 새겨진 문구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당시에는 전투함을 뜻하는 한자어는 전선(戰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지, 싸움배 함(艦)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함이라는 글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근현대 해군에서 사용하는 한자였지,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수군은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글자다. 거북선을 뜻하는 한자도 당시 기록을 보면 귀함(龜艦)이 아니라 귀선(龜船)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며, 주력 전투함인 판옥선도 船을 사용하였다.

이외의 문제점들[편집 | 원본 편집]

  • 국보 지정 과정의 졸속 진행 : 사건의 전말을 보면 알겠지만, 인양한지 3일만에 국보로 지정하는 것을 의결해 버렸다. 아무리 확실하다고 하여도 문화재의 국보 지정은 신중을 기해 각종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불과 3일만에 이렇게 처리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실제로 인양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군이 해 왔고, 까라면 까는 식의 방식으로 의결이 진행되었음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 참가도 안한 문화재 위원이 인정한 것으로 드러나 : 당시 회의록에는 지정하자고 찬성한 사람중에 최영희 한림대학교 교수가 들어간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최영희 교수는 한국 고고학의 유물 감정에서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이 사람이 찬성했다는 서명만 있으면 무조건 진품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여부가 진품 감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문제는 당시 최교수는 이 회의장에 참석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에 출장을 가 있어서 물리적으로 회의 참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원격회의? 즉 참석도 안한 사람의 서명이나 문서를 위조까지 해 가면서 국보로 지정을 해 버렸던 것이다.(공, 사문서 위조는 덤이다.) 뒷 이야기지만 국보로 지정된지 1년이 지나서 실제로 최영희 교수가 이 총통을 봤을 때는 그 한자 문구 때문에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가짜임을 직감했었다고 한다.

지정해제[편집 | 원본 편집]

가짜 문화재로 밝혀진만큼 당연히 해당 모조품을 더 이상 국보로 둘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지정된지 4년만인 1996년 8월 30일 국보에서 지정 해제되게 된다. 이 때문에 국보 274호는 영구결번이 되어버린 것은 덤

비슷한 사건[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경상남도 통영군 한산면 문어포 서남쪽 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