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열

具鎬烈.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9년 9월 6일 전라북도(현재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3월 초 경성에서 3.1 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김용술(金用述)·임승환(任勝煥)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금산에서도 벌이기로 결의하고, '금산경고(錦山警告)'라는 격문을 짓는 한편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애용하여 150장을 인쇄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거사 당일인 3월 23일 오후 2시에 격문을 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이끌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1] 1940년 2월 27일 금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구호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4월 14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유해를 안장했다.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