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섭

姜旻燮.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1년 6월 16일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중 항일결사 독서회 중앙부에 가입했다. 이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여 많은 한인 학생들이 체포되자, 11월 12일 규탄 시위에 참가하였다. 또한 시위 지도자 장재성으로부터 조선민중이여 궐기하라", "학생대중이여 궐기하라"는 격문 200여 매를 전해 받고 거사 직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근처에 살포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30년 2월 26일 1심에서 금고형을 선고받고 공소했고,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출판법 위반 혐의로 금고 6개월을 선고받았다.[1] 또한 안녕질서방해문서 인쇄 배포 혐의로도 기소되었지만 1930년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2]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2년 6월 19일에 사망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강민섭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2005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