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세

姜明世.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6년 12월 20일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연해주로 이주하여 신한촌 첸파노스카야에 거주했다. 1920년 10월 10일 김장호과 찾아와서 "러시아 사람이 총 2,000자루를 팔겠다고 하니, 자네가 와서 통역을 해주면 1자루에 대해 1원의 수수료를 주겠다"고 하자 승낙했다. 이후 러시아인 드브이친과 협상할 때 통역을 맡았다. 그가 김종화에게 "총을 사서 어디로 보내느냐"고 묻자, 김종화는 "협피구에 독립 의병 5천 명이 있어 그곳으로 보낸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독립군의 의병에게 보내는 총인 것을 알면서 통역하였다.

1920년 10월 11일 총기를 운반하기 위해 최병직, 김종화, 김금수 등과 함께 운반하던 중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국내로 송환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1921년 5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1]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강명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