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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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중반 무렵, 흉노의 1차 분열이 시작된다. 이는 유목 국가들의 뿌리깊은 문제이기도 한데, 유목 국가의 후계 과정은 큰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정치 제도가 발전한 정주민 국가에서는 보통 뚜렷한 왕위세습 원칙(장자상속과 같은)에 따라 왕위가 상속된다. 이는 관료제 등의 발달로 왕이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어느 정도 국가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1세기 중반 무렵, 흉노의 1차 분열이 시작된다. 이는 유목 국가들의 뿌리깊은 문제이기도 한데, 유목 국가의 후계 과정은 큰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정치 제도가 발전한 정주민 국가에서는 보통 뚜렷한 왕위세습 원칙(장자상속과 같은)에 따라 왕위가 상속된다. 이는 관료제 등의 발달로 왕이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어느 정도 국가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목국가에서는 국가의 운영이 거의 전적으로 왕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선대 군주의 후손이나 형제 가운데 능력이 있는 사람 혹은 여론의 지지를 얻는 사람이 즉위하는 일이 많다. 바꿔 말하면, 여론이 모이지 않는다면 바로 국가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국가의 세력이 약화될 때 유목군주의 권위는 크게 흔들리는데, 이런 때 분열이 일어나기 쉬웠다. 기원전 60년경 흉노의 상황이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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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목국가에서는 국가의 운영이 거의 전적으로 왕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선대 군주의 후손이나 형제 가운데 능력이 있는 사람 혹은 여론의 지지를 얻는 사람이 즉위하는 일이 많다. 바꿔 말하면, 여론이 모이지 않는다면 바로 국가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국가의 세력이 약화될 때 유목군주의 권위는 크게 흔들리는데, 이런 때 분열이 일어나기 쉬웠다. 기원전 60년경 흉노의 상황이 이러하였다.  
  
 
기원전 1세기 중반, 흉노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무제의 대공세로 오르도스를 상실하고, 실크로드 도시국가들에 대한 영향력마저 일부 상실한 상태였다.
 
기원전 1세기 중반, 흉노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무제의 대공세로 오르도스를 상실하고, 실크로드 도시국가들에 대한 영향력마저 일부 상실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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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라 왕실이 스스로를 흉노와 연관지은 것은 7세기경에 등장한 위의 두 비문 뿐이다. 엄청난 시기적 괴리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에는 스스로의 가문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하여 중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제후와의 친연성을 날조하는 일이 흔했다.
 
또한 신라 왕실이 스스로를 흉노와 연관지은 것은 7세기경에 등장한 위의 두 비문 뿐이다. 엄청난 시기적 괴리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에는 스스로의 가문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하여 중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제후와의 친연성을 날조하는 일이 흔했다.
  
흉노의 일파가 신라로 이동해왔음을 증명할 고고학적 자료가 없고, 중요한 근거로 꼽혔던 [[돌무지덧널무덤]]과 쿠르간의 유사성이 부정되면서, 현대 학계에서는 신라 왕실에서 김일제를 스스로의 조상으로 내세운 것도 같은 목적으로 날조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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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일파가 신라로 이동해왔음을 증명할 고고학적 자료가 없고, 중요한 근거로 꼽혔던 [[돌무지덧널무덤]]과 쿠르간의 유사성이 부정되면서, 현대 학계에서는 신라 왕실에서 김일제를 스스로의 조상으로 내세운 것도 같은 목적으로 날조된 것이라고 본다.  
  
 
다만, 하나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경주김씨]] 족보에 기록된 [[김알지]] 설화와 문무왕비와 신문왕비에 기록된 성한왕의 설화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문의 대수를 타고 올라가면 성한왕은 김알지의 2세손인 "세한"과 동일한 인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게다가 한자를 통해 우리말을 구성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성한과 세한이 같은 발음이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만, 하나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경주김씨]] 족보에 기록된 [[김알지]] 설화와 문무왕비와 신문왕비에 기록된 성한왕의 설화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문의 대수를 타고 올라가면 성한왕은 김알지의 2세손인 "세한"과 동일한 인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게다가 한자를 통해 우리말을 구성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성한과 세한이 같은 발음이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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