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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구간 중 제일 먼저 착공된 [[계룡역|두계]]에서 [[개태사역|광석]] 구간의 복선공사는 [[1968년]] 1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1969년]] 6월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이후 잔여구간의 공사도 착수하여 [[1978년]] [[3월 30일]]에 대전~이리 구간 전부가 개통을 보게 되었다<ref> 철도청(1999). "한국철도100년사.". pp.604</ref>.그러나 개통도 얼마 되지 않은 [[1979년]] [[1월 12일]] [[가수원역|가수원]]~[[흑석리역|흑석리]] 사이의 괴곡터널이 붕괴하여 구 선로를 복원하여 한동안 운행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ref>"대덕서 260m 터널 무너져 호남선 불통." 경향신문, 1979년 1월 12일 보도.</ref> | 1차 구간 중 제일 먼저 착공된 [[계룡역|두계]]에서 [[개태사역|광석]] 구간의 복선공사는 [[1968년]] 1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1969년]] 6월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이후 잔여구간의 공사도 착수하여 [[1978년]] [[3월 30일]]에 대전~이리 구간 전부가 개통을 보게 되었다<ref> 철도청(1999). "한국철도100년사.". pp.604</ref>.그러나 개통도 얼마 되지 않은 [[1979년]] [[1월 12일]] [[가수원역|가수원]]~[[흑석리역|흑석리]] 사이의 괴곡터널이 붕괴하여 구 선로를 복원하여 한동안 운행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ref>"대덕서 260m 터널 무너져 호남선 불통." 경향신문, 1979년 1월 12일 보도.</ref> | ||
이후 2단계 구간은 익산에서 [[광주송정역|송정리]]간으로 변경하여 [[1981년]] [[2월 4일]]에 착공하여 [[1988년]] [[9월 6일]]에 완공하였다. 중간에 [[정읍역|정주]]까지 [[1985년]] [[11월 15일]]에, 장성까지는 [[1987년 | 이후 2단계 구간은 익산에서 [[광주송정역|송정리]]간으로 변경하여 [[1981년]] [[2월 4일]]에 착공하여 [[1988년]] [[9월 6일]]에 완공하였다. 중간에 [[정읍역|정주]]까지 [[1985년]] [[11월 15일]]에, 장성까지는 [[1987년] [[12월 4일]]에 도중 개통하여 복선 운행을 개시하기도 하였다.<ref>철도청(1999). 상게서. pp. 604.</ref> 이로서 마지막 남은 송정리에서 목포간이 남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구간의 복선화는 상당히 지연되었는데, [[1987년]]도 대통령 공약사업이었으나 정작 공사의 착수는 타당성조사 및 각 구간별 실시설계로 인해 [[1995년]] 9월에서야 착공에 이르게 되었으며<ref>철도청(1999). 상게서. pp. 956.</ref>, 최종적으로 전구간의 복선화는 [[2001년]] [[12월 17일]]에 이르러서 완수되었다. | ||
또한 [[KTX]]의 운행을 위해서 전철화 공사가 [[2001년]]에 착수되어, [[2004년]] [[3월 23일]]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이는 대전에서부터 복선화 공사에 착수한지 36년이 걸린 시점이었다. <ref>"호남선 복선전철 36년만에 완공". 충청투데이, 2004년 3월 23일 보도.[https://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021]</ref>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