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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정보 | {{다리 정보 | ||
| | | 이름 = 한강철교 | ||
| 그림 = [[File:hangang_railway_bridge.jpg]] | |||
|그림 | | 설명 = 북단에서 바라본 모습 | ||
| | | 다른 이름 = | ||
| | | 횡단 = [[한강]] | ||
|위치 | | 위치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동작구]] [[노량진동]] | ||
| | | 소유 = [[대한민국]] | ||
| | | 관리 = [[한국철도공사]]<br/>[[국가철도공단]] | ||
| | | 설계 = | ||
| | | 디자인 = | ||
|높이 | | 재료 = | ||
|경간 | | 연장 = A선 : 1,136m<br/>B선 : 1,110m<br/>C선 : 1,113m<br/>D선 : 1,113m | ||
| | | 너비 = A,B선 : 5.6m<br/>C,D선 : 10m | ||
|착공일 | | 높이 = | ||
|개통일 | | 경간 = | ||
| | | 수명 = | ||
| | | 시공 = | ||
| | | 제작 = | ||
| | | 착공일 = [[1897년]] [[3월 29일]] | ||
| 완공일 = | |||
| 개통일 = 제1철교(A) : [[1900년]] [[7월 5일]]<br/>제2철교(B) : [[1912년]] [[9월]]<br/>제3철교(C) : [[1944년]] [[8월]]<br/>제4철교(D) : [[1994년]] [[12월]] | |||
| 건설비용 = | |||
| 요금 = | |||
| 일일교통량 = | |||
| 이전 다리 = [[한강대교]] | |||
| 다음 다리 = [[원효대교]] | |||
| 폐쇄 = | |||
}} | }} | ||
==개요== |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이어주는 철도교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교량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현재년}}년 현재 [[용산역]]과 [[노량진역]]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이어주는 철도교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교량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현재년}}년 현재 [[용산역]]과 [[노량진역]]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 ||
==역사== | ==역사== | ||
[[1896년]],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미국인 제임스 모스의 주도로 한강을 건너는 철도교의 건설이 [[1897년]]에 시작되었다. 착공 이후 자금난과 일본측의 압력에 위협을 느낀 모스는 철교 부지의 토목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부설권을 일본측에 넘겼고 [[1900년]] [[7월 5일]] 제1철교(A선)가 완공되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육로로 12시간, 배편으로는 8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나 경인선과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기차로 2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 [[1896년]],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미국인 제임스 모스의 주도로 한강을 건너는 철도교의 건설이 [[1897년]]에 시작되었다. 착공 이후 자금난과 일본측의 압력에 위협을 느낀 모스는 철교 부지의 토목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부설권을 일본측에 넘겼고 [[1900년]] [[7월 5일]] 제1철교(A선)가 완공되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육로로 12시간, 배편으로는 8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나 경인선과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기차로 2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 ||
한강철교가 건설된 자리는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나룻터가 있던 자리였고, 철교가 완성된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너던 조선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제임스 모스는 한강철교와 인도교를 나란히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부설권을 넘겨받은 일본은 인도교를 건설하지 않았다. 대신 [[1917년]] 한강철교 상류 지점에 인도교(지금의 [[한강대교]])를 건설하였다. | 한강철교가 건설된 자리는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나룻터가 있던 자리였고, 철교가 완성된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너던 조선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제임스 모스는 한강철교와 인도교를 나란히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부설권을 넘겨받은 일본은 인도교를 건설하지 않았다. 대신 [[1917년]] 한강철교 상류 지점에 인도교(지금의 [[한강대교]])를 건설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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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각주}} | ||
{{한강의 다리}} | {{한강의 다리}} | ||
[[분류: | [[분류:한강의 다리]] | ||
[[분류: | [[분류:수도권 전철 1호선]] | ||
[[분류:경부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