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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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크립스는 흑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북미, 유럽의 거대 길거리 폭력 조직이다. 미국의 길거리 흑인 갱단 중 세력이 가장 거대하다. 1969년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군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무장 정치 단체 흑표당에 영향을 받은 레이먼드 워싱턴이 이끄는 학교 일진 무리들에서부터 기원하였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 미국에서 영국까지 온갖 파벌들이 소속되어있다.[1] 대략 35,000명에 육박하는 조직원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파란색과 C를 상징으로 삼는다. 이들의 대표적인 라이벌 갱단은 블러즈가 있다.

역사

1969년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군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설립된 일진 무리들이 시초이다. 사우스 센트럴 지역은 저소득층 흑인들과 몇몇 멕시코계 히스패닉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갱들이 많이 활동하는 지역이라 치안이 상당히 나쁜 축에 들며 흑인들과 히스패닉간의 충돌도 결코 적지 않은지라 더더욱 불안정한 지역이다. 게다가 1965년 8월에는 와츠 폭동으로 14,000명의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34명의 사망자와 1,0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하여 더더욱 환경이 거칠어지고 주민들의 삶은 궁핍해지고 있었다.

1953년 8월 14일에 이곳에서 태어난 레이먼드 워싱턴은 와츠 폭동이 일어나기 60년전에 활동한 무장 단체 흑표당의 설교에 영향을 받아 15세때 급우들 10명을 데리고 사우스 센트럴 동부에서 평화를 지키자는 명목 하에 크립스 (Cribs)라는 이름의 일진 무리를 창설한다. 이들은 목사를 따라하여 가죽 자켓을 입었다.[2]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약탈을 일삼았고, 동네 갱들과 마주쳐서 그들과 현피를 벌였다. 워싱턴은 현피에서 연달아 이겼고 패배한 갱단은 그의 밑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워싱턴은 동네 갱들을 굴복시켜 자신의 밑으로 들어가게 해 그들과 자신의 조직을 규합시켰다.`심지어는 1971년, 사우스 센트럴 서부 갱단까지 그의 밑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여러 동네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커진 갱단은 그의 야먕을 실현시키기에 적절했다.

조직명이 크립스 (Crips)로 바뀐 후 연이은 세를 불리기 위한 싸움으로 워싱턴은 자기가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하지만 워싱턴은 다른 학교에서 다시 세력을 쌓았고, 그 학교에서 퇴학당하면 다른 학교로 옮겨 다시 세력 쌓기를 반복하였다. 이렇게 학교 옮기기가 지속될수록 그의 세력쌓기 또한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가 이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그의 추종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등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 테크만 차근차근히 밞아나갈 뿐이었다.

이렇게 워싱턴이 태산처럼 싸질러놓은 세력은 동부 크립스, 아발론 가든 크립스, 104가 크립스, 콤프턴 크립스, 잉글우드 크립스, 서부 크립스 등의 6개의 연맹으로 나누어졌다. 크립스 연맹들은 자신의 나와바리에 있던 사람들 중 적대 조직원이면 무조건 살해하였다. 이렇게 호전적인 공격으로 넓혀져가는 세력은 끝내 또다른 미국의 거대 흑인 갱단 블랙 P. 스톤과의 충돌에 이르게 된다.

블랙 P. 스톤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크립스 조직원들을 용납할 수 없어 크립스을 적대하는 갱단들을 모으기로 한다.[3] 4개의 갱단이 모였는데, 이들 중에는 크립스의 하위 조직 파이루 (Piru)[4]와 브림 (Brim)이 있었다. 그들은 다들 서로 문제 있으면 다같이 도와주기로 멩세하였고, 상징색 또한 자기네들끼리 알아보기 위해 빨간색으로 정했으며, 이 연합은 크립스의 숙적 조직 블러즈를 탄생시켜버린다.

크립스 연맹과 블러즈 연합은 서로에게 선전포고를 날렸고 자신의 나와바리에 있는 담벼락에다 그래피티로 서로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보냈다. 전쟁이 시작되고 블러즈는 거세게 저항하였지만 세력은 크립스에게 크게 후달려서 성능 좋은 장비들을 적극적으로 구매하였다. 또한 라틴 킹스, 피플 네이션, 노르테뇨스 등의 타 갱단과도 적극적으로 연계하였다.

더더욱 심각해지는 사태는 경찰들까지 동원되는 데 이르렀다. 레이먼드 워싱턴 또한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인 갱단과는 다른 성향을 추구하는 크립스 연맹들에 반발하였다. 주먹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 비겁하게 총을 쓴다는 것이 이유였다. 1974년, 레이먼드 워싱턴은 강도죄로 수감되었다. 한편, 블랙 P. 스톤의 두령 T 로저스의 집에서 크립스 단원들이 그의 친구의 머리에 사격을 가해 죽임으로서 최초의 차량 사격 (Drive-by Shooting) 살인이 발생하였다.

이들의 땅따먹기 살육전으로 인해 1979년에는 갱 관련 살인사건이 32건에서 70건으로 늘어나버렸다. 젊은 단원들의 영입은 계속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았고, 그들과 같이 뛰놀며 자라온 이웃들까지 줄줄이 크립스에 가입하여 총을 들고 사람을 죽여가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조직원들은 '일'이라고 불리는 범죄 행위로 존경심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뺏으며 나와바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크립스에 가입한 모두가 '일'에 미쳐가는 동안 워싱턴의 부재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 그가 없는 동안 45개의 크립스 파벌이 탄생했고, 이제는 총구를 블러즈 조직원에서 자기네들이랑 다른 크립스 파벌의 조직원에게 겨누게 되었다. 이제 크립스라는 이름은 하나의 조직명이 아닌 갱단에서 각자 자기네 조직을 자랑하기 위해 쓰일뿐인 명칭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내부 분열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것에는 워싱턴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9년 8월 9일 오후 10시, 레이먼드 워싱턴은 산 페드로 거리에서 돌아다니다가 차량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 크립스 조직원에게 직사거리에서 샷건으로 복부를 명중당하여 2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5] 결국 분열 위기의 조짐을 보이던 크립스 연맹은 머리를 잃은 뒤 그날로 완전히 콩가루 조직으로 변모하였다. 크립스라는 이름 하에 지저분한 내전이 오고갔다.

서부 지방 크립스 파벌인 롤린 60 네이버후드 크립스와 에이트 트레이 갱스터 크립스의 파티에서의 한 여자로 인한 불화를 시작으로 내분은 갈수록 심화되었고, 10대 중반의 청소년 크립스 단원들은 서로에게 차량 사격등의 공격을 가하였고, 그에 따라 청소년 교도소 수감자들도 늘었다. 1980년에는 로스엔젤레스 군에서만 350건의 타살 건이 보고되었다. 2년 뒤의 로스엔젤레스 군에서는 155명의 흑인 갱스터들이 집계되었고, 그들만의 내전은 여전하였다.

1982년, 연방 정부가 미국 남부의 플로리다 주에서 서쪽으로의 멕시코산 마약 반입을 단속함에 따라 이젠은 크립스간의 목표가 최대한 많은 장례식을 열리게 하는 것에서 불법 크랙 코카인 사업으로 바뀌었다. 헐리우드의 부유층 사이에서도 크랙 코카인이 유행하였다. 살인죄로 재판을 받은 크립스 단원들은 교화에 실패하였고, 마약상이 되어 크랙 코카인 생산에 열중하였다. 특히 싼 가격과 쉬운 제조법 덕에 마약상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그냥 끓는 물과 코카인을 조금 넣고 흔들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피울 때 타닥거리는 소리 (Cracking)와 짧고 굵은 중독성까지 있어서 더더욱 인기를 끌었다. 이런 애들도 할 수 있는 크랙 코카인 판매가 유행하면서 마약 마켓까지 세워지고 점점 크랙 코카인 마약상을 직업으로 삼는 흑인 가구들이 늘어나면서 흑인 사회는 말 그대로 좆망테크를 밞았다. 이런 한심하고 웃지 못할 시츄에이션은 블랙 P. 스톤의 두령 T 로저스마저 치를 떨게하였다. 그의 갱랜드에서의 말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냥 코너 앞에 서가지고 "뭐 필요해? 떨, 섹스, 아님 크랙?" 그럼 어느새 13살짜리 애가 한달만에 자기 엄마가 1년 동안 버는 것 보다 더 벌고 집안 가장이 돼요. 그럼 걔 엄마가 그 녀석에게 의존하게 되는거죠. 보세요, 이거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요? 엄마가 나한테 애 맡겨놓으면 "나 아랫층에 가서 나머지 돈 좀 갖고 금방 갖다올게." 이러고 10동안 애를 나한테 맞겨놓는거지. 25온스 크랙을 갖고, 이건 뭔가 잘못된겁니다.
— T 로저스, 다큐멘터리 <<갱랜드>>에서

그야말로 어머니마저 부모의 본분을 져버리게 만드는 마약의 위엄이라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는 갈데까지 갔다.

하여튼 이런 부패한 수법으로나마 크립스 단원들의 삶은 한껏 나아졌다. 개나 소나 돈을 소지하며 헐리우드에 출몰하는 건 예사고 하와이나 콜로라도에서 스키타러가는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그러는 동안 크랙 코카인 사업은 여전히 진행되었고, 크랙 하우스 등의 수법까지 나타났다. 크랙 하우스는 말 그대로 크랙 코카인을 생산하는 집을 뜻하는데, 마약상들은 그 안에서 철창이나 철문 덕에 방해받지 않고 킬로그램 단위로 생산하였다. 사고싶으면 철문 구멍에다 돈을 넣으면 되었다. 그러면 크랙 하우스 안에서 크랙을 고객에게 전달하였다. 이 킬로 단위로 판매하는 코카인들은 새 (Bird)라고 불렸다. 그렇게 새들을 판매하여 돈이 쌓일대로 쌓이자 이제는 첨단 무기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무기를 업그레이드한 크립스 단원들의 총격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살아있는 사우스 센트럴 주민들은 이제 침실이 아닌 욕조에서 수면을 취하였다. 이제 1987년엔 24시간에 한 번씩 갱 관련 사건이 일어났다.

1988년 1월 31일 상류층 학원가인 웨스트우드에서도 크립스와 블러즈의 마수가 뻗치게 되었다. 그곳에 있는 예술가 캐런 쓰시마가 크립스와 블러즈 단원들 사의 격발에 의해 사망함으로서 중산층 이상의 거주자들 사이에서도 크립스와 블러즈의 악명이 높아져갔다. 보다못해 1988년 4월 9일, LAPD 장관 대릴 게이츠가 크립스와 블러즈를 결단내기로 결심하고 Cultural Development Program을 실행하였다. 1,000여명의 경찰들이 사우스 센트럴의 입구와 출구를 메웠고 1,500명의 갱스터들이 무자비하게 체포되었다. 많은 갱스터들을 도시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갱스터가 맞는 아니든 무고하게 체포된 사람들도 많아서 '인종차별적 탄압이다', '와츠 폭동이랑 다를 거 뭐있냐' 등의 비판도 나왔다. 경찰들은 주민들에게 신임을 잃었지만 어쨌든 25,000건의 갱 사건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경찰들이 물러가고 갱 범죄는 다시 급증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690건의 갱 관련 살인이 LA 법정에 보고되었다. 또다시 지속되는 갱 전쟁에 지쳐 크립스와 블러즈 내에서도 화합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보이려 했지만........

1992년 4월 29일, LA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에 참가한 분노한 흑인 주민들과 갱스터들의 폭주는 LAPD 경찰관들 마저 막을 수 없었다. 사우스 센트럴 지역은 그야말로 불바다로 변모하였다. 폭동이 끝난 이후 크립스와 블러즈는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임시적 휴전을 맺었다. 휴전 이후로 크립스와 블러즈는 국내 조폭이나 야쿠자, 삼합회 마냥 문화 사업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미화를 시작하였다. 힙합 팬들하면 아는 갱스터 랩이 탄생하고, 많은 갱스터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두건 패션이 유행을 하였다. 특히 스누프 도그, N.W.A, 아이스-T 등의 크립스 단원 래퍼들이 음악 차트에서 흥행함으로서 미국의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음악 팬들은 슬럼가 출신인 그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패션을 따라하며 갱스터 흉내를 내기까지 하였다. 또한 크립스와 블러즈의 화합을 뜻하는 의미로 두 진영 갱스터 래퍼들이 콜라보를 하고 서로 힙합 그룹까지 결성하여 대중들의 문화에 침투하였다. 이들이 휴전 이후 만들어낸 음악 사업과 문화는 미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나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도 크게 전파되어 매니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다만 크립스나 블러즈 파벌 중 타 인종 파벌이 생기는 폐해도 늘어났다. 백인, 황인, 히스패닉 가릴 것 없이 서로 크립스나 블러즈 파벌을 새로 형성하였다. 오히려 청소년 갱단의 입단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았었다. 지금까지도 크립스와 블러즈의 갱 전쟁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형성해놓은 갱 음악이나 문화 역시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아직까지 크립스와 블러즈 출신 래퍼들이 같이 작업하기도 한다.

명칭

원래 조직명은 크립스 (Cribs)였으나 철자 하나를 바꿔 크립스 (Crips)로 수정되었는데, 이는 이들이 70년대 흑인 개척 영화의 매춘알선업자들, 즉 포주들의 지팡이 지고 다니는 모양새를 따라하고 걸어다녀서 이들에게 피해를 입을 이들이 이것을 비하하려고 절름발이라 불렀는데, 이것에서 유래되어 조직 명칭이 아예 크립스 (Crips)가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명칭을 따서 자신들의 삶, 강도 신호, 약탈 등을 크리핀 (Crippin')이라고 불렀다.

상징

그들은 크립스의 철자 중 맨 앞의 알파벳 C, 레이먼드 워싱턴이 입고다니던 옷 색깔에서 유래한 파란색을 상징으로 삼는다. 그래서 이들은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구부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접어 C 모양을 만들며 파란색 복장과 두건을 착용하고 다닌다. 자신의 나와바리에 있는 담벼락에 그래피티를 새길때도 스프레이 색은 파란색으로 하며 발로 크립스의 철자를 그리는 세레모니인 C-워크를 추기도 한다. 글을 적을 때는 유독 B나 K를 쓰지 않고 C나 X로 대체하는데, B는 라이벌 갱단 블러즈의 상징이자 맨 앞글자이기도 하고, K는 킬러를 뜻하는데, 이 K가 C 뒤에 오면 '크립스 킬러'라는 뜻이 되는데, 말 그대로 '크립스를 죽인다'는 뜻이 되므로 대게 B는 X, C는 K로 대체한다.

  1. 자세히 말하자면 여러 폭력 조직들이 크립스라는 이름을 달고 갱 범죄를 저지르고다니며 같은 크립스라는 이름을 달고다니는 조직과도 거슬리면 이들과도 갱 전쟁을 벌인다.
  2. 이 가죽 자켓을 입은 뒤를 기점으로 크립스에 가입하려면 가죽 자켓과 지팡이를 착용하고 오라는 규율이 생기고, 크립스에 가입하려는 새내기들은 힘없는 노인들을 상대로 약탈을 벌이기 시작한다.
  3. 블랙 P. 스톤 측에서는 그것들을 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4. 캘리포니아의 파이루 가에서 유래.
  5. 워싱턴을 죽인 범인은 검거되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