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주

崔元胄.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8년 11월 29일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가음정에서 출생했다. 1919년 6월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되었고, 6월 11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5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1월 11일 마산형무소에서 출옥했다. 1925년 12월 10일 동아일보 진영지국 총무에 선임되었으며[1] 1927년 7월 19일 부산지국 기자로 부임했다.[2] 그해 8월 7일 김연호(金然浩), 김계영(金桂影) 등과 함께 서면대회 형식으로 선출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경상남도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 11월 16일 창원군 상남면, 웅남면의 두 개 면을 합친 남면농민회 창립준비회를 개최하여 송재홍(宋在洪), 팽종수(彭鍾秀), 주병택(朱炳澤) 등과 함께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2월 7일 창원청년연맹을 해체하고 조직한 창원군의 단일(單一) 청년동맹의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1928년 3월 27일 사망하였고, 4월 3일 각 단체의 연합장이 거행되었다.[3]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최원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외부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