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크레이지

책읽는달팽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2월 19일 (화) 19:05 판 (새 문서: thumb|진 크레이지 당시 그림 분류:사회 문제 '''18세기판 마약과의 전쟁,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그...)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진 크레이지 당시 그림

18세기판 마약과의 전쟁,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네덜란드의 진과 영국의 진을 딱 떼놓은 계기, 그리고 영국음식화 되었다.

진 크레이지(Gin Craze)는 18세기 영국의 진 소비가 급증했을때의 이야기로, 많은이들이 진을 사마셔 런던이 사실상 꽐라의 도시가 되었고, 여기에 대한 격분과 대처는 마약과의 전쟁과 유사하다. 심지어 끝에가서도 말이다.

진의 전래

진은 처음 주니퍼베리 등등을 우린 약용주로,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술이다. 그러다가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이 명예 혁명으로 왕위에 오르자 1688년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후 진은 영국과 프랑스간의 갈등속에서 그동안 수입하던 브랜디를 대체하게 된다. 또한 1690년 진 증류 독점이 깨지게 되고, 또한 심지어 정부에 의해 장려까지 되었었다. 또한 경제 보호주의도 진 크레이지를 불러온 기회였는데, 소비자들이 증류주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덤으로, 그당시엔 상수도의 부족으로, 깨끗한 물도 부족했던 터라 중세시대부터 끓인 물로 만든 맥주를 먹었는데, 하필이면 증류주가 맥주보다 더 싼 형국을 만들어내어(...) 하층민들을 꽐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정부의 대응과 막장

이에 영국정부는 엄청난 과세를 도입하여 진과의 전쟁에 나서게 된다. 진 4.5리터에 약 150파운드의 세금을 붙이지 않나, 판매점에 7천 파운드 이상되는 세금을 붙이지 않나... 그리고 이러고서도 라이선스는 딱 두 곳만 내줬다. 진 판매가 거진 불법이 되었지만, 숫자는 기하급증적으로 증가하였고 또한 이 법으로 인해서 생산된 진에는 황산같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나... 물론, 신고하면 포상금도 주었으나, 1743년 다음과 같은 결과를 만들게 된다.

어른 아이 가릴거 없이 한 사람당 2.2갤런, 약 10 리터의 진 소비

물론, 그후 효율적인 입법 캠페인과 더불어 인구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진 크레이지는 끝나게 된다. 그리고 빅토리아 시기, 진의 고급화, 즉 진 크레이지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