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사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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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경과==
==사고 경과==
타이페이 - 홍콩 구간의 노선은 이용량이 높은 노선이였기 때문에 대형 기종인 747을 긴급편성하는 경우가 잦았고 사고 당일에도 이러한 이유로 747을 긴급편성 하였다. 5월 25일 오후 3시 7분경 비행기가 이륙했고, 3시 28분에 남중국해 해상에서 갑작스레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무전도 응답이 없자 관제소는 구조요청을 했다.
타이페이 - 홍콩 구간의 노선은 이용량이 높은 노선이였기 때문에 대형 기종인 747을 긴급편성하는 경우가 잦았고 사고 당일에도 이러한 이유로 747을 긴급편성 하였다. 5월 25일 오후 3시 7분경 비행기가 이륙하고 3시 28분에 갑작스레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관제소에서 611편에 무전을 보냈지만 611편은 응답하지 않았고 관제소는 구조를 요청하게 된다.
 
비행기가 마지막으로 레이더가 잡힌 지점은 펑후 섬 인근이였고 사라진 지점을 토대로 수색을 시작했다.
 
사고기가 미국의 보잉기인 만큼 NTSB도 조사에 참여했다.


승객들의 유류품과 비행 잡지,비행기 매뉴얼 등이 사고지점에서 1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 되었다.
승객들의 유류품과 비행 잡지,비행기 매뉴얼 등이 사고지점에서 1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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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원인==
==사고 원인==
사고 원인은 22년 전인 1980년 2월 7일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착륙 도중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였다. 당시 중화항공은 카이탁 공항에 수리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보잉의 협조하에 응급조치만 하고 타오위안 공항으로 돌아왔다. 응급조치라는 게 사고부위의 균열을 다듬고 추가 자재(doubler)를 부착한 것으로, 추후 따로 정비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이대로 운항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 원인은 22년 전인 1980년 2월 7일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착륙 도중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였다. 당시 카이탁 공항의 보잉 관계자가 홍콩에서 조기 점검을 받자고 권유 하였으나 중화항공은 승객을 전혀 태우지 않고 타이페이로 귀환시키고 응급조치만 시행했다.
 
1980년 5월 본격적인 수리 절차에 들어가는 데, 보잉이 제공한 표준 수리 매뉴얼에는 파손 부위를 도려내고 새로운 자재로 교체 하라고 되어 있지만 손상 부위가 커서 어려움이 있었다. 중화항공은 정식 수리방법 대신 임의로 방법을 정해 고치는 데, 우선 눈에 보이는 균열은 싹 다듬어 피로파괴를 예방하고, 그 위에 새로운 자재를 덧씌우는 형태로 수리하고, ‘메뉴얼대로 수리함’이라고 기록을 남겨서 사고가 나기 전까지 다들 제대로 수리한줄 알고 있었다. 수리 과정에서 중화항공이 보잉에 기술자문을 구하려고 했다는 진술이 있었으나, 보잉은 이를 부인했다.


사고를 예방할 기회가 있었다. FAA는 1993년부터 “Corrosion Prevention & Control Program(CPCP)”이라는 부식·균열 관리 주기를 항공사들에게 요구했으며 중화항공도 이에 맞춰서 정비 주기를 짰다. 하지만 중화항공 기준의 정비 주기에서 사고기는 CPCP를 놓치게 되었다. 또한 자체적인 정기 점검에서도 사전 증거가 많이 나왔으나 기술진들이 놓치면서 바로잡을 기회가 없어졌다.
사고를 예방할 기회가 있었다. FAA는 1993년부터 “Corrosion Prevention & Control Program(CPCP)”이라는 부식·균열 관리 주기를 항공사들에게 요구했으며 중화항공도 이에 맞춰서 정비 주기를 짰다. 하지만 중화항공 기준의 정비 주기에서 사고기는 CPCP를 놓치게 되었다. 또한 자체적인 정기 점검에서도 사전 증거가 많이 나왔으나 기술진들이 놓치면서 바로잡을 기회가 없어졌다.

2018년 5월 18일 (금) 16:22 판

틀:사건사고

개요

2002년 5월 25일 타이베이 타오위안 국제공항(당시 장개석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화항공 611편이 고도 35000 피트(약 11Km 상공)에 도달하던 도중에 공중분해가 되어 추락한 사고로 탑승 인원 225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기종은 보잉 747-209B 모델로 1979년에 중화항공에 인도되었다.등록번호는 B-18255.

사고 경과

타이페이 - 홍콩 구간의 노선은 이용량이 높은 노선이였기 때문에 대형 기종인 747을 긴급편성하는 경우가 잦았고 사고 당일에도 이러한 이유로 747을 긴급편성 하였다. 5월 25일 오후 3시 7분경 비행기가 이륙하고 3시 28분에 갑작스레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관제소에서 611편에 무전을 보냈지만 611편은 응답하지 않았고 관제소는 구조를 요청하게 된다.

비행기가 마지막으로 레이더가 잡힌 지점은 펑후 섬 인근이였고 사라진 지점을 토대로 수색을 시작했다.

사고기가 미국의 보잉기인 만큼 NTSB도 조사에 참여했다.

승객들의 유류품과 비행 잡지,비행기 매뉴얼 등이 사고지점에서 1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 되었다.

대만 당국은 비행기가 갑작스레 사라진 것에 놀라서 당시 폭탄 테러를 의심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곳이 해협인 만큼 잔해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지상 추락사고에 비해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폭탄테러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당시 중국군이 군사 훈련 중이였기에 중국군이 미사일을 쏴서 격추시켰다는 의심을 샀으나 중국군은 이를 부인하고 민항기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수색에 적극 지원했다.

블랙박스 CVR에 사고원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CVR에서는 정상적인 비행이 이뤄지고 이후에 쿵! 하는 소리를 끝으로 녹음이 끝났을 뿐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조사는 그렇게 난항을 겪는다.

그러던 중에 레이더에서 4개로 쪼개지는걸 발견 했고 640번째 잔해 하나가 발견 되면서 실마리를 찾게 된다.

사고 원인

사고 원인은 22년 전인 1980년 2월 7일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착륙 도중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였다. 이 당시 카이탁 공항의 보잉 관계자가 홍콩에서 조기 점검을 받자고 권유 하였으나 중화항공은 승객을 전혀 태우지 않고 타이페이로 귀환시키고 응급조치만 시행했다.

1980년 5월 본격적인 수리 절차에 들어가는 데, 보잉이 제공한 표준 수리 매뉴얼에는 파손 부위를 도려내고 새로운 자재로 교체 하라고 되어 있지만 손상 부위가 커서 어려움이 있었다. 중화항공은 정식 수리방법 대신 임의로 방법을 정해 고치는 데, 우선 눈에 보이는 균열은 싹 다듬어 피로파괴를 예방하고, 그 위에 새로운 자재를 덧씌우는 형태로 수리하고, ‘메뉴얼대로 수리함’이라고 기록을 남겨서 사고가 나기 전까지 다들 제대로 수리한줄 알고 있었다. 수리 과정에서 중화항공이 보잉에 기술자문을 구하려고 했다는 진술이 있었으나, 보잉은 이를 부인했다.

사고를 예방할 기회가 있었다. FAA는 1993년부터 “Corrosion Prevention & Control Program(CPCP)”이라는 부식·균열 관리 주기를 항공사들에게 요구했으며 중화항공도 이에 맞춰서 정비 주기를 짰다. 하지만 중화항공 기준의 정비 주기에서 사고기는 CPCP를 놓치게 되었다. 또한 자체적인 정기 점검에서도 사전 증거가 많이 나왔으나 기술진들이 놓치면서 바로잡을 기회가 없어졌다.

나름대로 균열을 지워서 피로파괴를 막고자 했지만 내부의 균열은 지워지지 않았고, 20년 동안 계속 커져가면서 동체를 두동강낼 지경까지 이르러 사고를 맞게 되었다.

기타

  • 사고기는 5월 25일 비행을 끝내고 오리엔트타이 항공사에 양도될 예정이였다고 한다. 만약 예정대로 인도 되었다면 항공사가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항공사고 수사대 시즌7 에서 소개 되었다. 제목은 '산산조각난 비행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