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편집하기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

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당신의 편집
1번째 줄: 1번째 줄:
* 혹시 [[죠죠]]를 찾아오셨는가?
{| class="wikitable" style=float:right
{| class="wikitable" style=float:right
|colspan="2"|[[파일:F0017223 4e638df65ea72.jpg|200픽셀]]
|-
|-
!text-align:(center) colspan="2"|태조(太祖)
!text-align:(center) colspan="2"|조조(曹操)
|-
|-
|생몰년도||155년 ~ 220년
|생몰년도||155년 ~ 220년
17번째 줄: 19번째 줄:
|국적||위(魏)
|국적||위(魏)
|}
|}
== 소개 ==
== 소개 ==
'''치세능신, 난세간웅'''
'''치세능신, 난세간웅'''
27번째 줄: 28번째 줄:
== 생애 ==
== 생애 ==
=== 어린 시절 ===
=== 어린 시절 ===
조조는 환관 [[조등]](曹騰)의 의붓아들인 [[조숭]](曹嵩)의 아들로 조등에게는 의붓손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조등은 그냥 환관이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환관이였다. 그 후한을 쥐락펴락했다던 [[십상시]](十常侍)들조차도 조조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십상시들의 선배격인 조등이였기 때문이였다. 조등은 도저히 즉위할 가망이 없는 후한의 11대 황제였던 환제 [[유지]](劉志)조차 즉위시킬 정도로 파워가 막강한데다가 청류파와 탁류파 모두에게 인정받았을 정도의 수완을 발휘하였다. 이러니 십상시들은 조등에게 알아서 기었다.
조조는 환관 [[조등]](曹騰)의 의붓아들인 [[조숭]](曹嵩)의 아들로 조등에게는 의붓손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조등은 그냥 환관이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환관이였다. 그 후한을 쥐락펴락했다던 [[십상시]](十常侍)들조차도 조조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십상시들의 선배격인 조등이였기 때문이였다. 조등은 도저히 즉위할 가망이 없는 후한의 11대 황제였던 환제 [[유지]](劉志)조차 즉위시킬 정도로 파워가 막강한데다가 청류파와 탁류파 모두에게 인정받았을 정도의 수완을 발휘하였다. 이러니 십상시들은 조등에게 알아서 기었다.  
 
이 정도로 특정 분야의 최고봉 가문인 조조였지만 당대 환관이라는 신분의 특성상 청류파 사족들에게는 탁류파로서 경시되었다. 그와는 별개로 권력자 조등의 손자라는 네임벨류는 그가 일찍부터 출세대 도움을 주어 어렸을때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며 학업을 게을리했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뒷배경 덕분에 20세가 되자 무난히 효렴으로 천거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이 당시 낙양북부위로 있으면서 건석의 숙부를 곤장 친 일화는 그만큼 조조의 뒷배가 강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똑같은 짓을 했던 왕윤은 십상시에게 죽을뻔했다.


이 정도로 특정 분야의 최고봉 가문인 조조였지만 당대 환관이라는 신분의 특성상 청류파 사족들에게는 탁류파로서 경시되었다. 그와는 별개로 권력자 조등의 손자라는 네임벨류는 그가 일찍부터 출세대 도움을 주어 어렸을때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며 학업을 게을리했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뒷배경 덕분에 20세가 되자 무난히 효렴으로 천거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이 당시 낙양북부위로 있으면서 건석의 숙부를 곤장 친 일화는 그만큼 조조의 뒷배가 강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똑같은 짓을 했던 왕윤은 십상시에게 죽을뻔했다.
=== [[황건적]]의 난 ===
=== [[황건적]]의 난 ===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로 임명되어 싸움에 참여하였고 영천(潁川)의 적(賊)을 토벌한 공으로 그는 제남상이 된다. 제남상이 되자 그 곳에서 조조는 부패한 관리를 면직시키고 사당을 때려 부숴 재물을 갈취하는 일을 막는 등의 선정을 베푼다. 그 뒤 동군태수로 전임되나 그 동안 황제 측근의 권신들에게 여러 번 밉보였기에 집안이 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질병을 칭탁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낙향한 뒤에는 성 밖에 별장을 짓고 독서와 사냥에 매진하며 지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로 임명되어 싸움에 참여하였고 영천(潁川)의 적(賊)을 토벌한 공으로 그는 제남상이 된다. 제남상이 되자 그 곳에서 조조는 부패한 관리를 면직시키고 사당을 때려 부숴 재물을 갈취하는 일을 막는 등의 선정을 베푼다. 그 뒤 동군태수로 전임되나 그 동안 황제 측근의 권신들에게 여러 번 밉보였기에 집안이 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질병을 칭탁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낙향한 뒤에는 성 밖에 별장을 짓고 독서와 사냥에 매진하며 지냈다.
=== 반동탁연합 ===
=== 반동탁연합 ===
[[동탁]]은 정권을 장악하자 조조를 호의적으로 보고 조조를 효기교위로 임명했으나 조조는 임관을 거부하고 고향으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도망자로 수배되어 천구 여백사를 죽이고 '남을 저버링지언정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ref>연의에서는 스케일이 커져서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진 않겠다'''는 대사로 바뀐다.</ref>는 말을 한다. 이후 교모의 반동탁연합군 격문에 참여<ref>연의에서는 조조 본인이 쓴 걸로 되어 있는데 실제론 조조는 그냥 참가한 것이다.</ref>하여 반동탁연합에 종사 하였다 이 당시 반동탁연합군은 연의의 묘사와는 달리 하내, 산조에 분산되어 있었는데 하내의 군대는 군량부족으로 쩔쩔 매고 있었고 조조가 주둔하고 있던 산조의 연합군도 서로 눈치를 보며 나서지 않았는데 조조는 교전을 적극적으로 촉구했으나 장막 등 산조 지역의 관리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조조는 자신의 병력만을 이끌고 독단으로 공격해 들어갔으나 변수에서 서영의 반격을 받아 군이 와해되었다. 조조는 날아온 화살에 맞았고 타고 있던 말이 상처를 입었는데, 종제인 조홍이 조조에게 말을 주어 밤중에 달아날 수 있었다.
동탁은 정권을 장악하자 조조를 호의적으로 보고 조조를 효기교위로 임명했으나 조조는 임관을 거부하고 고향으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도망자로 수배되어 천구 여백사를 죽이고 '남을 저버링지언정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ref>연의에서는 스케일이 커져서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진 않겠다'''는 대사로 바뀐다.</ref>는 말을 한다. 이후 교모의 반동탁연합군 격문에 참여<ref>연의에서는 조조 본인이 쓴 걸로 되어 있는데 실제론 조조는 그냥 참가한 것이다.</ref>하여 반동탁연합에 종사 하였다 이 당시 반동탁연합군은 연의의 묘사와는 달리 하내, 산조에 분산되어 있었는데 하내의 군대는 군량부족으로 쩔쩔 매고 있었고 조조가 주둔하고 있던 산조의 연합군도 서로 눈치를 보며 나서지 않았는데 조조는 교전을 적극적으로 촉구했으나 장막 등 산조 지역의 관리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조조는 자신의 병력만을 이끌고 독단으로 공격해 들어갔으나 변수에서 서영의 반격을 받아 군이 와해되었다. 조조는 날아온 화살에 맞았고 타고 있던 말이 상처를 입었는데, 종제인 조홍이 조조에게 말을 주어 밤중에 달아날 수 있었다.  


이후 양주자사 진온의 협조를 받아 양주로 가서 4천의 병력을 징병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병사들의 반란을 겪어 500여 명을 제외하곤 모두 흩어지게 된다. 이때 병사들이 밤중에 반란을 일으켜 조조가 머물던 장막을 불태우자 조조가 손수 검으로 수십 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위서에 남아있다. 이에 패국으로 가서 다시 1천의 병사를 모아 합친 뒤 천오백의 군사를 이끌고 [[원소 (삼국지)|원소]]가 있는 하내로 간다. 이후 동탁이 선봉인 [[손견]]에게 패하고 낙양을 불지르고 도주한 이후 지리멸렬해진 반동탁연합군은 해산된다.
이후 양주자사 진온의 협조를 받아 양주로 가서 4천의 병력을 징병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병사들의 반란을 겪어 500여 명을 제외하곤 모두 흩어지게 된다. 이때 병사들이 밤중에 반란을 일으켜 조조가 머물던 장막을 불태우자 조조가 손수 검으로 수십 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위서에 남아있다. 이에 패국으로 가서 다시 1천의 병사를 모아 합친 뒤 천오백의 군사를 이끌고 원소가 있는 하내로 간다.이후 동탁이 선봉인 손견에게 패하고 낙양을 불지르고 도주한 이후 지리멸렬해진 반동탁연합군은 해산된다.


=== 연주목이 되다 ===
=== 연주목이 되다 ===
45번째 줄: 44번째 줄:


이후 조조는 메뚜기 떼의 창궐로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고 이후 여포는 진궁과 합류해 동민이라는 곳에서 만 명을 이끌고 조조와 결전을 벌였는데 이때 조조는 참호를 파서 절반의 병력을 숨겼다가 전투가 무르익자 이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여포군을 대파한다, 여포군을 대파한 조조는 이후 장막의 일족을 멸족시켰다. 195년 7월에 헌제는 장안을 탈출해 낙양으로 향했고 동승, 양봉 등이 이를 호위했는데 조조가 이를 받아들이고 헌제를 탈취하려는 무리와 싸워서 이겼다. 이후 서주를 잃고 방랑하던 [[유비]]를 맞아들인다.
이후 조조는 메뚜기 떼의 창궐로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고 이후 여포는 진궁과 합류해 동민이라는 곳에서 만 명을 이끌고 조조와 결전을 벌였는데 이때 조조는 참호를 파서 절반의 병력을 숨겼다가 전투가 무르익자 이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여포군을 대파한다, 여포군을 대파한 조조는 이후 장막의 일족을 멸족시켰다. 195년 7월에 헌제는 장안을 탈출해 낙양으로 향했고 동승, 양봉 등이 이를 호위했는데 조조가 이를 받아들이고 헌제를 탈취하려는 무리와 싸워서 이겼다. 이후 서주를 잃고 방랑하던 [[유비]]를 맞아들인다.
=== 황제 옹립 이후 ===
=== 황제 옹립 이후 ===
이후 조조는 수도를 허창으로 옮기고 사공이 되는데 후한서에 보면 조조가 쫄아서 대장군직을 원소에게 주었다고 되어 있다. 이후 조조는 유표의 뒷배가 있던 이각,곽사의 잔당 장수를 쳤다. 근데 여기서 조조는 장수를 이기고 장제의 처이자 장수의 숙모인 추씨과 간통해 장수의 격분을 샀고, 장수가 이를 원망하는 것을 알고는 그 참에 장수의 측근들까지 회유해 장수를 숙청하려 하다가 걸려서 팔과 타고있던 말에 화살까지 맞고 튄다. 이에 아들 조앙이 말을 탈 수 없어 조조에게 말을 바치니 조조는 살았으나 조앙은 죽었다. 이 사건으로 조안민, 조앙, 전위 등이 희생되었다.
이후 조조는 수도를 허창으로 옮기고 사공이 되는데 후한서에 보면 조조가 쫄아서 대장군직을 원소에게 주었다고 되어 있다. 이후 조조는 유표의 뒷배가 있던 이각,곽사의 잔당 장수를 쳤다. 근데 여기서 조조는 장수를 이기고 장제의 처이자 장수의 숙모인 추씨과 간통해 장수의 격분을 샀고, 장수가 이를 원망하는 것을 알고는 그 참에 장수의 측근들까지 회유해 장수를 숙청하려 하다가 걸려서 팔과 타고있던 말에 화살까지 맞고 튄다. 이에 아들 조앙이 말을 탈 수 없어 조조에게 말을 바치니 조조는 살았으나 조앙은 죽었다. 이 사건으로 조안민, 조앙, 전위 등이 희생되었다.  


이후 수춘으로 도망간 [[원술]]과 싸우는데 원술을 크게 이겼다. 이 당시 군량이 부족해지자 군량을 줄이려다가 병사들의 반발을 샀고 이 때문에 군량담당관을 죽여 이놈이 그랬다고 속인것은 유명한 이야기.
이후 수춘으로 도망간 원술과 싸우는데 원술을 크게 이겼다. 이 당시 군량이 부족해지자 군량을 줄이려다가 병사들의 반발을 샀고 이 때문에 군량담당관을 죽여 이놈이 그랬다고 속인것은 유명한 이야기.


이후 유표와도 싸웠는데 조조는 장수를 양성에서 포위하였으나 유표가 배후를 끊으려 하자 철수한다. 철수 도중 안중에서 조조는 험지에 가로막히게 되었는데 이통이 구원군을 이끌고 와서 조조군에 합류하였고 그 뒤 험지를 뚫어 땅굴을 만들고 치중(輜重)을 모두 지나게 한 후 병사를 매복시켜 이미 군이 달아난 것처럼 속인 뒤 이통을 선봉으로 삼아 급습하여 유표의 추격군을 격파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이후 여포를 유비와 함께 쳐서 서주를 함락시키고 수고를 격파했는데 원소가 처들어 오자 수고 격파 당시 자신을 배반했던 위충을 사로잡았는데, 위충을 하내태수로 삼아 하북의 일을 맡기곤 퇴각한다. 인재를 아끼는 조조의 대범함을 보이는 일화로 알려져 있으나, 적진 한복판을 점령한 뒤 태수로 삼곤 버리고 간 셈이니 대놓고 버리는 패였고, 사실상 죽으란 소리나 다름없다, 이후 동승의 의대조 사건이 발생하고 조조는 동승 일파를 처형하고 헌제의 아이를 임신한  동귀비도 예외없이 처형했다. 이후 유비를 공격해 격파한다.
이후 유표와도 싸웠는데 조조는 장수를 양성에서 포위하였으나 유표가 배후를 끊으려 하자 철수한다. 철수 도중 안중에서 조조는 험지에 가로막히게 되었는데 이통이 구원군을 이끌고 와서 조조군에 합류하였고 그 뒤 험지를 뚫어 땅굴을 만들고 치중(輜重)을 모두 지나게 한 후 병사를 매복시켜 이미 군이 달아난 것처럼 속인 뒤 이통을 선봉으로 삼아 급습하여 유표의 추격군을 격파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이후 여포를 유비와 함께 쳐서 서주를 함락시키고 수고를 격파했는데 원소가 처들어 오자 수고 격파 당시 자신을 배반했던 위충을 사로잡았는데, 위충을 하내태수로 삼아 하북의 일을 맡기곤 퇴각한다. 인재를 아끼는 조조의 대범함을 보이는 일화로 알려져 있으나, 적진 한복판을 점령한 뒤 태수로 삼곤 버리고 간 셈이니 대놓고 버리는 패였고, 사실상 죽으란 소리나 다름없다, 이후 동승의 의대조 사건이 발생하고 조조는 동승 일파를 처형하고 헌제의 아이를 임신한  동귀비도 예외없이 처형했다. 이후 유비를 공격해 격파한다.


=== [[관도대전]] ===
=== [[관도대전]] ===
{{참고|관도대전}}
{{참조|관도대전}}


=== [[적벽대전]] ===
=== [[적벽대전]] ===
{{참고|적벽대전}}
손권과 전쟁을 시작하여 주유와 유비군에 패배했다.
 
{{참조|적벽대전}}
손권과 전쟁을 시작하여 손권과 유비에게 패배했다.


=== 구석을 받고 위나라의 왕이 되다 ===
=== 구석을 받고 위나라의 왕이 되다 ===
65번째 줄: 62번째 줄:


=== [[한중공방전]]===
=== [[한중공방전]]===
{{참고|한중공방전}}
한중 공방전에선 친히 유비를 정벌하려고 갔으나 유비의 맹공세로 인해 좌절 되었으며 결국 계륵이라는 말을 남기고 퇴각함으로서 유비의 한중왕 즉위를 방치하고야 만다.
한중 공방전에선 친히 유비를 정벌하려고 갔으나 유비의 맹공세로 인해 좌절 되었으며 결국 계륵이라는 말을 남기고 퇴각함으로서 유비의 한중왕 즉위를 방치하고야 만다.
 
{{참조|한중공방전}}
=== 죽음 ===
=== 죽음 ===
이후 조조는 낙양에 도착하였는데 이때 [[손권]]이 자신에게 밀서를 보내 관우를 기습하여 형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조조는 손권의 요청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형주로 남하하였는데 도착하기 전에 서황과 만총이 미리 관우를 격파하였고 번성의 포위가 풀리게 되었다. 이렇게 손권과 연합하여 관우를 무찌른 조조는 다시 낙양으로 북상하였지만, 조조는 갑자기 병을 얻게 되어 220년 1월에 죽었다.
이후 조조는 낙양에 도착하였는데 이때 [[손권]]이 자신에게 밀서를 보내 관우를 기습하여 형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조조는 손권의 요청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형주로 남하하였는데 도착하기 전에 서황과 만총이 미리 관우를 격파하였고 번성의 포위가 풀리게 되었다. 이렇게 손권과 연합하여 관우를 무찌른 조조는 다시 낙양으로 북상하였지만, 조조는 갑자기 병을 얻게 되어 220년 1월에 죽었다.
86번째 줄: 81번째 줄:


=== 인격 ===
=== 인격 ===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쓸모있는 자기 부하를 매우 사랑하였는데 일례로 자신의 첫째 아들인 조앙과 자신의 호위장인 전위가 같이 전장에서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조앙의 죽음보다 전위의 죽음을 더 슬퍼했다. 비록 자기 아내에게는 엄청난 타박을 듣기는 했지만, 그 대신 조조는 부하들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쓸모있는 자기 부하를 매우 사랑하였는데 일례로 자신의 첫째 아들인 조앙과 자신의 호위장인 전위가 같이 전장에서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조앙의 죽음보다 전위의 죽음을 더 슬퍼했다. 비록 자기 아내에게는 엄청난 타박을 듣기는 했지만, 그 대신 조조는 부하들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또 조조는 분명 [[동귀비]], 복왕후, [[헌제]]의 아들들을 살해하고 한나라 황실을 겁박했지만 헌제는 조조가 살아있는 동안에 유협은 그나마 십상시 시절이나 동탁 시절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되게 황제의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주변의 신하들이나 지친들이 계속 조조한테 죽었으니 마음이 편할리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또 조조는 분명 [[동귀비]], 복왕후, [[헌제]]의 아들들을 살해하고 한나라 황실을 겁박했지만 헌제는 조조가 살아있는 동안에 유협은 그나마 십상시 시절이나 동탁 시절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되게 황제의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주변의 신하들이나 지친들이 계속 조조한테 죽었으니 마음이 편할리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94번째 줄: 89번째 줄:
거기에 여자를 지나치게 밝힌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자기가 이긴 장수의 뒷통수를 맞아서 첫째 아들 조앙과 호위장 전위를 잃어야 했고 여포를 토벌한 이후 여포의 부하였던 진의록의 처 두씨에게 홀딱 반해서 비록 최고의 장수라고 보긴 힘들지만 나름대로 능력은 있었던 [[관우]]의 마음을 잃었다.
거기에 여자를 지나치게 밝힌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자기가 이긴 장수의 뒷통수를 맞아서 첫째 아들 조앙과 호위장 전위를 잃어야 했고 여포를 토벌한 이후 여포의 부하였던 진의록의 처 두씨에게 홀딱 반해서 비록 최고의 장수라고 보긴 힘들지만 나름대로 능력은 있었던 [[관우]]의 마음을 잃었다.


== 기타 ==
{{각주}}
{{각주}}
{{삼국지 등장인물/위}}
{{삼국지 등장인물/위}}
[[분류:삼국지 등장인물]][[분류:한나라인]]
[[분류:삼국지 등장인물]]
[[분류:중국의 군주]]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