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쓰쿠시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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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기습 중 하나로 꼽히는 전투로, 1555년 모리 모토나리스에 하루카타의 대군세를 격파한 전투이다.

목차

배경

스에 하루카타는 오우치 요시타카 부자를 죽이고 반대세력을 제거한 후(다이네이지의 변) 요시타카의 조카 오우치 요시나가을 명목상의 군주로 내세워 오우치씨을 괴뢰정권으로 만들어 사실상의 실권자가 되었다. 이때 이 혼란을 틈타 모리 모토나리는 빗추와 빈고방면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지배력 강화를 꾀하여 고쿠진 영주와 가신단을 재편하여 모리씨의 힘을 키웠다.

이때 스에씨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이와미의 요시미 마사요리가 반란을 일으켰다. 마사요리는 하루카타에게 대항하기 위해 모토나리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이때 하루카타도 모토나리에게 마사요리 토벌을 위한 원군을 요청한다. 양쪽의 요청을 받고 모토나리는 고민끝에 마사요리측에 가담한다. 본래 요시타카에게 입은 은혜가 많은 모리 타카모토가 그동안 계속 스에 토벌을 주장했었으나, 모토나리는 신중하게 움직였다. 다만 그런 모토나리의 태도도 모략이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맹약을 맺어왔던 하루카타에겐 모토나리의 배신은 충격이 컸었고, 이로써 모리를 토벌하려는 마음을 굳히게 된다. 하루카타와 마사요리의 싸움은 급히 종결되고, 모토나리와 하루카타 사이에 대결이 시작된다.

모토나리는 아키일대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남부를 공략해 여러 성들을 함락하고 이츠쿠시마를 점령했다. 이를 막기 위해 스에 하루카타는 군대를 파견했고, 그 양군의 전투가 1554년 일어났다. 이 전투에서 모리 군 3,000명, 스에 군 7,000명이란 병력의 열세 속에서 모토나리의 지휘로 대승리를 거두었다.

패배소식에 경악한 하루카타는 오우치 가문의 힘을 모두 모아 모리를 멸망시킬 것을 다짐하고, 전면전을 준비한다.

전투 이전

부제 : 모토나리의 빛나는 낚시 신공 모토나리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략을 사용하였다. 아마고의 신궁당 숙청도 모토나리의 책략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아마고 하루히사가 권력 강화를 위해 독자적으로 한 일이라고 한다.

첫번째 모략은 차도살인이었다. 스에 가에는 에라 후사히데라는 지장이 있었는데, 그는 모토나리와 함께 전장에 나선 적이 있어 모토나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모토나리는 그를 자신의 진영에 끌어들이려 했으나, 후사히데는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러자 모토나리는 하루카타에게 후사히데가 모리와 내통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려 이를 의심한 하루카타가 후사히데를 암살하게 만들어 후환을 없앴다.

두번째 모략은 위장 내통이었다. 하루카타는 처음엔 육로로 전진하여 모토나리를 공격하려 했다. 육로에서 싸운다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모토나리는 가신 가츠라 모토즈미를 거짓으로 하루카타와 내통시켜, 해로로 하루카타가 이츠쿠시마로 진격하면 자신이 모토나리의 거성을 빼앗겠다는 거짓 서약서를 보냈다. 이것을 믿고 하루카타는 해로로 공격할 것을 결정하고 이츠쿠시마로 향하게 된 것이다.

하루카타는 몇 차례 부장을 파견해 이츠쿠시마의 미야오성(모토나리가 하루카타를 낚기 위해 축조한 성으로, 확실히 낚기 위해서 안에 병력도 다 배치해놓았다)을 공격했으나 공격은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성을 공격하고자 9월 22일 2만의 대군을 탑승시킨 500척의 선단을 이끌고 이츠쿠시마에 도착했다.

일부 함선들은 스에 군이 상륙한 지점을지켰다. 9월 24일 스에 군 2만이 이츠쿠시마에 상륙한 것을 안 모토나리는 장남 모리 타카모토, 차남 킷카와 모토하루등과 함께 병력 3,500을 이끌고 3남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와 합류했다. 이로서 모리의 병력은 4,000이 되었다. 모토나리의 전략은 스에군을 이츠쿠시마에 끌어들인 뒤 후방에서 기습을 가해 전멸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위해선 스에군 앞바다을 지키는 수군세력을 전멸시킬 필요가 있었다. 모토나리가 끌어모은 수군은 코바야카와 수군을 중심으로 한 300척으로 스에군의 500척에 비해 열세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라카미 수군중의 힘을 빌리기 위해 타카카게를 통해 그들을 회유했다.

9월 28일에 이르러 노지마, 구루시마 수군 300척이 도래하여 수군세력은 보강되었다. 당시 이츠쿠시마의 미야오성은 함락직전까지 가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약간만 늦었더라면 모토나리의 책략은 물거품이 될 뻔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28일 오후 6시 모리 군 4,000명을 태운 배가 출발했다. 오후 10시 이츠쿠시마에 주둔한 스에군의 후방인 츠츠미케우라에 도착했다. 여기서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내 배수의 진을 친 모리 군은 공격을 기다렸다.

전투 진행

10월 1일 아침 6시 모리 군은 모토나리의 지시대로 스에 군을 기습했다. 날씨의 악화와 갑작스런 공격으로 인해 놀란 스에 군은 붕괴하며 흩어졌다. 배를 타고 도망치려했지만 모든 배는 이미 타카카게의 지휘를 받는 모리 군 측 수군에 의해 다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당황한 스에 군은 일부 부대를 제외하고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졌다.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은 부대는 계속 항전해 하루카타가 도망갈 시간을 번다.

하루카타는 탈출을 결심하지만 이미 해안에는 배가 한 척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하루카타는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도망쳤다.

이를 추격한 것은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였다. 하지만 추격 도중 스에 군의 후군이 격렬히 저항하여 타카카게 자신도 부상을 입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이때 모토하루는 공황에 빠지지 않은 일부 부대에게서 공격받아 하루카타의 추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그 부대들을 격파하고 급히 원군으로 달려와 후군을 전멸시키고 하루카타를 향한 추격을 계속했다.

하루카타는 이츠쿠시마 남방에 도착했지만 배는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을 안 하루카타는 결국 여기서 자결한다. 하루카타의 자결 후에도 스에 군의 일부는 계속 저항한다. 하지만 3일 후 스에 군은 완전히 궤멸되었고 전투는 모리 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전투의 결과

대전투는 결국 모리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 이후 오우치는 세력을 다시 일으키지 못하고, 결국 2년 뒤인 1557년 오우치 요시나가가 자결하며 무너졌다. 모리는 이 전투를 계기로 주고쿠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었다.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도 이벤트로 등장. 거의 매번 빠지지 않는 이벤트 중 하나이다. 태합입지전 5에서도 등장한다. 하루카타로 플레이 해 승리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전국무쌍 4에서는 주고쿠의 장 1전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