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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몽골 귀족들은 전형적인 유목민식 귀족 정치를 했다. 그들은 타국 귀족과 결탁하기도 했다. 그들은 농경민으로부터 체계적인 행정을 배워서 고려에까지 호구 조사를 요청하는 등 체계적인 착취 시도를 했다. 원나라는 자신들에게 투항한 고려와 금, 남송의 귀족 및 군벌들에게 원 국토의 3분의 1을 영지로 하사하고 자신들도 건들 수 없는 징세권과 징병권을 주고 자치를 실시하도록 하였는데, 임명된 귀족들이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도 죄를 묻지 않을 정도<ref>그래서 이런 귀족들은 의외로 원나라에 충성했다. 권문세족만 해도 무려 4차례나 입성책동 소동을 일으켜 고려를 완전히 원나라에 바치려고 했었다. 충선왕은 심왕이 된 후 아예 고려에 귀국하지 않고 원나라인들과 고려를 통치하다 실수를 하여 티베트에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ref><ref>고려에서도 원나라 장수인 타자알, 송만호 등이 별 이유없이 백성들을 노획하기도 했다.</ref>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상관하지 않고 황금씨족에 아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백성들을 수탈하기도 했다. 그래서 비슷한 수준이던 유목민이 아닌 농경민들은 반원 감정을 가지기도 했다.
몽골 귀족들은 전형적인 유목민식 귀족 정치를 했다. 그들은 타국 귀족과 결탁하기도 했다. 그들은 농경민으로부터 체계적인 행정을 배워서 고려에까지 호구 조사를 요청하는 등 체계적인 착취 시도를 했다. 원나라는 자신들에게 투항한 고려와 금, 남송의 귀족 및 군벌들에게 원 국토의 3분의 1을 영지로 하사하고 자신들도 건들 수 없는 징세권과 징병권을 주고 자치를 실시하도록 하였는데, 임명된 귀족들이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도 죄를 묻지 않을 정도<ref>그래서 이런 귀족들은 의외로 원나라에 충성했다. 권문세족만 해도 무려 4차례나 입성책동 소동을 일으켜 고려를 완전히 원나라에 바치려고 했었다. 충선왕은 심왕이 된 후 아예 고려에 귀국하지 않고 원나라인들과 고려를 통치하다 실수를 하여 티베트에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ref><ref>고려에서도 원나라 장수인 타자알, 송만호 등이 별 이유없이 백성들을 노획하기도 했다. 고려 정부가 이것을 원나라 정부에게 보고하자 소인배라고 까기도 한다.</ref>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상관하지 않고 황금씨족에 아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백성들을 수탈하기도 했다. 그래서 비슷한 수준이던 유목민이 아닌 농경민들은 반원 감정을 가지기도 했다.
    
    



2021년 6월 19일 (토) 18:39 판

(元)은 1260년부터 1368년까지 중국에 존재하던 국가이다. 몽골족이 지배하였으며 수도는 대도이다.

역사

몽골 귀족들은 전형적인 유목민식 귀족 정치를 했다. 그들은 타국 귀족과 결탁하기도 했다. 그들은 농경민으로부터 체계적인 행정을 배워서 고려에까지 호구 조사를 요청하는 등 체계적인 착취 시도를 했다. 원나라는 자신들에게 투항한 고려와 금, 남송의 귀족 및 군벌들에게 원 국토의 3분의 1을 영지로 하사하고 자신들도 건들 수 없는 징세권과 징병권을 주고 자치를 실시하도록 하였는데, 임명된 귀족들이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도 죄를 묻지 않을 정도[1][2]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상관하지 않고 황금씨족에 아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백성들을 수탈하기도 했다. 그래서 비슷한 수준이던 유목민이 아닌 농경민들은 반원 감정을 가지기도 했다.



각주

  1. 그래서 이런 귀족들은 의외로 원나라에 충성했다. 권문세족만 해도 무려 4차례나 입성책동 소동을 일으켜 고려를 완전히 원나라에 바치려고 했었다. 충선왕은 심왕이 된 후 아예 고려에 귀국하지 않고 원나라인들과 고려를 통치하다 실수를 하여 티베트에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2. 고려에서도 원나라 장수인 타자알, 송만호 등이 별 이유없이 백성들을 노획하기도 했다. 고려 정부가 이것을 원나라 정부에게 보고하자 소인배라고 까기도 한다.